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하게 집에 있기
19년도, 해외취업이라는 꿈에 부풀어 해외경험이라면 무턱대고 신청했다. 그렇게 1학년 끝자락에 태국의 UN 지부에서 열리는 사회혁신 대회에 참여했고, 목표했던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굳게 다짐하고 노력한다면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끝도 모르고 높아지는 자신감에서 날 넘어뜨린 건 코로나라는 교통사고와도 같은 현상이었다. 차가 급히 방향을 틀어 사람을 치면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트럭이 달려들었다. 코로나가 잠깐 지나가는 독감이 아님을 깨달은 순간부터 당연했던 모든 외부활동은 마치 우리가 입원이라도 한 듯이 금지되었다.
이처럼 그들은 이 세상의 죄수나 유형수라면
모두 겪게 되는 깊은 고통을 맛보았다.
현재는 견딜 수 없고, 과거는 혐오스럽고, 미래마저 박탈당한 처지여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정의감이나 증오심 때문에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자들과 비슷했다.그 견딜 수 없는 휴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결국 상상 속에서
기차를 다시 달리게 하고 울리지 않는 초인종을 연거푸 누름으로써
시간을 메우는 길뿐이었다.
- 알베르 카뮈, 페스트 -
페스트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견딜 수 없는 현재에 갇혀버렸다. 사실상 휴가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삶에게는 조금의 쉼도 허용되지 않았으니까. 코로나에 갇혀버린 모두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대학생이라는 신분에 소속되어 있는 우리는 그러했다. 강의는 재빠르게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과제나 시험도 온라인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미 온라인에 시스템이 어느 정도 구축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변화에 많은 시간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물론 갇혀버린 모두에게는 형벌과도 같은 변화였고,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지만 말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시작할 즈음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휴학을 택했다.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바엔 안 듣는 게 낫다는 신념이었다. 1학기 전체를 온라인으로만 듣기에는 등록금 3-400만 원이 너무 아까웠다.
나는 휴학을 해서도 할 일이 없었기에, 그리고 혼돈의 와중에도 살아가야 했기에 휴학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생각보다 온라인 강의는 시간 관리 면에서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일어나서 준비하는 시간, 등하교 시간이 아예 사라졌다. 그 덕에, 혹은 그 탓에 잉여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생겼다. 나는 미치지 않기 위해 그 시간을 채워줄 ‘울리지 않는 초인종’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선택한 초인종은 바로 ‘온라인 대외활동’이었다. 1학년 때부터 관심이 많았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매일 학교 포털의 공지사항과 대외활동 구인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1학년을 받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양한 서포터즈에 열심히 지원했다. 사람과 부대끼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온라인으로 전환된다고 내 관심이 바뀌지는 않았다. 오히려 온라인으로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새로운 관점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온라인 서포터즈는 참으로 그 무엇도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될 수 없었다. 온라인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즉, 침대에 누워 클릭만 해도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소파에 앉아 팝콘을 주워 먹으며 TV와 함께 타자를 쳐도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제대로 참여하는 사람 따위는 기대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갓 1학년에서 벗어난 2학년이 참가할 수 있는 서포터즈는 가벼운 마케팅 서포터즈였다. 다른 이들도 나와 나이가 비슷했고, 다들 나이에 걸맞은 책임감을 선보였다. 결국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서포터즈 활동 몇 개를 클릭 몇 번으로 수료했다. 모순적이게도 지원할 때는 경쟁률이 치열했던 활동들이었다. 모두 나와 같이 울리지 않는 초인종, 아니 우리의 불안을 잠재울 그 무언가를 찾았지만 뭐든 손안에 넣는 순간 우리의 불안은 나태로 바뀌었다. '이거 하나 스펙에 넣으면 되겠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결국 감옥에 익숙해져, 스스로를 그곳에 가두고 말았다.
아무도 열심히 하지 않아도, 그 안에서 무엇이든 찾으려고 노력해 봐. 보석은 아닐지라도 작은 깨달음 정도는 얻을 수도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