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찾다 Apr 16. 2021

['S] 마스크

누군가에겐 다른 의미의 생계로 다가올 이야기

(1)

 공포 만화에 등장할 것만 같은 ‘하얀 마스크’가 내 별명이었다. 아이들은 청각 장애인인 내가 입 모양으로 말을 읽어낸다는 것을 알곤, 쉬는 시간에 선생님 몰래 흰 마스크를 꺼내 착용했다.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야, 공포의 하얀 마스크다! 경보 삐용삐용” 외치며 즐겁게 뜀박질했다. 그 단순한 행위 하나로, 세상과 단절되었다. 대화 없던 세상은 2D 이미지와 다름없었다.


(2)

2020년, 코로나 19가 발병하면서, 다시 절망했다. 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체가 장애인을 고용한다는 기사를 보고, 매니저를 꿈꾸며, 그곳에서 4년간 마포 질을 하고, 변기를 닦았다. 점장님의 선의로 계산대 업무를 보게 된 지 고작 4개월밖에 안되었을 때, 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우르르 등장했다. 지난날을 어떻게든 버텨온 나를 무너뜨리는 공포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마포 질을 하고 변기를 닦았다. 간혹 청각 장애인을 위한다며,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투명 마스크를 써주었으나, 정작 내 옆에는 온통 흰 마스크만 가득했다. 당장 서로 살기 바빠서, 아무도 나와 내 친구들이 어떻게 새로운 시국을 살아가야 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늘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3)

다행히 세상은 빠르게 변했다.


2026년, 계속되는 변이 바이러스의 탄생으로 백신은 무력화되었고, 대화로 인한 비말을 차단하기 위해, 국제단체는 세계 공용어로 수화를 채택할 것을 권고했다. 그렇게 내겐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수화로 대화하는 게 자연스러워질 때 즈음, 난 대형식품회사 합격증을 점장님께 보여드리며 감사의 절을 올렸다.


2035년, 그렇게 누구보다 더한 의지로 빠른 승진을 해내며 이 회사에서 일한 지 9년이 되었다. 근데, 그 날은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 손을 데었다는 이유로 반차를 냈다.

(팀장님!! 이 뉴스 보셨어요?)

<행성 이주 집행 결정, 바이러스 탈출>

믿을 수 없어. 믿고 싶지 않아. 그냥 이 뭉개지고 엉망이 된 지구에서 제발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고 싶어. 그냥 다 숨기면서 살고 싶어.


(4)

“팀장님~! 우리 이렇게 말하면서 만나는 날이 오다니요~!!”

“그, 그래.. 너무 좋다”

“유 팀장 왔어? 다들 미안한데, 내가 감기 걸려서 오늘 마스크 쓰고 회의 진행해야 할 것 같아. 좋은 날 시작인데 미안해! 유팀장 미안!”

“…”

“유 팀장? 에이 삐진 거야~?”

“선배님 왜 말을 안 하세요? 말 까먹으신 거에요??? 에이~”


그대로 회사에서 뛰쳐나왔다. 당장 잘릴지도 몰라…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하는 거야? 우주복을 벗어 던지며 뛰었지만, 뛰어지지 않았다. 헬멧을 벗어버리자, 헐떡거리는 호흡이 나를 조여왔다. 달려온 구급대원들은 내게 산소마스크를 씌웠다. 평생 나를 숨 막히게 한 마스크가, 날 살려줄까?


(5)

“환자분 정신이 드세요?”

잠시 꿈을 꾼 듯한 나는, 간호사에게 간신히 말했다.

“….선..생님, 전 살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해요…”


이전 07화 ['S] 차이와 차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