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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ul 20. 2021

엄마 나쁜 어른이 누군지 알아?


학기말 시험이 끝난 며칠 후 아이가 평소보다 늦게,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하교를 했다.

"늦었네?"

"응. 선생님이랑 싸우느라 늦었어."

"왜?"

"기다려봐. 나 옷 좀 갈아입고 말해줄게. 날도 더워 죽겠는데 짜증 나."


아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그날은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수업 시간표에 들어 있는 과목에 따라 서술형 답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교무실에 가느라 국어과목 시간에 조금 늦게 들어간 딸은 가장 마지막으로 자신의 서술형 답지를 확인했는데 자신이 계산한 것보다 2점이 추가로 감점되어 있었다고 한다.

"엄마 ‘모두 고르시오’ 라는 문제가 있어. 총 6점이야. 그런데 답지에 3개로 나뉘어서 각각 2점, 2점, 2점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어. 답을 다 썼는데 2개만 맞았어. 그럼 몇 점이야?"

"4점"

"그렇지?"

"당연한 거 아니야?"

"그니까. 누구한테 물어봐도 다 똑같이 말해. 4점 아니냐고. 그중엔 0점이야 하는 사람도 있긴 한데 그것까진 이해하겠어. 왜? 부분점수가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 근데 하나라도 틀리면 0점인 경우에는 미리 말씀을 해주시거든. 부분점수 없다고. 근데 이번 경우엔 답지에 부분점수 표시가 되어 있었고 다른 말은 없었단 말이지.”

"근데 무슨 문제 있어?"

"내가 한 개 틀려서 4점인 줄 알았는데 2점을 준거야. 그래서 물어봤지. 그랬더니 한 개 오답을 써서 마이너스 2점을 했대."

"잉? 그게 무슨 말이야?"

"그니까. 오답을 안 썼으면 4점인데 오답을 써서 2점이래. 똑같이 2개를 맞췄어도 답을 한 개 비운 애는 4점이고 나는 2점이라는 게 말이 돼?"

"무슨 그런 계산법이.."

"그래서 내가 물었지. 그럼 3개 다 오답을 쓴 경우는 마이너스 6점이냐고."

"그랬더니?"

"최저 점수가 0점인데 마이너스 점수가 어떻게 나오냐면서 나를 한심하게 보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럼 저는 왜 마이너스 점수로 계산이 되었냐고. 그랬더니 암말도 못하더라고. 근데 더 웃긴 게 뭔지 알아?"

"??"

"내가 맨 마지막으로 확인했는데 내가 말할 때까지 아무도 이의제기를 안 했다는 거야. 내가 말하니까 그제야 아이들이 ‘잉? 그렇네?’하더라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선생님이 화를 내면서 그럼 중간고사 때 말을 하지 왜 지금 이야기하냐더라고. 그래서 그랬지. 전 중간고사에 그 문제 안 틀려서 선생님이 어떻게 점수 계산을 하시는지 몰랐다고."

"그랬더니?"

"나보고 왜 틀렸냐는 식으로 말씀하시대?"

"잉? 무슨 그런?"

"아니. 모르면 틀릴 수도 있는 거지. 틀린 내가 잘못한 거야? 그리고 점수 계산이 이해가 안 되니까 물어보는 건데 선생님이 답을 못하면서 나한테 화를 내?"

"선생님도 아차 싶으셨나 보다. 그래서?"

"갑자기 소리 지르면서 그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으니 공부나 하라고 하더라고."

"다른 애들은 뭐래?"

"다른 애들도 따졌지. 그게 무슨 기적의 계산법이냐고.

"울 딸 무식한 줄 알았는데 그럴 땐 또 똑똑하네."

"ㅋㅋ 낼 아침에 등교하면서 교장선생님한테 물어볼까? 맨날 교문 앞에 서 계신데.. 뭐라고 답하시나?"

"음.. 글쎄.. 엄마 생각엔 중간고사까지 그렇게 계산한 거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말고사만이면 아직 점수 계산이 안 돼서 정정하면 그만이지만 등급까지 나와버린 중간고사까지 손을 대야 하는 거면 문제가 크지. 경위서 정도가 아니라 잘못하면 재시험 봐야 할 수도 있을걸."

"짜증 나. 도대체 그런 사람들이 서울대, 고대라는 게 말이 돼? 그런 사람들도 가는데 나는 왜 못가? 나도 정시로 서울대 갈 거야!!!"

"ㅋㅋㅋ 아니야. 서울대는 이상한 사람들만 가는 곳이니까 니가 참어."

다음 날 일을 하는데 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 울었어."

"왜?"

"선생님도 울었어."

"헐.. 괜찮아?"

"이따 가서 말해줄게."


오후에 하교한 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더 이상 거론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수업 중에 딸과 친구를 앞으로 부르셨다고 한다. 문제는 잘못된 것이 없지만 너네가 이의제기를 했으니까 답을 해줘야 한다며 문제의 어떤 부분에 오류가 있냐고 물으셨다고 했다. 딸은 어이가 없어 문제는 잘못된 것이 없고 왜 자신의 점수에만 마이너스 계산법이 들어가고 전부 오답을 쓴 아이에게는 마이너스 계산법이 들어가지 않는지에 대해서 궁금하다고 했는데 계속 문제의 오류가 뭐냐고 물으시는 바람에 짜증이 폭발했다고 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선생님의 모습에 아이는 실망을 넘어 화가 나 있었다.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면 되잖아. 그런데 왜 자기 잘못을 학생한테 뒤집어 씌우려고 해? 선생님이 그래도 돼?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보면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이해가 안 되는 걸 물어보면 맨날 소리 지르고 나가라고 하는 게 원래 선생님이야?"

"어른이 되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아. 잘못된 건데 그렇게 돼. 지금은 선생님이지만 나중에는 회사 상사가 되고 엄마도 그렇게 될 수 있고."

나 역시 어릴 적 어른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화가 난 적이 많았다. 이유를 설명하기보단 '어른'이라는 위치로 짓누르려한다는 사실이 참기 힘들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권위적인 어른들 사이에서 어느 덧 나도 어른이 되었다. 지금 나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어른이 아닌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어른을 인정하는 어른이 되어 있다. 싸우기보다는 피하는 쪽을 택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어른 대신 잘못을 모른채 하는 비겁한 어른이 되었다.

"엄마.. 나쁜 어른이 누군지 알아?"

"누군데?"

"저 XX처럼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어른. 그게 최악의 나쁜 어른이야."

"아~~ 그렇네. "

이제 고작 19년을 산 딸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반백년 동안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명확해지곤 한다. 막연히 느낌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정의 내려지는 기분이랄까. 결국 그 선생님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비겁한 행동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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