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란건 참 간사해.
고향이라는 단어는 나에겐 참 간사해서, 어디를, 무엇을 고향이라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아 고향에 왔구나.. 강화도 바람은 역시 세’
얼마 전 설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굳이 세배를 받지 않으시고 갑자기 불러 세뱃돈을 주시는 풍습 아닌 풍습이 있는데, 집에서 막내이지만 26살인 무직의 내가 올해도 세뱃돈을 받으려니 낯간지러웠다. 하지만 뭘 이런 걸 주냐며 손사래 치던 지난날들과 달리 올해는 그냥 감사하다, 잘 쓰겠다는 말과 함께 봉투를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그렇게 이모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심지어는 한국에 없는 언니에게도. 나쁜 행동은 아니지만, 올해는 왜 손사래를 치지 않았는지, 나 자신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당황스러워 급히 내 방으로 올라가 지난날을 생각하다 어릴 적 동네를 떠올렸다. 사실, 강화도로 이사 온 지는 반년밖에 지나지 않는다. 20년 동안 한 아파트에서 자랐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속 생기고 없어지는 친구들과 할머니들, 유행에 따라 변하고 없어지는 가게들을 지켜봐야 했다. 시간상으로 명확히 그곳은 내 고향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그 집과 동네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했다. 친구가 이사를 한다고 하면, 난 그 아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곤 했다.
‘다른 데 가서 어떻게 살려고…’
그러다 내 차례가 돌아왔다. 성인이 되어 언니도 나도 집을 떠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부모님은 이사를 결정하셨다.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근처 아파트였지만, 괜히 속상해 왜 이사를 가야 하는지 이유를 따져 묻곤 했다. 그러나 더는 고향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내겐 결정권이 없었다. 미련한 마음에 차주에 시험이 있음에도, 굳이 이사를 돕겠다며 고향에 내려갔다.
그 마음은 잠시였다. 곧 익숙해졌고, 집에 올 때면 근처 대형 쇼핑몰로 신나게 놀러 나갔다. 옛집은 순식간에 잊혀, 그저 추억 팔이용 이야깃거리로만 남았다. 그렇게 처음만 어려웠지, 두 번째는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은 둘만의 공간을 새롭게 찾아다닌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다른 집을 찾으셨다. 나도 그런 생활에 금방 익숙해졌고, 그때마다 그때의 집을 사랑했다. 어쨌든 내 가족이 있고, 맘 편히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면 금세 내 고향으로 자리 잡았다.
사실 변하는 건 내 고향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20년의 세월을 같은 자리에서 버틴 만큼, 내게는 그만큼 알지 못한 새로운 세상들이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내겐 새로운 공간이나 타인에 큰 집착을 줄 만큼의 마음 한편이 사라졌다. 한편, 다르게 집중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생각들은 늘었다. 내가 얼마나 변할지, 어떤 식으로 변할지 전혀 알 수 없다. 또 겁이 난다고 변하지 않을 수도, 지난날에만 미련을 가지며 살 수도 없다. 그래서 재밌다. 마구 변하는 내 고향들은, 새로운 환경으로 내게 각기 다른 견문을 주었다. 역시 또 다른 변화를 위해 고향에 잘 갔다 왔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