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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 Apr 26. 2021

['S] 나에게 필요한 악몽

우습게도 악몽은 나를 길렀다.

 우습게도 악몽은 나를 길렀다.


 어릴 적엔 매일 밤 약속에 나가야 했다. 털이 북슬북슬한, 가끔은 눈이 한 개기도 하고, 일곱 개이기도 한 여러 괴물이 밤마다 우리 집 베란다에 나타나서 그들과 싸우다 보면 아침이 되었다. 잠이 들 때까지만 해도, 아빠나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했으나, 꿈에서는 혼자 척척 해내었다. 가끔은 내가 먼저 괴물을 기다리기도 했다. 단 한 번도 괴물을 물리친 적도 없었고, 당한 적도 없었지만, 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 훈련 덕분인지, 꿈 밖에서도 주위를 관찰해야 했고, 남들보다 눈치와 행동이 빨랐다. 어느 날은, 학급 친구와 자연관찰 대회에 즐겁게 나갔다가 수상을 했다.  


 초등학교 진학 후에는 털북숭이 대신 사람이 나타났다. 땀이 난 손 탓에 미끄러질 듯한 바통을 간신히 조그마한 손으로 쥐고 운동장을 죽어라 뛰는데, 한 친구가 태연히 앞서 뛰더니 뒤돌아 내게 싱긋 웃음을 보였다. 아플 땐 늘 그 꿈을 꾸었다. 아니, 그 꿈을 꾸고 나면 백발백중 앓았다. 꿈에서 깨면 축축한 베갯잇을 맞아야 했는데, 그 친구의 표정만큼 무서운 것은 없어서, 학교생활 내내 두려운 상황이 생길 때는 그 악몽을 떠올리며 많은 시선과 침묵을 이겨냈다. 뒤처지고 싶지 않아 하던, 꿈에서조차 최선을 다하던 내게 집중했다. 하나를 하더라도 치열하게 했다. 


 악몽은 정작 필요할 때 찾아와 주지 않았다. 열아홉, 한때 경찰이 되고 싶어 <그것이 알고 싶다> 10년 치 회차를 몰아보는 바람에 불면증에 걸렸다. 세상이 두려워서, 늘 누워 기숙사 옷장 위 한구석을 응시하며 룸메이트의 숨소리에 의지했다. 그 숨소리마저 무서워지는 날이면, 어떤 꿈이든 좋으니 잠으로 이끌어달라고 기도했다. 길을 잃었는지, 악몽은 날 지독히도 찾아오지 못했다.


 스무 살은 어른들이 심어 놓은 판타지 같지만은 않았다. 즐거워 보이던 수다와 술자리 이후에는 쓸쓸함이 따랐다. 새로운 일로 지나가는 세월은 정답인 듯한 오답과 오답 같은 정답 속 선택해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20대의 고뇌엔 답이 없어 한 자리에 오래 서 있는 날이 많아졌다. 가끔은 꿈꾸지 못하고 생각만으로 지새운 밤이 가고 아침이 되었다. 아침에야 잠들어 점심에 잠에서 깨고 나면 어둠은 또 금방 찾아왔다. 하지만, 이 모든 고민이 부질없게도, 어느 날부터는 “너는 뭘 잘해?”, “너는 뭘 맡고 싶어?”라는 질문이 가장 무서워졌다.


 그럴 때면, 괴롭히면서까지 나조차 몰랐던 내 모습과 본능을 꺼내 준 악몽이 그리웠다. 수백 개의 갈림길 속에서 한참을 멈춰있는 한 소녀를 보며, 이렇게 뛰면 된다고 무서운 눈빛으로라도 일러주면 좋겠다. 계속 어딘가로 뛰고 있는, 무언가와 싸우고 있을 주인공을 응원하며 격렬히 젖은 꿈에서 깨고 싶다. 가끔은 너무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가끔은 무서워서 날 달리게 했던, 세상으로 다시 한번 등 떠밀어줄 그 악몽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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