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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Apr 16. 2024

심각하지말고 진지하게

안나 보베르크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

진지함은 엄숙함도 심각함도 아니다. 진지하다는 것은 마음과 몸이 한결같다는 말이다. 진지하다는 것은 매혹된 타자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다. '진지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 쓰는 태도나 행동 따위가 참되고 착실하다.'이다. 한자어 뜻으로는 참 진(眞)  쥘 지(摯)를 사용한다. 참된 것을 꽉 쥔다는 의미이다. 참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꽉 쥔다는 것은 무엇인가? 스웨덴의 화가 안나 보베르크의 그림이 이를 설명해 준다.

 



안나 보베르크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 1900, Oil on canvas, 180 ×85 cm


스웨덴의 화가 안나 보베르크(Anna Boberg, 1864~1935)는 노르웨이 북부해안의 로포텐 제도를 그렸다. 당시 여성화가들의 그림 소재가 집안의 풍경이었던 것 달리 안나 보베리는 극지방의 풍경화가를 그렸다. 남편과 노르웨이 북부 지역을 여행하던 중 로포텐 지역에 매혹되었고 인근에 집을 지어 살면서 30년간 이 지역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


<산악, 노르웨이에서의 습작>에서는 시커먼 바다 위로 서늘한 빙하가 솟아 있고 하늘은 붉은 기운이 돌아 신비롭다. 마치 점묘화를 찍은 듯 여러 번의 겹칠을 해서 색을 쌓아 올렸다. 사진으로는 그 질감이 잘 담기지 않아 아쉽지만 붓질을 하고 평평하게 누른듯한 채색기법이 독특하다.  하늘색 없는 하늘, 흰색 없는 얼음, 검은색 없는 어둠이 색채가 모호하고 신비로워서 그녀가 어떤 풍경을 보고 매혹되었을지 짐직할 것 같았다.



안나 보베르크,  1910


안나 보베르크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다. 그녀는 두꺼운 옷과 털모자, 털신발로 온몸을 싸매었고 붓을 잡기 위한 손가락만 장갑을 뚫고 나와 있다. 이젤을 허리에 매달아 붙들고 하얀 눈 밭 위에 모피를 입고 있는 보베르그의 모습은 흡사 극지의 탐험가를 연상시킨다. 


그녀는 탐험가이자 개척가였다. 그녀는 여성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의 주제를 극지방 풍경으로까지 확장시켰으며 그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했다. 그녀의 세계가 이토록 확장되었던 것은 극지방이라는 매혹적인 세계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주침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이고 꾸준히 그것을 가지려 했다. 


자신을 매혹시켰던 풍경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이야 말로 참되고 진지한 행동일 것이다. 내 마음에 담긴 것을 몸으로 그려내는 것이 바로 진실한 행동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그려 내는 것이 착실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타자를 마음에 담고 그 타자를 그리는 것이 바로 진지이다. 그림을 든, 글이든, 노래든, 춤이던 우리는 사랑하는 타자를 온몸으로 그릴 수 있다. 매혹된 것을 발견했다면 꽉 쥐어야 한다. 파리의 사교계 여성과는 다른 에스키모 복장을 하더라도, 허리춤에는 이젤을 기꺼이 매달며 자신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나다움, 자기다움, 참자기, 주체성, 본래의 모습 등은 단순한 마음의 각오로만은 회복되지 않는다. 마음과 행동이 참되게 서로를 꽉 붙들 때, 진지하게 수행했을 때만 비로소 회복될 수 있다. 한과의 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분명 오랜 시간 길들여진 습관이 혹한처럼 몸에 들러붙어 몸을 굳게 만들 것이다. 그럼에도 신발을 단디 고쳐 신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게 마음에 담긴 풍경을 온몸으로 부딪혀 그려야 한다.


매혹된 것을 취하는(그리는, 익숙해지는) 과정이 솜사탕처럼 달콤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슬픔도 아니다. 사랑하는 것을 그리는(취하는, 익숙해지는) 일은 고통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게 한다. 그러니 진지함은 무겁거나 심각하지 않다. 고행조차 기쁘고 유쾌한 여정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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