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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Apr 21. 2021

친구 같은 엄마 되기의 민낯



지난 주말 딸이 장염에 걸렸다.

왜 병은 꼭 병원이 문 닫는 밤이나 주말에 발현이 되는지, 가끔은 병원균에게 지능이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이번에도 어김없니 토요일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구토와 메스꺼림의 반복. 미열이 나는 것도 같고.. 요즘은 열이 있으면 응급실 방문이 안된다고 한다. 그래도 일단 가봐야 고민되는 순간 속을 다 게워낸 탓인지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일요일에 진료하는 병원을 검색했다. 다행히 집 근처에 365일 문을 여는 병원이 있었다. 지나다니며 지하철 역사에 병원이 있는 걸 보고 '왜 저기에 병원이 있지? 손님이 있나?' 했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구청과 협력에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야간진료기관이라고 했다. 가끔은 서울 변방의 마을도 도움이 된다.


일요일 아침 온 가족이 병원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제법 많은 환자가 있었다.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병원이나 약국이 있다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참 든든하지만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의사나 간호사, 약사분들은 귀찮고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이다. 나 같음 안 함. ^^




시간이 금인 고사미라 빠른 회복을 위해 수액을 맞기로 했다. 1시간이면 될 거라는 말과는 달리 수액은 2시간 가까이 들어갔다. 맞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부족한 잠이나 보충하면 되겠다 했더니 잠이 안 온다는 딸. 역시 청개구리. 자랄 땐 안 자고 집에 와서 열심히 자더군. 시간 없다며~~~  ^^;;


병원에 갈 때만 해도 다 죽어가던 딸은 수액을 맞으면서 조금씩 살아났다. 멍하니 누워있던 게 지루했던지 음악을 듣고 싶다고 했다. 에어팟을 들고 나오지 않은 딸에게 내 에어팟을 들으라고 줬다.


“유튜브 뮤직에서 이무진 라일락 치면 1시간 연속 듣기라고 있을 거야. 그거 틀어줘.”

“임우진 라일락?”

“응.”

“없는데..”

유튜브 뮤직을 검색했지만 딸이 말한 음악은 보이지 않았다.

“엄만 모르겠다. 임우진 라일락 치니까 이렇게 나오는데. 니가 찾아볼래?”

아프면 어리광이 하늘을 찌르는 딸. 나 역시 둘째라서 인지 어릴 적부터 유독 병치레가 잦아서인지 딸이 아프다고 하면 더 신경이 쓰여 이것저것 챙기게 된다. 핸드폰을 받아 든 딸이 갑자기 끅끅 소리를 냈다.

“왜? 어디 아파?"

“아니.. 웃겨서.. 엄마 이렇게 찾은 거야?”

“뭐가?”

“임우진 라일락”

“니가 임우진 라일락 이라며.”

“내가 언제? 이무진 라일락이라니까. 엄마 여태까지 이무진을 임우진으로 알고 있었던 거야? ㅋㅋㅋ 아빠, 엄마가 이무진을 임우진이라고 알고 있었대."

'칫, 아빠는 뭐 다른 줄 아니?'


몇 년째 나는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를 현대 자동차 인피니티로, 딸의 초등학교 친구 이름인 나임라임으로, 가수 이무진임우진으로 알아듣는 나.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아이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으려 노력했으나 신체 노화에 따른 빙구 기질은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어릴 적 드라마 속 서로에게 다정한 엄마와 딸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왜 우리 엄마는 나한테 저렇게 말해주지 않는 거지?’,

‘나도 저런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꼭 저런 엄마가 될 거야.’

세월이 흘러 엄마가 되고 나서야 '친구 같은 엄마'라는 것이 '딸 같은 며느리'만큼 허황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실패하는 일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두 가지 관계를 놓고 어느 쪽이 더 불가능한 관계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겠지만. 엄마와 딸은 혈연관계로 얽혀있어 쉽게 끊을 수 없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엄밀히 말하면 남남이니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친구'와 '엄마'는 함께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란 것을 알 수가 있다. 말하자면 '선배 같은 후배', '차장 같은 부장' 뭐 이런 느낌? '선배 같은 후배'는 한마디로 주제넘은 것이고 '차장 같은 부장'은 무능력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친구'와 '엄마'라는 두 가지 말을 붙여 놓음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친구 같은 엄마 되기'가 아니라 '아이와 친해지기'가 맞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와 친해지기에 성공했을까? 잘 모르겠다. 이것들이 지들 필요할 때만 친한 척을 해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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