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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May 12. 2020

그 귀하다는 전업 주부입니다만..


결혼을 한 후 나는 쭈욱 전업 주부였다. 다행히도 난 순도 99%의 내향성의 집순이인 탓에 전업 주부가 체질(?)에 맞았다. 독박 육아와 삼식이(?) 남편을 두었지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우울증이 오지는 않았다. 아마 그 당시 나는 누군가에게 대체 불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신학기가 되면 아이들이 가져오는 가정환경 조사서의 엄마 직업란에 주부라는 단어를 적을 때 나 자신을 초라하게 느꼈던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직업이 주부? 주부를 직업이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고 엄마라고 쓸 수도 없고 무직이라고 쓰는 건 더더더더 싫었다.








큰 아이가 4학년 때 일이다. 4학년부터 뽑는 학급 회장에 큰 아이가 당선되었다. 여자, 남자로 구분해 회장과 부회장, 총 4명을 뽑는데 어디서부터 그런 전통(?)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나도 딱히 누군가에게 들은 적은 없는데 당연한 듯 그렇게 한 걸 보면 암암리에 전해지는 불문율의 힘은 엄청난 것 같다) 그들 사이에도 서열이 존재했다. 남자 회장 엄마가 여자 회장 엄마보다 우선이었다. 선생님의 취향을 파악하고 학급 엄마들의 전화번호를 받아(지금은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함부로 전화번호를 받을 수 없다) 첫 학급 모임을 주관하며 학교의 각종 행사에 자신의 반이 뒤처지지 않게 준비를 해야 했다. 어린이날, 소풍, 운동회 등에 선생님 도시락과 아이들 간식을 준비하는 것이 은근 선생님과 엄마들 사이에서 경쟁이 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선생님이 엄마들을 불편해한다면 뒤에서 조용히,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면 더 요란하게 앞으로 나서서.. 다시 말해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이야기. ^^


생각보다 많은 학교일에 참석해야 하다 보니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은 아이가 학급 임원을 맡으면 곤란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학기 초 학부모 총회는 학급 임원을 맡은 엄마가 아니더라도 모든 학부모와 선생님에게 참 피곤한 자리였다. 참석하지 않으면 선생님께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부모라는 인상을 줄까 걱정을 해야 했고 참석을 하면 무언가 학교 일에 참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많았다. 지금은 맞벌이 가정이 많고 학교에 선생님의 일을 도와줄 수 있는 다양한 직종이 있기 때문에 학교 행사에 엄마들의 참여도가 많이 줄었지만 큰 아이 때만 해도 한 반에 절반 가량의 엄마들이 각종 학부모회에 가입해 학교 행사에 참여해야 했다. 그래서 학기 초 학부모 총회는 참여해야 하는 엄마들에게도, 참여를 부탁해야 하는 선생님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만일 도저히 인원을 맞출 수 없다면 임원 엄마들이 여러 개의 모임에 동시 가입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선생님들은 학교 일에 적극 나서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엄마들을 선호했다. 선생님의 일을 줄여줄 수 있으니까.






그 당시 내가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은 함께 선출된 임원 엄마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 약속을 정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가는 일이었다. 학창 시절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던 내가 앞장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내게 주어진 권한(?)이 싫지만은 않았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감투를 좋아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나에게 그런 권력욕이 있었다니~~  ^^;; 그렇게 학급 임원이 된 친구들의 엄마들과 선생님께 인사를 갔다. 학부모 총회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것이 없는지 확인을 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해 드리는 것이 두 번째 임무. ㅋㅋ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인데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일처럼 보였었다. 선생님과의 자리가, 그것도 첫 만남이 편한 사람은 없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선생님의 인사말이 시작되었다.

"OO이 어머니시죠? 이쪽은 XX 어머니시고.. 얼굴 딱 뵈니 알겠네요. 그런데 어머님들은 무슨 일 하세요?"

그냥 예의상 하시는 말씀. 그냥 인사말 같은..

"전 집에 있어요."

"저도.."

"저도.."

"저도.."

줄줄이 집에 있는다는 엄마들의 말에 선생님이 반가운 듯 웃으면 말씀하셨다.

"어머.. 모두 그 귀하다는 전업 주부세요?"


아.... 순간 흐르던 정적. 귀하다는 전업 주부. 집에만 있어서 내가 귀한(?) 줄 몰랐다. ㅠㅠ 알았더라면 덜 놀랐을 텐데. 그 말씀을 하신 선생님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만 이후로 그 말은 쭈욱 내게 전업 주부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 ‘집에 있어요.’라는 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치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살아요.’ 같이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늘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그 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지금 나는 정해진 일터로,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이의 가정환경조사서의 엄마 직업란에 주부라고 쓴다. 그런 나를 본 딸이 물었다. “엄마도 일하잖아. 왜 주부라고 써?” 그러게. 근데 딱히 쓸 명칭이 없다. 파트타임이라고 쓸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난 아직도 아니 그 시절보다 더 귀한 전업 주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귀한 직업(?)이니 이제는 조금 자신감을 가져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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