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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 Apr 16. 2021

['S] 차이와 차별

우리는 누구나 차이와 차별을 겪는다.

“야, 들어, 들어. 일단 손 드는 거야!”

초등학교 4학년의 난 강력한 E 성향의 아이였다. 누가 이 시를 읽겠느냐고 하면, 내가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고, 누가 청소할래 물어도, 손을 번쩍 들었다. 누가 오늘 나머지냐고 묻더라도 손부터 들 아이였다. 


5학년이 되어도 여전했다. 특히, 말하기·듣기·쓰기 시간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발표 거리도 많았고, 예쁜 글씨를 1시간 내내 쓰면 받게 되는 다섯 개의 도장은 또 얼마나 날 벅차오르게 했는지.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그 날도 나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은 손을 들고 또랑또랑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그 수많은 정열을 지나쳐, 덩치는 크지만 무기력한 한 소년을 가리켰다.

“이민우, 이번엔 민우가 읽어볼까?”

‘이민우? 걔가 누구야?’ 처음 보는 아이였다. 

‘저런 애가 있었나? 쟤 다음엔 꼭 내가 해야지. 손 장전하자, 오수진’

한참의 정적이 흘러, 다시 쳐다보았을 때, 민우는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데도 한참이었다.

“괜찮아. 민우야. 천천히 읽어보자~”

입은 벌린 것 같은데, 목소리가 희미해서 대답을 한 것인지 분간이 안 갔다. 민우는 내가 원하던 대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토..오.....끼..?와... 거...부..ㄱ...ㅣ? (힐끔) 는..경..경......경..지...주....(꼼지락)”

장전된 손을 잊고, 민우가 창피할 정도로 나는 걔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처음 봤다. 그 어디에서도 나는 글을 못 읽는 애를 본 적이 없다. 아니, 글을 못 읽긴 하는건가 싶기도 했다. 하도 손을 덜덜거리는 탓에 교과서가 너무 흔들려서 읽을 수는 있겠나 싶었으니까. 

결국, 나는 그 날 발표를 하지 못했다. 손을 들 생각이 없었다. 내가 처음 인식하게 된 ‘차이’였다. 그 애가 어떤 앤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다. 몇 번씩 선생님은 민우를 꼭 집어 친구들을 향해 글을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는 늘 기다렸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며, 기다려주었다. 어쩔 수 없는 ‘차이’니까 우린 늘 그 시간을 인정해주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연기가 최소한의 배려라 생각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연기는 대신 수업시간에만 발휘되는 건 아니었다. 처음 민우가 눈에 띈 이후, 내 시야에서 사라질 줄을 몰랐다. 쉬는 시간에 줄넘기 급수제 연습을 할 때,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한 발 뛰기를 할 때, 그 아이를 슬쩍 눈으로 찾았다. 민우는 늘 여자친구들 곁에도, 축구를 하는 남자친구들 곁에도 있었다. 곁에만 있었다. 민우가 먼저 무리에 끼지 않는 것은 물론, 그 누구도 선뜻 민우에게 놀이를 제안한 적은 없었다. 민우가 있는 듯 없었다. 내가 처음 하게 된 ‘차별’이었다. 그땐,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우리도 모르게 그 아이와의 경계를 만들고 구분 지었으리라. 늘 구령대 근처에서 무리를 구경하던 민우의 모습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6학년이 되자 나는 다시 민우를 내 기억에서 지웠다. 


그런 민우를 일주일 전부터 감히 떠올린다. 이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와서, 어찌할 줄 모르고, 덜 바빠 보이는 선배님을 눈치로 찾다가, 간신히 하루에 한 마디 말을 거는 내가, 잠깐의 동떨어짐 만으로도 외로움을 느끼는 내가 감히 구령대의 민우를 생각했다. 난 3주만 더 버티면 적응을 끝낼 거라는 걸 잘 안다. 근데, 민우는, 은근한 차별을 몇 년은 더 받았을, 혹은 받고 있을 15년이 지난 민우는, 무얼 하며 지낼까? 

“수진씨, 나랑 시간 나면 커피 한 잔 어때?”

선배 한 분이, 나를 부른다. 짜증 나게도 나는 하지 못했던 그 한마디에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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