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꾸미 Jul 01. 2021

군대 가면 철든다는 말

새빨간 거짓말


일요일 결혼기념일 케이크를 사러 나간 길,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지내냐는 일상적인 이야기 끝에 아들이 말했다.

“나.. 공부해.”

주변이 시끄러워 무슨 공부를 한다는 건지 잘 들리지 않았다. 토익공부나 한다는 소리겠지 싶어

“응? 뭘 공부한다고?”

“수능 공부한다고.”

“……… 왜?”

“선임이 같이 하재서. 딱히 할 것도 없고. 생각보다 시간은 많은데 할 게 없네. 약대 도전해 보려고. 선임이 해보라고 수능특강도 줬어.”

케이크를 고르던 남편이 무슨 일이냐는 듯 뒤돌아 보았다.

“울 아들이 약대 간대.”

“그래? 열심히 하라고 그래.”

“아빠가 열심히 하래. 엄마도 약대는 찬성이다.”

“응.”

그렇게 일상적인 통화를 끊었다.


우리는 아들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 엄마 등쌀에 못 이겨, 대부분의 자식이 그렇듯 첫째에 대한 부모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나름 애를 썼지만 아들은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잠깐 흥미를 보이는 일이 있다가도 금방 시들어버려 꾸준히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 그런 탓에 할 줄 아는 것은 많은데 잘하는 것은 없다. 무엇보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태도가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아들이 스물셋의 나이에 수능 준비를, 그것도 4개월을 남기고 하겠다고 하니 누가 그 말을 진지하게 믿겠는가.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남편과 딸과 아들 이야기를 했다.

“오빠가 수능 공부를 한단다.”

“왜?”

“맞선임이 수능특강 다 풀었다고 줘서 풀고 있대?”

“뭐? 수능특강을 다 풀어? 난 아직 다 못 풀었는데..”

‘하.. 포인트가 그게 아닌데.. ㅠㅠ’

“당신은 정말 수능 볼 것 같아?”

“난 최대 일주일 본다.”

“내기해야 하나.”


그리고 다음 날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문제집이 필요하다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라고 할까 하다 관뒀다. 내가 나서서 ‘넌 공부만 해 엄마가 필요한 건 다 해 줄게’라고 하면 아들이 너무 쉽게 포기할 것 같아서였다. 수능을 보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무슨 일이든 쉽게 포기하고 할 이유보다 하지 못할 이유를 먼저 찾는 아들의 성향은 걱정스러웠다.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일들에는 하지 못할 이유가 더 많고 더 찾기 쉽고 그래서 도망치기가 더 쉽다. 하지만 삶에서 도전보다 도망을 선택하면 잃어버리는 기회가 너무 많다. 도전이 모두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도망부터 친다면 그 결과를 만날 기회조차 날려버리는 것이지 않을까.


다음 날은 구체적으로 문제집 이름과 돈을 보내왔다. 일단 급한 것부터 먼저 사달라고 했다.  정도로 하는  보면 예전과는 다른  같다는 생각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인터넷 서점에서 아들이 말한 문제집을 새벽 배송으로 주문했다. 만일 내가 이제 수능을 봐서  하려고 하느냐 같은 말을 했다면 아들은 분명 해보지도 않고 뒷걸음질을   뻔했다. 뒷걸음질을 쳐도 남이 아닌 자신이 선택해서 처야   같았다. 남의  스물셋은 청년 같은데 우리  스물셋은 여전히 철부지다.


남편에게 아들이 드디어 문제집을 샀다고 말하니 남편은 대뜸 “지돈으로 샀어?”하고 물었다. 쓸데없는데 돈을 쓰기 싫다는 남편의 확고한 의지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딸이 조용히 말했다.

“오빠가 정말 나랑 수능장에 같이 들어갈까? 엄마 도시락 두 개 싸야 해?”

“아빤 그런 일 없다고 본다.”

“엄마도..”

그렇게 말은 했지만 문제집까지 샀으니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어 머리가 복잡했다. 행여 진짜로 수능을 보고 대학을 옮긴다면 동생보다 한 학년이 아래가 된다. 스물다섯에 대학교 1학년.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았다. 물론 큰 뜻이 있거나 의치한이나 약대라면 다르겠지만.. 아니 거기도 똑같다. 요즘에 직업이 보장되는 학과가 있을까??


그런데 오늘 이런 잠깐의 나의 걱정을 무색하게 하는 아들의 카톡이 왔다.



일주일도 안 가는 거야? 문제집까지 사고? 

성적이 안 나오고 나오고는 보고 나서 걱정해도 되는 거 아닌가? 어중간한 성적이 나오면 어쩌냐니.. 죽기 살기로 덤벼도 될까 말까 한 일인데 참..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들이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온갖 도망칠 이유를 찾는 아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박스  버렸지?  반품된다.



군대 가면 철든다던데 울 아들은 언제 철들라나 ~~~~ㅠㅠ













이전 05화 어른같은 아이, 아이같은 어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