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코 뜰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조리원에서 집에 오고 하루를 같이 보낸 시점에 아빠가 코로나에 걸려버렸고, 곧이어 엄마도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힘든 초기 육아가 완전 핵불닭볶음면 수준의 초 매운맛 육아가 되어 버렸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글을 따로 쓸 예정이고, 오늘은 2주 정도의 현실 육아를 하고 난 소감을 간단히 적어보고자 한다.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1. 인간은 동물이다.
작디작은 세포에서 분열을 거듭해 사람의 형체를 갖추고, 조막만 한 얼굴에 눈코입이 다 들어찬 것을 직접 경험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온몸으로 강력하게 체험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지성의 존재라고 스스로를 포장해도 인간도 한 낱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되는 그 우주의 질서는 거대한 파도처럼 다가오고 자연스럽게 그 질서에 순응하게 되는 경험. 앞으로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으나 그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아야겠다는 겸허한 다짐을 하였다.
2, 우리는 영원한 아기다
아기는 기분이 나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뿌엥하고 운다. 그리고 배가 부르거나 기분이 풀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롭다. 가만히 아기를 지켜보면 지금의 나도 이 아기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아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회생활을 위해서 여러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우리의 감정을 숨기거나 제어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이 아기가 우리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신생아 아기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3. 공갈 젖꼭지는 신의 축복이다,.
사용에 대해서 여러 호불호가 있으나, 공갈은 절대적인 존재다. 이 젖꼭지가 없었으면 우리는 어떻게 버텼을까. 출산율 저하가 심각하지만 공갈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아무도 아기를 낳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4. 아기는 아빠와 쌍둥이 친구다.
어릴 때의 나를 정말 귀신 같이 닮은 이 녀석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 아이와 나의 어린 시절은 몇십 년의 시간 차이가 존재하지만, 시간을 걷어내고 나면, 어쩌면 이 아이는 나와 일란성쌍둥이와도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아이에게 내가 세상에 둘 도 없이 똑닮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아빠의 권위는 다하되, 그 이후에는 최고의 친구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만큼 이 아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그리고 이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지난 나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기도 할 테니까.
5. 엄마는 위대하다.
나는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를 보기도 했지만, 언제나 내 뒤에는 아이의 엄마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보는 게 힘이 들더라도 조금만 버티면 엄마에게 인수인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다. 아이가 분유를 잘 먹지 않거나 혹은 계속 울어서 당황스럽다가도 엄마가 나오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들은 그런 존재가 없다. 엄마 자체가 최후의 보루이자 아이의 안전망과도 같은 존재 자체다. 내가 엄마를 기다리며 잠시 육아를 맡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부담감이 있을 텐데 그걸 버텨내는 엄마를 보면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정말 엄마들은 위대하다.
6. 아기는 너무 사랑스럽다.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 순간이라고 이제 대답할 수 있다. 그 작은 얼굴 속에 세상의 모든 평화가 담겨있다고 해야 할 정도다. 아이의 얼굴만 보고 있으면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그저 행복하다는 순수한 감정이 솟구친다. 이 감정이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아이가 내 삶의 전부이자, 내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7. 아이들은 스스로 큰다.
초보 엄마 아빠가 겁내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생각보다 생존을 위한 많은 것들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분유를 먹는 양도 스스로 조절하고, 어떻게 빨아서 삼켜야 하는지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스스로 알아서 다 하는 걸 보니 대견하다. 길고 긴 인류 역사가 어떻게 보면 인간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 지를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너무 여리고 약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아이는 성장에 필요한 것들을 다 가지고 태어나니,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만 하면 될 것 같다.
8. 벌써부터 눈치를 본다
태어난 지 1달이 된 아기가 벌써 눈치를 본다. 이게 너무 귀엽고 신기하다. 엄마가 안고 있다가 침대에 내려놓으면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아빠가 안고 있다가 내려놓으면 금세 잠이 든다. 아마도 아빠는 엄마만큼 그 품이 편하지 않기도 할 것이고, 아빠는 내려놓고 뒤도 안 보고 나가버리니 찡얼거려도 목적 달성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9. 노래를 불러주면 귀신 같이 잔다.
아빠가 안고 노래를 불러주면 귀신 같이 잔다. 이게 졸려서 잔다기보다는 파블로프의 실험처럼 조건 반사에 가까운 것 같다. 아마도 이모님이 재울 때 노래를 많이 불러주셔서 거기에 적응해 버린 건 아닌가 싶다. 아빠는 목소리가 저음이라 가슴이 닿은 채로 노래를 하면 아마도 좀 더 전달이 잘 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노래로 재우다 보니 가사에 패턴이 생겨서 노래 하나를 완성했다. 아래는 자작곡의 가사.
아빠의 노래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죠
똘망똘망하다가도 어느새 꿈뻑꿈뻑
아빠의 노래에는 수면제가 들어있죠
어느새 나도 몰래 눈이 스르르륵
아빠 신기해요 노래를 듣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요 자꾸 눈이 감겨요
네가 잠이 들 때까지 노래는 계속되지
그러니 절대 끝까지 들을 수가 없는 노래
2부는 다음에 여유가 되면 또 쓰기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