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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Jan 25. 2021

파마를 한 내게 남편이 한 말


코로나때문에 미용실을 가지 못한지 1년이 넘었다. 코로나는 사실 핑계다. 집 앞 미용실에 가는 것이 너무 귀찮다.




나는 1년에 많으면 2번, 보통은 1번 미용실에 간다. 보통 겨울에 짧게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펌을 한다. 동네 미용실은 펌을 할 때 커트를 하면 커트 비용을 따로 받지 않기 때문에 커트와 펌을 동시에 하는 편이다. 겨울에 자른 머리카락은 초여름이 되면 묶을 정도로 자란다. 여름에 숏컷이나 하나로 묶는 것이 제일 시원하다. 어중간하게 목에 닿는 길이는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는 쥐약과 같다. 이때쯤이면 펌도 거의 풀려있기 때문에 묶고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인 상황이다. 가을이 오면 고민에 빠진다.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의 고민보다 더 큰 고민. 다시 미용실에 갈 것이냐 말 것이냐. 커트를 하자니 펌을 다시 해야 한다. 펌을 하려니 미용실에 3시간씩 앉아 있어야 하는 일이 귀찮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멀뚱멀뚱 미용사 아주머니와 둘이 있는 것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수다스러운 아줌마의 말에 맞장구치는 일도 쉽지 않다. 잘못하면 TMI가 된다. 결국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는 것은 예쁘지는 않지만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적다는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면 미용실에 가지 않고 겨우내 머리를 묶고 다니다 너무 길어 머리 감는 것이 귀찮아지는 겨울의 끝자락에 미용실에 간다. 아주 가끔 자기 합리화에 실패해 가을에 미용실에 가기도 하는데 그때가 그랬다.







그 해 한 집 걸러 한 집이 미용실인 우리 동네에 또 새로운 미용실이 생겼다. 그렇게 많은데 자꾸만 생기는 미용실보다 더 신기한 건 그 많은 미용실이 망하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 언젠가 수다스러운 남자 미용사분이 주인인 미용실에서 그 답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촌동네면 보통 월세가 3-40만 원 해요. 하루에 파마 손님 1명, 커트 손님 1명이 온다고 쳐요. 파마는 5만 원, 커트는 1만 원. 6만 원이죠? 한 달에 25일을 일하면 얼마예요? 150만 원이잖아요. 월세 빼고 전기세, 수도세 빼고, 파마약 싼 건 아시죠? 그것 빼도 돈이 남잖아요. 그래서 안 망하는 거예요."


'아~~ 그래서 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하는 거구나.'



새로 생긴 미용실은 동네에 있는 미용실 중에서도 크기가 작은 편이었다.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크기 정도랄까? 미용의자 3개가 전부인 좁고 긴 형태의 건물이었는데 동네 미용실 대부분이 그렇듯 미용사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가끔 오가다 보면 가게문에 세미나에 간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경력이 오래된 동네 미용실 원장님들이 세미나에 간다고 한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세미나에 간다는 안내문은 뭔가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  '유행하는 머리 모양도 잘 알 것 같고 노력도 하는 분이구나'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세미나도 가고 나이도 젊고 새로 오픈도 했으니 고객 유치에도 힘을 쏟을 듯 해 내 머리를 맡겨 보기로 결심했다.



평소 나는 미용실에 연예인 사진을 들고 가 그 연예인과 똑같은 머리를 해달라고 하는 사람은 아니다. 혼자서는 드라이도 못하는 똥손인지라 미용사분이 물어봐도(대부분은 물어보지 않지만) 내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숱 많이 쳐주시고요. 관리하기 쉬운 머리로 해주세요. 아~~ 그리고 잘 안 풀리게 세게 말아주세요."


그런데 그 날은 달랐다. 미용사분께 인터넷에서 심혈을 기울여 검색한 헤어 모델의 사진을 보여주며 내 머리를 이렇게 할 수 있는지 여쭤봤다.


"아.. 이거요? 요즘 유행하는 C컬이네요. 이건 파마를 두 번 해야 해요."

외모가 안돼서 그렇지 보는 눈이 없는 것 아닌가 보다 싶었다.

