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맞는다’. 서양식 표현으로는 ‘lock eyes’. 한 번 눈이 맞은 연인은 적어도 몇 달간 그들만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그들만의 세상에, 그들만의 언어가 생기고 규율이 생기고 그렇게 한 번 더 성장한다. 이 중요한 임무를 누가 수행하느냐. 바로 나. 어깨에 날개를 달고 사랑의 화살을 쏘는 장난을 좋아하는 영원한 어린이 이미지의 나. 감정을 배달하는 큐피드다. 아폴로에게는 황금의 화살을 쏴서 사랑을 배달하고, 요정인 다프네에게는 납의 화살을 쏘아 연애를 증오하게 하면서 유명해졌다.
어느 정도 사회가 안정되면서, 내가 할 일은 크지 않았다. 정말 가끔 심심할 때 내려와 사랑의 화살을 쏘고 관찰하는 정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호감을 보이면 그들이 함께 있을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서로 눈맞을 수 있도록 하면 끝이었다. 물론 세상이 변하면서, 내 화살의 약효도 그리 좋지 못했다. 사람들은 사랑보다는 본인의 온전한 삶을 찾기를 원했다. 무엇보다도, 남의 눈 대신 핸드폰을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눈 맞추기가 쉽진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을 불편해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억지로 생판 모르는 남녀를 이어줄 수는 없는 터. 그런 식으로 일한다면, 부작용이 늘어나는 건 물론 미래에 꼰대 큐피드로 기억될 것이 뻔하였다. (우리 신들도 인간 세상의 눈치를 보는 그런 정도의 사회성은 있다) 사랑을 이어주는 일이 적어지면서 가끔은 적적하기도 했지만, 5년에 한 번 정도 내려와 각자 잘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흥미로웠다.
하지만 남은 인류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당장 대처하라는 명령이 지난주에 내려왔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몇몇 인간은 출산율 때문에 엄청난 재앙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선 우리는 팀을 꾸려, 출산율이 가장 낮은 10개 국가를 대상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아프로디테, 헤라 등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갑자기 이렇게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아, 저기 내가 10년 전에 이어준 부부가 있다. 저 부부를 지켜보면서 힐링 좀 하다가 일하러 가야겠다. 이런 보람을 보고 농땡이도 치는 게 일하는 맛이지.
부부의 손에 든 봉투를 보니, 맛있는 햄버거가 있다. 오랜만에 바깥 음식을 먹으면서 집에서 힐링 하려나 보다. 요새 일이 많은지 부부는 10년 전 모습보다 조금 꾀죄죄해 보인다. 골목을 돌아 부부가 들어간 집에 따라 들어갔다. 근데, 왠지 모를 쾨쾨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부엌에 가니 언제부터 쌓였는지 모를 그릇들이 쌓여있다. 저 밑 접시에는 곰팡이 핀 요구르트 플라스틱 곽이 보인다. 그러고 나서 바닥을 보니 오랫동안 치우지 않았는지 먼지들이 곳곳에 엉겨 붙어 있다. TV를 보고 있는 부부의 옆에도 언제부터 쌓였는지 모를 패스트푸드 봉투들이 가득하다. 두 부부가 TV를 보며 웃는 모습을 구경하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던 걸까 생각한다.
“응… 응… 응애애애애애애~!!”
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향하니, 다른 아이들보다 마른듯한 갓난아기가 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왼쪽 광대 한쪽에 파란 멍이 있다. 아기는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나는 그 방에서 부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간혹 들리는 TV 소리와 그들의 웃음소리뿐이었다. 나는 아기가 혹시나 나의 온기라도 느낄 수 있을까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아기는 울다 지치면 잠시 입을 다물 뿐,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그 조그마한 아기의 목소리는 점점 쉬어갔다. 아니 점점 작아졌다. 일하러 가야 하는데….
그때, 다른 누군가가 나타났다.
“어! 에로스님! 왜 여기 계십니까!! 여기는 지금부터 저희 하데스 님의 주관하에 의식이 치러질 장소입니다.”
“이 아이를… 데려가려는 거야…?”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생명은 조금 더 일찍 저희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 없을까? 이 아이 혹시 나 때문에 죽는 건 아닐까…? 내가 사랑을 이상하게, 잘못 배달해서 이 아이가 죽는 건 아닐까…?”
“에로스님. 큐피드의 잘못이 아닙니다…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최근에 이런 죽음은 흔치 않아졌어요. 사랑을 이겨버리는 그 무언가가 지배하고 있어요……”
“있잖아. 나 못 본척해 줘. 넌 날 오늘 이 장소에서 본 적이 없는 거야. 알았지?”
아무 일 않고, 인간 세상을 관찰하며 돌아다니기만 한 지 2년째. 끊임없이 나를 찾는 연락이 온다.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타이르는 메시지들이 쌓여있지만, 나는 아직 일할 수가 없다. 길거리엔 올해도 역대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다는 뉴스가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