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연결 19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우 Aug 20. 2022

[소설] 연결 19

도청

간밤에 먹은 마오타이와 혜정이가 들려준 충격적인 이야기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모든 것이 아직 혼란스러웠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해졌다. 그들에게 유비쿼터스가 왜 필요했는지. 그들은 애초부터 유비쿼터스가 돈을 얼마나 벌 지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회원 데이터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들이 치밀하게 계획한 체스판에서 유비쿼터스는 하나의 기물이었을 뿐이었다.

이제 알아내야 할 것은 그 데이터가 어디로 흘러갔는가이다. 혜정도 그것까지는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전에 혜정을 설득해서 대형그룹에서 생성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

‘위험한 일인데 혜정이가 도와줄까?’

‘혜정이를 어떻게 설득하지?’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혼자서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먼저 임상혁에게 이 사실을 알릴까?’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정보일뿐더러 아무도 임상혁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호텔방의 벨소리에 생각의 흐름이 끊겼다.

“누구세요?”

“지은아, 나야 혜정이.”

‘내가 혜정이에게 호실 번호를 알려줬었나?’라고 생각하면서 문을 여는 순간 혜정이 방 안으로 떠밀려 들어왔고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그고 험상궂은 얼굴로 나와 혜정을 노려보았다.

“이 년들이 우리를 엿 먹이려 하고 있었어.”

“지은아, 미안해.”

“혜정아,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혜정을 바라봤다.

“어제 우리 둘이 만난 것을 회사에서 감시하고 있었나 봐. 내 스마트폰에 도청 소프트웨어가 깔려 있었어.”

“뭐라고?”

“내가 너에게 한 말을 모두 듣고 어제저녁에 우리 집에 이 두 사람이 찾아왔어.”

“너에게 피해 안 가게 하려고 했는데 네가 어디 있는지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서…… 너무 무서웠어……미안해.”

혜정은 어린아이처럼 울먹이기 시작했다. 두 남자는 나와 혜정이의 온몸을 밧줄로 꽁꽁 묶고 테이프로 입을 막은 후 출입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방을 나갔다.

오후에 신성일 전무가 샹그리아 호텔로 찾아왔다.

“전무님!”

TFT 시절 같이 일했던 신성일 전무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그를 불렀지만, 순간 그가 모든 계획의 중심에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방문을 지키던 두 떡대가 같이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자 신성일은 두 사람을 나가게 했다.

“이렇게 예쁜 아가씨들이 이런 일을 벌일지 몰랐군요.”

싸늘한 신성일의 목소리에 나는 맥이 빠졌다.

“전무님…… 저는 그냥 회사 일이 힘들어서…… 친구에게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혜정이 울먹이면서 말했다.

“사람이 그렇게 물러서 쓰나요. 그 하소연 때문에 정혜정 과장님 뿐 아니라 한지은 과장님도 피해를 보게 됐잖아요.”

신성일은 능글능글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혜정을 번갈아 보았다. 같이 일할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전무님, 한지은 과장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제발 한지은 과장님은 풀어주세요.”

“눈물 나는 우정이로군요.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알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죠?”

“전무님, 지금 중국에서 하고 계신 일은 엄연히 불법입니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도 상관이 없으신가요?”

나는 신성일에게서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 잦아드는 목소리를 겨우 추스르며 말했다.

“세상에 알려질 일이 없을 테니까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세상에 알릴 겁니다.”

“그런가요? 제 생각에는 한지은 과장님이 이 방에서 나갈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꾸미시게 된 거죠? 대형그룹의 실세라고 불리시는 분이 이런 일을 하고 계실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지방대 출신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대형그룹에 들어와서 이경도 회장의 발바닥만 핥고도 승승장구하시더니 그걸로 부족했나요?”

“어린 줄로만 알았는데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계신가 보네요, 한지은 과장님?”

신성일은 눈을 깔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내가 이경도 회장의 발바닥만 핥았다고요?”

신성일은 한 발 앞으로 다가가서 지은이 왼쪽 뺨을 오른손으로 후려쳤다. 내 입에서 짧은 비명소리가 나왔고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대형그룹이 그렇게 만만한 곳인 줄 아나 보죠? 윗사람 똥꾸녘만 핥아주면 승진시켜주는 줄 알아요?”

“전무님이 세운 공로가 뭐가 있죠? 모두 회장님이 시켜서 한 일로 승진하신 거 아닌가요? 이번 일도 마찬가지였을 테구요.”

혜정이 더욱더 공격적인 태세로 바뀐 내 얼굴을 불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젠장!”

신성일은 까마득한 여자 직원이 자신을 깔보는 것을 못 참겠다는 듯이 지은의 옆에 있는 의자를 걷어차며 말했다. 걷어 차인 의자가 내 옆구리를 강타했다.

“이경도나 이재영이 쥐뿔이라도 아는 줄 알아?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란 말이야. 지방잡대를 나온 내가 그 잘난 명문대 나온 놈들, 해외 유학파 놈들도 생각 못한 걸 생각해냈단 말이야. 대한민국 대통령도 내가 만들었다고! 알겠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자신이 만들었다는 신성일의 말을 듣고 나는 흠칫 놀랐다.

‘이 사람들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신성일의 어투는 반말로 바뀌어 있었고 얼굴은 새빨갛게 변해있었고 굵은 힘줄이 이마를 가르고 있었다. 그의 호흡은 아직도 거칠었고 지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지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 년들, 잘 지켜!”

신성일은 방문을 나가면서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떡대에게 말했다. 기약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혜정도 나도 기진맥진해 있었다. 배에서는 연달아 꼬르륵 소리가 났고 말할 힘조차 없었다. 혜정에게 기대어 까무룩 잠들어있던 나는 ‘쾅!’하는 문소리와 함께 잠이 깼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남자들이 방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지은 씨, 괜찮아요?”

임상혁의 얼굴이 뿌옇게 보였다.

“싸가지가 또 꿈에 나왔어……젠장……”

“뭐라고요?”

임상혁의 당황한 얼굴이 조금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지만 내가 현실을 자각한 것은 임상혁의 얼굴 뒤로 나타난 공안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문 앞에 서있던 떡대들과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에 그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나와 혜정이를 본 공안은 우리 역시 수갑을 채우려고 했다. 임상혁은 어눌한 중국어로 뭐라고 말을 했고 공안의 주머니에 봉투를 쑤셔 넣었다. 공안들은 돌아갔고 그제야 임상혁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전 18화 [소설] 연결 18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