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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Aug 18. 2023

자유,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껴안는 것이었다

르네 마그리트 <통찰력>

알을 보며 새를 상상할 수 있다면


심리적으로 움추러드는 시기가 있다. 나 역시 내면의 세계에 몰입하면서 외부와의 강한 단절감이 들었던 때가 있었다. 퇴사를 한 후 명함이 없는 삶을 살면서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마치 알속에 갇힌 듯 막막하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멈춰있는 시간이 나를 좀 먹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흔히 알을 보며 새가 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알에서 깨어나 새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기대되신 걱정의 말을 한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눈에 잘 지각되지 않는 활동을 의미한다. 돈벌이도 되지 않고, 결과가 분명하지도 않고, 과정도 모호한 그런 일들을 쉽게 '쓸데없다'라고 쉽게 말한다. '알'을 보면서는 쓸데없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다른 것을 숨기고 있고
우리는 늘 우리의 시각 때문에 숨는 것을 보려고 한다.
-르네 마그리트-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더 가져보기로 했다. 고독이 창조의 재료가 된다는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더 적극적으로 홀로 있는 시간에 머무르려고 했다. 그렇게 발버둥을 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적극적으로 찾게 되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 나의 시선을 돌려놓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글과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글과 그림은 내게 세상과 만나는 구멍과 같은 것들이었다.


르네 마그리트 <통찰력>, 1936, 캔버스에 오일, 개인소장


르네 마그리트의 <통찰력>에서는 화가가 알을 보며 알속에서 앞으로 태어날 새를 상상하고 있다. 작품의 원제를 직역하면 투시(Clairvoyance)이기도 하며 '자화상(Self Portrait)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마그리트는 알을 보며 작가 자신을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화상이란 자신을 투시하여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마그리트는 대상의 표현을 알쏭달쏭하게 하면서 감상자 스스로에게 다양한 질문을 하게 하면서 사고를 확장시키는 그림들을 그렸다. 이 작품 또한 눈에 보이는 그 자체가 아닌, 대상 이면을 보라는 메시지가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통찰력>을 통해 지각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보게 한다.



현재를 보며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가장 원시적인 동물에서도 의식은 권리적으로는 광대한 영역을 덮고 있지만, 사실적으로는 응축되어 고정쇠로 조여 있는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신경중추들 각각의 진보는 유기체가 더 많은 수의 행동들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실재를 둘러쌀 수 있는 잠재성에 호소하여 고정쇠를 풀어 버리고 의식을 더 자유롭게 통과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손은 <창조적 진화>에서 우리의 의식 속에는 인간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것이 응축되어 있고 고정쇠로 단단히 조여져 있기 때문에 드러내지 못한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유기체, 즉 인간이 더 다양한 선택을 더 행동적으로 수행한다면 응축되어 있는 잠재된 기억이 풀려나 의식(정신)을  자유롭게 해 줄지도 모른다.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의 모습 '알'속에 응축된 채로 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은 내 안에 모두 들어 있다. 새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능력도, 하늘을 품을 수 있는 마음도 모두 자기 안에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잠겨있는 자물쇠를 어떻게 열 것인가 하는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1940, 캔버스에 오일


나는 새가 되고  싶었다.  어디든 날아가고 싶었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자유였다.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자유였다. 속박으로부터, 구속으로부터, 허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자유였다. 수동적 몸부림이었다.


지금 새를  동경하지  않는다. 내 안에 이미 하늘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디든 무엇이든 품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한, 정신에 응축되어 있던 유기체 진화의 기억이 자물쇠를 풀고 밖으로 나오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는 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마음은 행동하게 한다. 더 예민하게 감각하고 더 섬세하게 펼쳐나가게 한다. 나의 하늘 너머 너의 하늘에 까지도 가닿게 한다. 움직이자. 의지를 가진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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