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모두의 마음 속에
지난여름, 계곡에서 놀다가 근처에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다가와 쓰다듬던 아이는 잠시 후 눈두덩이 주변으로 두드러기가 심각하게 번졌다. 황급히 텐트를 정리하고 급히 근처 응급실을 찾아갔다. 주말이었고 외지여서 가장 가까운 응급실도 차로 25분 거리였다. 맑던 날씨도 갑자기 우중충해지더니 비까지 왔는데 병원에 도착할 즈음, 날씨보다도 더욱 스산한 풍경이 펼쳐졌다. 한적한 가평 산길에 갑자기 큰 강줄기를 앞에 두고 광활한 산 부지에 거대하게 지어진 새하얀 건물 단지들이 모여있었다. 어쩐지 멋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위압감을 느꼈다. 도착하기 5분 전의 가평 산길 분위기에서의 전환이 너무 극적이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안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갑자기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연출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눈가가 퉁퉁 부어 아마 제대로 뭘 보지도 못했겠지만 남편과 나는 그 단지에 들어서자마자부터 둘 다 도대체 이게 다 뭐야, 하면서 묘한 기분에 휩싸였고 사실 다급한 게 아니면 여기서 당장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애를 살려야 해서 일단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일요일 저녁에 가평 산중에 위치한 병원 응급실에 환자 일행은 우리뿐이었다. 안 그래도 매우 기묘하고 스산한데 담당 의사도 기묘할 정도로 과한 미소를 장착한 일본 여자 의사였다. 친절하기만 한데도 무서운 기분 혹시 아시는지? 다행히 처치는 생각보다 간단했고 약처방을 받은 후 빠르게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당장 다급한 상황이 일단락되고 나서 안심한 후 병원 주차장 쪽으로 다시 밖을 나서서 더 자세히 둘러보니 막연히 느꼈던 기이함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운전을 하며 되돌아 나가는 길에 보니 우리가 다녀간 종합병원 외에 연구소, 수련원, 국제중고등학교, 실버타운, 대학원, 크루즈, 정체 모를 돔 형식의 건물까지 하여간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에 도대체 무엇인지 종합병원 이름을 중심으로 검색해 보았고 정체가 밝혀졌다. 그곳은 가평 군수가 불법적으로 인허가하여 지은 후 사후 용도 변경을 한 것으로 밝혀진 통일교 재단 단지였다. 돔 형식의 건물은 천원궁, 천정궁이라 불리는 궁전이었다. 궁전이라니. 너무 웃기고 무섭다. 하여간 저기에 들어갔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어떻게 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참 이해가 안 가는 게, 난 한학자가 괴랄맞은 복장 입고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미친 여자인 거 딱 알겠던데 참어머님이라고 그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다 거기까지 빨려 들어간 걸까? 남편 말로는 설마 믿는 것이겠냐며, 다 돈문제라는데 기득권 정당과 깊이 얽혀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어릴 적 주인집에 얹혀살던 나는 주인집의 또 다른 방에 얹혀살던 어떤 언니가 나이가 한참 많은 아저씨를 자주 방에 들인 기억이 있다. 엄마는 이를 보고 나에게 절대 저 언니랑은 말도 하지 말고 친하게 지내지도 말라고 주의를 단단히 주곤 했는데 알고 보니 통일교 신자 커플이었다. 통일교는 그렇게 신자들끼리 결혼을 시켜 자식을 낳게 하고 그들이 모태신앙을 갖도록 하며 신자의 규모를 증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게 하라는 대로 잘하는 신자들에게 오죽이나 물심양면 잘해줬을까. 직장도 사는 곳도 다 연결하여 제공해 주고 그러다 보면 이 험한 세상 쌩으로 고생하지 않고 안락하게 보호받아온 그들이 통일교나 한학자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옳은 소리 하는 건 어렵다. 결국은 개인 신도들도 생사 때문에, 돈 때문에 열렬히 추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건 사이비 종교니까'라고 다른 종교들이 오만할 일이 아니다. 약 74년간 가톨릭 교회에서 지은 사회시설인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가톨릭 수녀회는 미혼모와 매춘 여성, 고아인 여자, 성폭행 피해자 여성들을 한데 모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인권 유린과 노동착취, 성범죄를 저지르고 세탁소 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강제 입양하여 돈을 버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암매장한 영아의 시신만 796구가 발견되었고 그들은 부지가 재개발되면서 급하게 시신을 처리하려다 대부분 불태워버리기까지 했다. 차라리 연쇄살인마가 나은 지경이다. 연쇄살인마는 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살인행위를 즐기면서도 자신이 정상이 아님은 인지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그런 짓을 할 만큼(예:자신이 심판자라고 생각함)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등, 인식이 왜곡되었거나 잘못된 행동이어도 개의치 않아 하는 것이다. 연쇄살인마는 가끔 출현하는 개인이지만 종교는 무구한 역사와 전통과 규모와 힘을 가진 집단이어서 국가조차 함부로 건드리기 힘들다.
교리와 신념으로 완전무장하고 거대하기까지 한 종교가 특정 대상을 짓밟는 경우 그 잔혹함은 연쇄살인마의 출현보다 더욱 심각하다. 정통 종교의 직속 산하 시설에서 잔혹한 일이 벌어진 경우 그들은 아무리 증거가 나와도 다소 과한 경우가 있었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신의 뜻이었다고 말한다. 잘못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듯 가톨릭 수녀회는 여전히 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사과를 하지 않고 배상액도 절반에 못 미친 배상 이후에 버티고 있다. 어떤 신이 그런 뜻이 있단 말인가? 난 이런 점에서 또 한 번 종교 자체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래의 교리를 제대로 이어가지 않고 결국 종교를 가장한 이익 집단으로 변질된 종교인 척하는 종교에 대한 경멸을 느낀다. 그 어떤 신도 정치를 하라거나 취약한 대상을 함부로 유린하라고 했을 리 없다. 잘못에 대한 사과도 할 줄 모르면서 신을 섬긴다니, 자신이 모시는 신을 욕되게 하는 수녀들이라니, 너무 웃기다.
이 책은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다큐멘터리 소설이 아니라 평범한 가장의 일상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했다. 사소한 것 투성이인 자신의 삶에서 그저 사소한 일인 줄 알았던 어떤 일이 실상은 엄청난 참상의 일부임을 알게 되면서 겪는 개인의 심리와 행동 변화가 서사의 중심이다. 이러한 서사는 어떤 당위성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되려 많은 이들에게 더 울림을 준다. 다른 책들과 달리 이 책은 특히 책 말미의 해설 부분도 꼭 읽는 것을 추천하며 사건에 대해서도 따로 검색해 보기를 권한다. 사는 동안 여러 이유로 알아도 모르는 척하거나 용기를 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개인의 사소한 행동이 가진 힘을 믿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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