"되긴 되는 거죠?"

"되긴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제가 손님한테 이거 하면 다른 손님을 못 받아서 가격이 좀 비싸요."

한 사람 파마 하는데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한다는 말도, 두 번 파마를 해야 한다는 말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전문가가 그렇다니 어쩌겠는가. 의문은 뒤로 하고 나는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그럼 가격이.."

"두 번 파마하고 반나절 손님을 못 받으니 15만 원이요."

그 당시 내 파마 비용은 3만 원이었는데 젊은 미용사는 그것에 무려 5배가 되는 금액을 이야기했다. 그때 나왔어야 했는데. 하지만 작은  운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행운이 만들어지듯 작은 꼬임이 잘 맞아떨어져 완벽한 꼬임이 된다.(뭔 말이지??)

'그래. 1년에 한 번 하는 건데 나도 이제 변화를 좀 주고 싶어.'

그렇게 나는 난생처음 15만 원짜리 C컬 파마에 도전했다.

물론 내가 보여준 헤어 모델과 똑같아질 거라는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미용실에 모델 사진 들고 가 "이것과 똑같이 해주세요." 했다는 사람 치고 성공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사람마다 다른 얼굴 모양은 헤어스타일이 똑같다 해서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원했던 건 "알아서 해주세요."에서 벗어나 보고 싶었던 일종의 일탈이었다.

그렇게 나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C컬 파마가 시작되었다. 파마약을 바르고 감고 말리고 다시 파마를 하는 긴 여정이었다. 중간에 커트 손님이 한 명 들어왔지만 미용사는 내게 보란 듯 "지금은 할 수가 없어요."라며 손님을 돌려보냈다. 첫 파마 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C컬 파마를 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나는 그저 미용사를 믿고 머리를 맡길 수뿐이 없었다. 그렇게 평소보다 2배는 긴 시간이 지난 후 완성된 내 머리를 매만지며 미용사는 만족해했다.


"아유~~ C컬이 예쁘게 나왔네요."

"아.. 네.."


보통 펌을 한 후 미용사가 열심히 머리를 매만지면 마법에 걸린 듯 그 순간은 펌이 잘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동네 미용실에서 나이 지긋한 미용사에게 뽀글이 펌을 해도 그렇다. 그런데 이번 C컬 파마는 미용사가 흐뭇해하며 열심히 매만지는 동안에도 도통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펌을 하기 전 풀어진 내 머리와 펌을 한 후 내 머리가 뭐가 다른 거지? 내 눈에만 똑같아 보이나??'

하지만 나는 열심히 '펌이 예쁘게 나왔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계산을 했다. 거금 15만 원과 내 황금 같은 시간을 썼는데 그 머리가 그 머리라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임금님이 가짜 제단사의 말솜씨에 넘어가 벌거벗고도 멋진 옷을 입었다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듯한 기분이랄까.


집에 돌아와 카톡으로 남편에게 셀카를 찍어 보냈다.

"나 파마 했어. 어때? 예쁘지?"

내가 헛돈을 쓰지 않았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내 사진을 본 남편은 '예쁘다'는 대답 대신 "맘에 들어?"라고 물어왔다.

"응. 요즘 유행하는 C컬이야. 돈 좀 썼지."

"얼만데?"

"15만 원."

"..."


그날 저녁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 내 머리를 보고 한마디 했다.

"그 머리.. 얼마라고?"

"C컬 파마라 두 번 해야 해서 15만 원."

"너 낚인 것 같다."

남편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너 최양락 같아."

그러자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아무도 벌거벗었다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임금님이 벌거벗었네."라며 외치는 꼬마의 말에 참았던 웃음을 터트리듯 아이들도 웃음을 터뜨리며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아냐. 강균성 같아."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망할 C컬 파마는 2주도 되지 않아 풀려버렸다는 것이다. 그 후 나는 다시는 그 미용실에 가지 않았다(내가 가지 않지만 그 미용실은 여전히 건재하다). 모델 사진을 들고 가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헛소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C컬 파마를 한 모델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다음 생엔 꼭 이 얼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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