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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미 Apr 25. 2021

남편의 진심을 알아버린 순간(1)


낼모레 50 바라보는 우리 부부는 소위 말하는 낀세대다. 윗세대가 보기엔 틀을  X세대이지만 젊은 세대가 보기엔 윗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리타분한 세대. 윗세대보단 분명 자기주장과 생각을 많이 표현하지만 젊은 세대에 비하면 앞뒤  막힌 사람들이다. 특히 가족에 대한 사랑 표현에 있어서는 더한  같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으로 꼭꼭 숨기고 있다 보니 오해가 생기기 일쑤다. 아마도 자라온 환경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걸 타인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남편 역시 그런 사람이다. 누구보다 가족을 생각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말로 해야 아냐는 스타일. 20년을 함께 살고 나서야  마음을 조금   같은데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얼마 전 딸아이와 함께 짜장면을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의 가족 외식이었다. 요즘은 이동하고 먹고 하는 시간 때문에 고사미 딸과의  외출이 쉽지 않다. 고삼이 지나면 컸다고 함께 하려 하지 않을 테니 이제 아이들과의 추억을 만들 시간이 별로 남은 것 같지 않아 아쉬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럴 줄 알았음 어릴 적 동네 슈퍼도 따라나서려고 할 때 열심히 함께 다닐 걸. 뭐든 때가 있다는 어른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이제야 느낀다.



맛있게 짜장면을 먹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짜장면 맛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옛날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리가 이 짜장면집을 어떻게 알았지?”

“왜 그때 언제야. 휴가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갑자기 짜장면 먹고 싶다고 자기가 찾은 곳이잖아.”

“그때는 진짜 맛있었는데..”

“그니까. 24시간 영업이라 밤에 먹고 싶은 와도 된다 하고 좋아했는데 밤에 온 적은 한 번도 없네.”

“탕수육이 그렇게 바삭하고 맛있었는데 오늘은 그냥 그렇네.”

“주인이 바뀌었나?”

“그때 아빠가 짬뽕 국물 튀겼다고 나한테 화냈잖아.”

“내가 언제?”

“그랬어. 내가 얼마나 황당했는데. 내가 튀기고 싶어서 튀겼나? 그리고 내 옷에 튀겼는데 왜 아빠가 화를 내? 빨래하는 엄마가 화를 내야지.”

“그땐 아빠가 좀 화가 많았지. 별 일 아닌 일에도 맨날 짜증내고..”

“맞아. 진짜 아빠 눈치 보느라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야~~ 내가 뭘..”

“와~~ 다 말해볼까? 하루론 부족하다.”

“그땐 아빠가 아파서 더 그랬지. 지금은 나아졌잖아. 이런 이야기도 서로 할 수 있고..”

“칫, 어떻게 살았나 몰라.”

“엄마가 참고 다 받아줘서 살았지.”

한참 서운한 이야기를 풀어내던 딸과 나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한 마디에 입을 다물수뿐이 없었다. 집에 돌아온 딸이 나에게 속삭였다.

“그래도 아빠가 엄마가 참고 살은 걸 알긴 아네.”

과연.. 그런 걸까? 나만 참고 살아온 걸까?






아주 오랫동안  역시 내가 참고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결혼과 함께 남편은 아팠고 몸의 병은 마음의 병을 키웠다. 세상에는 생명과는 지장이 없지만 삶에는 영향을 주는 병이 많다. 남편이 처음 앓았던 병은 ‘건선이었다. 온몸이 간지럽고 거북이 등껍질 같은 병변이 두껍게 생겼다. 한여름에도 긴팔과 긴바지를 입어야 했고 하얗게 지는 각질은 하루 종일 집안을 쓸고 닦아도 없어지질 않았다. 몸에 80% 이상에 병변이 생기는 경우는 건선 환자 중에서도 중증에 포함된다. 그런 몸으로 가족을 위해 회사생활을 해야 하는 남편은 “더운 반팔  입어요?”, “손등이  그래요?” 같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들에 소심해졌고 점점  예민해져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냈다. 병의 무서움은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인 피폐함이란  그때 알았다. 그렇게 우리는 20년을 넘게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의 ‘건선 여전히 진행 중이고 지금은 그에 파생된 관절염과 고혈압, 대사증후군에 당뇨가  상태니 그때보다  어렵다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예전보다 살만하다고 느낀다.


지금도 그때도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어진 오늘을 살아내는 일뿐인 내게, 가끔 무심한 듯 툭 내뱉는 남편의 진심은 또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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