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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그루 Mar 19. 2024

언제까지 아가씨농부 할래?

9년 전, 얼떨결에 사업자등록을 해야 했을 때 길게 고민하지 않고 이름을 정했다. 당시 엄마의 사업자명이자 블로그 별명이었던 '진도농부'에 아가씨농부를 더했다. 그렇게 태어난 이름이다. 진도농부 미스팜.


같은 농산물을 팔아도 엄마와 달리 젊은 여성들을 타깃으로 삼겠다며 디자인에 돈을 썼고 포장단위를 점점 줄여나갔다(지금 생각하면 포장재를 예쁘게 바꾼다고 해서 젊은 여자들이 산다는 것은 편견이다).


부모님이 열심히 농사지은 농산물을 내가 팔면 수수료로 얼마를 떼어가는 식으로 몇 해를 운영했다. 인센티브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니 정말 즐겁게 팔았다. 열심히 살다보니 신기한 일이 생겼다.


분명 내가 생각한 타깃은 젊은 여성들이었는데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있으신 어머님들이나 아버님들이 주 고객이 된 것이다. 젊은 아가씨가 열심히 농사를 짓는 것이 너무 기특하다. 내 딸이랑 동갑인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니 대견하다. 우리 며느리하면 참 좋겠다.


이렇게 나는 기특하고 대견한 또 다른 딸이자 며느리가 되었다.




그런데 진도농부 미스팜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나자 슬슬 같은 질문을 많이 받게 되었다. 네가 평생 결혼을 안 할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아가씨농부라고 할래?


나는 그 질문이 참 유치하고 우스웠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아가씨농부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거 아닌가? 오히려 나만의 멋진 브랜드가 되는 거 아닌가? 물론 앞에서는 하하, 그러게요 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물론 이러한 논란(?)때문에 이름을 바꾼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업자의 이름은 그냥 '진도농부'이다.


2018년도에 방앗간을 만들면서 과세사업자로 전환이 되었고, 사업자가 바뀌는 김에 엄마는 폐업을 했다. 엄마가 폐업을 하신 김에 내 사업자이름도 바꾸었다. 이름만 바꾸었을 뿐인데 뭔가 엄마에게서 가업을 물려받은 기분이었다.




요즘 우리 농장에서는 한창 쪽파김치를 팔고 있다. 겨우 텃밭정도에 심은 쪽파로 몇날 며칠을 김치로 팔고 있으니 엄마가 내심 걱정을 하신다. 이러다 우리 부자되는 거 아니야?


이왕 하는거 엄마 앞으로 다시 사업자를 만들어보면 어때? 요즘에는 재창업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원사업도 잘 되어있으니까. 아예 송산리를 벗어나서 오일시나 진도읍내에 반찬가게를 오픈하는거야!


하지만 우리 엄마는 사장님은 하고 싶지가 않다고 했다. 그냥 좋아하는 김치 만들면서 차라리 직원처럼 월급만 받고 싶다고 하셨다.


온식구가 파김치가 되도록 매일매일이 쪽파일상이지만 나도, 우리부모님도 누구하나 월급을 받지 못한다. 어서 화끈하게 자리잡아서 화끈하게 두 분께 월급을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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