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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 May 03. 2021

['S] 밥

한 번쯤은 겪었을 학교 이야기


“애들아! 화장실 갈 사람~!”


 친구들에게 소리쳤던 민지는 적막과 멸시의 시선을 받았다. 세상은 하루 만에 변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본인과 같이 화장실에 가달라고 했던, 함께 옆 반에 놀러 가자고 했던 친구들은 없었다. 민지는 우선 아무렇지 않다는 듯, 화장실에 가서 다른 반 친구들과 10분의 쉬는 시간을 보냈다.


 종이 울리고, 3교시 수학 시간이 되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수식 따위에도,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답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선생님의 목소리 역시 그저 웅얼웅얼 배경음악에 불과했다. 민지는 싸늘하게 흘러가는 식은땀으로 오한마저 느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시계를 보니 벌써 수업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다. 20분 안에 민지는 어제 있었던 모든 일을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실수한 게 있나?’


 어젠 혼자 등교했다. 좀 늦게 온 탓에 쪽문 계단에서 신발을 급히 갈아신어서, 선생님께 흙을 좀 튀겼다. 2교시에는 글씨 쓰기 검사를 맡았다. 도장 5개를 받고 기뻐서 엄마에게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3교시 음악 시간에 멜로디언 합주를 했고, 별일 없던 4교시가 끝난 후에는 다 같이 급식실에 가 밥을 먹었다. 코다리 튀김이 맛있다며 친구들과 하나씩 더 먹고 싶다고 떠들다가 혼났다. 5,6교시에는, 아… 설마. 한 번 물어볼까…? 드디어 답을 찾았을 때,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선생님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하자며 곧장 자리를 뜨셨고, 벌써 몇몇이 일어나 있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티가 안 나도록 조금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에 가려는 유경이의 무리 앞에 섰다.


“유경아, 혹시 내가 어제 미술시간에 실수로 물감통 너 자리에 쏟아서 그래?”

“무슨 말이야?”

“아니.. 혹시 내가 어제 그래서 네가 화났나 해서…”

“하, 아니 됐어. 괜찮다고 했잖아. 그래서 뭐?”


 민지가 우물쭈물하자, 유경이는 차갑게 복도를 가로질러갔다. 당장 나오는 울음을 숨기기 위해 아래 3, 4학년 층의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진짜 실수로 그런 건데. 진짜 실수로. 나 어떡해. 당황스러움에 눈물은 둘째 치고, 머리가 아파왔다. 다리가 떨리고 머리가 아파, 더러운 화장실 칸 벽에 몸을 기대었지만 어떠한 방도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수업종이 울렸다. 얼른 눈물을 닦고, 두 칸씩 계단을 뛰어올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본인의 자리에 앉았다. 문득 민지는 깨달았다. 본인 차례라는 걸.


  6학년이 되고 나서, 반에서 인기 있는 한, 두 친구는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는 게 생기면 곧장 특정 친구를 외면했다. 그렇게 몇 번씩 친구를 바꾸어 사귀는 일이 반복되었다. 민지도 그 대세를 따라갔다. 무리에서 떨어지는 순간, 본인이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며 모른 체했다.

 ‘내 친구가 싫어한다 하니, 굳이 화해하도록 애쓸 필요는 없어. 나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잖아… ’

 그때 민지는 본인에게도 차례가 돌아올지 몰랐다. 


 결국,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다. 혼자가 되었다는 걸 아무도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수업시간 내내 생각할수록 확신이 되었다.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까. 어떻게 해야 그대로 행복한 것처럼 보일까. 당장 이번 4교시가 끝난 후 점심시간이 문제였다. 민지는 여태 밥을 혼자 먹어본 적이 없었다. 밥을 안 먹을까? 그럼 담임선생님이 찾을 테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텐데. 아프다고 하면, 엄마한테 연락할 테고, 엄마가 이 상황을 알게 되지 않을까? 걱정을 일단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어김없이 종은 울렸다. 함께 급식실에 줄을 서서 가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급식실 안이 문제였다. 민지는 은근슬쩍 유경이 무리 근처에 앉는 법을 선택했지만, 민지에게 그 어떤 눈길도 주지 않고, 먼저 급식실을 떠났다. 눈물이 조금 고이는 듯했지만,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참으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싫어하던 멸치를 집었다.

“너 멸치 싫어하잖아.”

 민지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수정이가 건넨 말이었다. 지난달 민지보다 먼저 유경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수정이었다.

“너 멸치 싫어하잖아. 왜 먹어. 싫어하는 거 굳이 안 먹어도 되잖아.”

 민지는 누군가가 오늘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본능적인 안도감에, 그리고 수정이에 대한 미안함에 결국 눈물을 두 방울 떨궜다.

“잘못한 거 없잖아. 멸치 먹지 마. 싫어하는 거 굳이 하지 마. 씩씩한 척할 필요 없어. 너를 싫어하는 애들한테 상처 받지 마. 나도 그럴 거야. 노력하고 있어. 쟤네랑 같은 사람 되기 싫어서 알려주는 거야.”

 민지는 부끄러움에 귀까지 빨개진 모습을 들키기 싫어 고개를 식판을 향해 고정했다가, 좋아하는 국을 한 숟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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