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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r 23. 2021

다음 생에도 엄마 딸 할래



학교에 있는 딸이 카톡을 보내왔다.


끝나고 OO이랑 OO이랑 떡볶이 먹을 듯



이전에도 그랬겠지만 특히나 코로나 시대, 고삼 수험생은 학교, 집, 학원이 하루 일과의 전부인지라 오랜만에 친구와 떡볶이를 먹고 온다는 딸의 카톡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5시 즈음 다시 카톡이 울렸다.

후식 타임까지 갖는다는 딸의 카톡이었다.



‘이야기가 길어지네.’

함께 떡볶이를 먹은 친구가 최근 학교 생활을 힘들어한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생각보다 많이 힘든가?’


그런데 카톡이 온 지 30분도 안 되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딸 손에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어? 웬 케이크야?”

“낼 엄마 생일 케이크 ~~~ 내가 사 왔어. 내가 엄마 선물 생각해뒀다고 했잖아.”

“애들이랑 떡볶이 먹고 온다며?”

“이거 찾으러 가느라고 그랬지.”

“세상에. 친구들이랑 간 거야?”

“아니. 혼자. 떡볶이 먹는다는 건 핑계고.”

“엄마는 OO이랑 먹는다고 해서 OO이가 많이 힘든가 했지.”

“그것도 생각을 했지. OO이랑 먹는다고 하면 엄마가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아서.”

설렘 가득한 딸 손에 들린 박스는 처음 보는 케이크 박스였다.

“학교 근처에서 사 온 거야?”

“아니. 홍대.”

하늘색 케이크 박스 안에는 일반 제과점에서는 볼 수 없는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어머나. 예뻐라.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설마. 내가 그걸 어떻게 만들어. ㅋㅋ 주문 제작한 케이크야.”


땀을 뻘뻘 흘리는 딸이 웃으며 말했다.


“홍대까지 가야 하는데 아침에 자꾸 롱패딩 입으라고 해서.. 더워 죽는 줄 알았네.”

“엄만 몰랐지.”

“아빠 말이야. 내가 분명히 홍대에 케이크 찾으러 가야 한다고 했는데 자꾸만 롱패딩 입으라고.”

“그나저나 아빠가 케이크 산다고 했는데..”

“내가 산다고 아빤 사지 말라고 했어. 왜 네고왕 보고 세븐 일레븐 간 적 있잖아. 그때 말했어. 예쁘지? 케이크는 내가 만든 게 아니지만 문구는 내가 쓴 거야.”

“정말? 엄청 잘 썼다.”

“아니. 쓰는 건 가게에서 해주는 거고 문구를 내가 생각한 거라고.”

“그래? 니 글씨랑 엄청 비슷한데.. 엄마 완전 감동이야.”

“그치? 이게 예약을 미리 해야 하는 거거든. 문구랑 문단 간격이랑 케이크 종류, 색깔 다~~ 내가 정해서 알려주면 그대로 만들어 주는 거야. 원래 빨강으로 할까 했는데 그건 너무 평범한 것 같아서 그라데이션으로 했어. 진짜 예쁘지? 케이크 종류가 세 가지인데 사람들이 초코는 너무 달다고 해서 라즈베리 치즈 케이크로 했는데 맛있을까? 꽃에도 색깔 넣을 수 있는데 그러면 돈이 추가되더라고. 그래서 케이크에 그라데이션 넣고 - 이건 기본 옵션 - 꽃은 흰색으로 했어. 홍대 5번 출구로 나와 100미터만 오면 있다고 했는데 5번 출구로 나왔는데 어느 쪽으로 100미터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길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엄마 홍대 5번 출구로 나가본 적 없지?”

“우리 길치딸 엄마 서프라이즈 해준다고 하다 미아될 뻔했네.”

“그니까. 데이터도 다 써서 네이버 지도도 안 뜨고. 순간 큰일 났다 싶었는데 다행히 한 번에 찾았어. 내가 버스는 못 찾는데 지하철은 콘서트 다녀서 좀 찾잖아.ㅋㅋ”

“ㅋㅋㅋ”

“포토존도 있더라고. 케이크 바로 올려놔주셔서 사진도 찍었어. 내가 보내줄께 봐봐.”






“와 ~~ 진짜 이쁘다. 따로 집에서 찍을 필요 없겠다.”

“그나저나 코로난데 홍대 사람 왜 이렇게 많아? 오면서 혹시나 사람들이랑 부딪쳐서 케이크 망가질까 봐 조마조마했네.”


딸은 롱패딩만 벗은 채 식탁 의자에 앉아 케이크를 주문하기부터 가져오기까지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내가 주문을 했는데 글 간격을 잘못한 거야. 그래서 취소하고 다시 했는데 이번엔 글자를 잘못 쓴 거 있지. 그래서 또다시..”


그런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케이크의 문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다음 생에도 엄마 딸 할래


눈물이 핑 돌았다.


무뚝뚝한 딸에 대한 서운함을 “꼭 너 닮은 딸 낳아 키워봐라”라는 말로 표현하셨던 친정 엄마의 말도 생각났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뭐라 하셨을까?’








저녁 운동을 나온 남편이 물었다.

“케이크 받고 울었어?”

“뭐 울기까지.. 감동받긴 했지.”

“예쁘긴 하더라. 비싸기도 하고.”

“감동 파괴할까 봐 가격은 안 물어봤어. 찾아보지도 않고..”

“잘했어.”

“근데.. 좀 무서운 글이 쓰여있더라.”

“ㅋㅋ 다음 생에 엄마 딸로 태어난다는 거?”

“응. 보통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다음 생에는 내 딸로 태어나.’라고 하지 않나??”

“ㅋㅋㅋㅋ”


다음 생에도 엄마 딸 한다는 딸이 많이 고맙고 조금 무서운 밤이었다.


딸..

그거..

다음 생에도 엄마 딸 한다는 거..

그건 엄마도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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