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vs. 기회
욜로족, 파이어족에 이어 등장한 또 다른 트렌드가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굉장히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경제적 자유”라는 용어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사전적 의미의 '경제적 자유'는 경제생활에서 각 개인이 스스로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라는 뜻이다. 이는 직업선택의 자유, 기업 활동의 자유, 나아가 소비자 주권을 위한 활동이나 노동자의 단결과 단체교섭, 단체행동의 자유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 국적의 성인이라면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할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달군 “경제적 자유”는 단순하게도 “억 단위의 돈 보유”를 의미한다. 이는 곧 일하지 않아도 돈 걱정 없이 사는 자유라는 말이다. 굳이 억 단위를 강조한 이유는, 사람들은 최소한 1억 이상은 있어야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도 경제적 자유라는 키워드가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나타났을 때 그 빛 좋은 개살구에 홀렸다. 부자가 되어서야 먹을 수 있다는 그 과일은 너무나도 탐스러워 보였다. 월 1000만 원씩 번다던 그 사람들은 자기가 돈을 벌기 전과 후 180도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며, 드디어 성공한 삶을 이루었다 속삭였다. 아니, 소리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그들은 돈을 그렇게 많이 벌었다며 여기저기 이 SNS 저 SNS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를 더욱 많이 축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무려 20살 때부터 경제적 자유를 위해 노력했다.
24살에 포항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 제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건 19살부터니까, 5년을 쭉 경제활동과 함께 했다는 뜻이다. 집에서 지원을 받지 못할 상황도 아니었고, 급전이 필요한 상황도 없었다. 그저 경제적 자유에 대한 나의 끝없는 갈망이 유일한 동기였다.
위 사진은 2022년 1월가량 개인 블로그에 작성한 글의 발췌록이다. 나는 2년 만에 순수 수입만으로 1500만 원을 저축하는 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혹은 다행히도, 당시 투자로 돈을 불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투자를 충분한 공부를 거친 후에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아직도 투자를 시작하지 않았다.
사실 1500만 원이라는 목표를 정하게 된 계기는 특별히 없었다. 막연히 꾸준히 돈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억 단위의 돈이 쌓이지 않을까 생각했고, 현실적으로 모을 수 있는 범위에서 설정한 금액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막연함이었다. 나는 이 정도 금액의 돈을 왜 모아야 하는지도, 그 돈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도 몰랐다. 그저 돈은 항상 — 이 금액이 비록 월 1-20만 원과 같이 비루한 금액일지라도 — 벌어야 한다는 생각과 지출은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첫째, 다양한 스펙을 쌓을 기회를 놓쳤다. 나는 새로운 지출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스페인어 자격증을 따야 할 때도 최소한의 돈만 투자하려 했다. 돈을 아끼려고 독학을 하다 하니 틀린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는 데 시간이 더 많이 들었고, 결국 자격증 자체를 취득하지 못했다.
둘째, 꿈을 이룰 기회를 놓쳤다. 내 꿈은 미디 작곡을 배우는 것이었다. 좋은 멜로디가 떠오를 때마다 녹음기에 흥얼거렸고, 언젠가 미디 작곡을 배워 그 곡을 완성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충분히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리고 그 비용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었음에도 끝끝내 배우지 않았다. 취미 따위에 돈을 쓰는 건 낭비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셋째, 더욱 깊이 공부할 기회를 놓쳤다. 앞서 6개의 외부교육을 수강했다고 언급했는데, 이 교육들은 놀랍게도 모두 무료였다. 경제적 자유를 맹목적으로 좇는 사람으로서 그런 교육들만 찾아 수강했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에서 얻은 지식과 교훈도 많았지만, 어떤 교육에서는 ‘이 강의는 알고 보니 내가 배우려고 하는 것과 전혀 관계가 없는데?’ 혹은 ‘이 교육은 초심자를 위한 레벨이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데?’와 같은 당혹스러운 질문이 떠올랐다. 그러다 보니 내가 공부하려던 분야의 전문 지식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경우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특별한 기회를 놓쳤다. 당연히 지출이 줄이려면 사람을 덜 만나야 한다. 물론 사람을 많이 만나는 라이프 스타일만이 좋다고 우길 생각은 없다. 하지만 20살, 나는 자대 축제를 가지 않고 과외 학생을 가르쳤다. 과 사람들과의 왁자지껄한 술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아직도 과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학번이 높아지며 없어진 게 아니라, 1학년부터 꾸준히 없는 것이다. 조금은 슬픈 대학생활이지 않나?
이러한 기회들을 계속해서 놓치다 보니 깨달았다. 세상에는 돈 이외의 가치도 분명히 존재한다. 돈만 바라보고 있을 때는 이 당연한 진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만큼은 돈에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기로 했다. 이제는 저축과 (조그마한) 수입에만 미친 듯이 매달리지 않는다. 스페인어 자격증을 위해 화상 스페인어에 투자한다. 해외에서 한 달 살기도 해 보고, 친구랑 만나서 지출 신경 쓰지 않고 놀아도 본다. 아예 가계부 작성도 끊었다. 매일 지출을 기록하다 보면, 만 원만 써도 ‘이렇게 가다간 거지가 되어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될 거야’라는 출처 불명의 불안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더 이상 경제적 자유라는 환상에 나 자신을 가두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회는 돈과 바꿀 수 없으니까.
꼭 돈을 지금부터 모으지 않아도 돼. 저축과 일경험은 좋지만, 네가 돈을 모으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 아니야? 그렇다면 왜 지금의 기회를 모두 포기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