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방
몇 달 전 친구 생일, 망원동의 맛집에 모였다가 정작 생일주로 얼큰하게 취한 주인공을 집에 보내고, 남은 우리는 근처 내 집에서 3차를 했다. 취한 와중에 집에 있던 과자와 과일 이것저것을 꺼내 테이블에 마구 올려놓았다. 그러다 지쳐 내가 바닥에 나가떨어졌을 때 집에 가는 한 친구를 보면서 외쳤다.
"왜? 자고 가~”
6년 동안 많은 게 바뀌었지만, 술에 취하면 집에 가지 말라며 친구를 붙잡는 미련스러운 주사는 변하지 않았나 보다.
사실 술을 먹고 다 같이 자는 건 좀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1살의 어느 날, 대학 동기들과 놀다 보니 금새 자정이 되었고, 이미 몇몇 막차는 끊긴 후였다. 이 김에 더 놀자며 우리는 굳이 학교에서 20분 거리 떨어진, 서비스를 많이 주는 노래방에 가서 한참을 또 놀았다. 곧 드디어 지쳐버렸고, 큰 사거리 버거킹에 가서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잠시 목을 축였다. 계속 놀려던 마음과 달리 목을 축이다 보니 점점 몸에 힘이 빠지고 잠이 쏟아졌다. 우리에겐 이제 몸을 뉘일 곳이 필요해졌다.
“야, 우리 집 가서 자자”
우린 다시 학교 언덕을 넘었고, 새벽 3시에 총 7명의 인원이 우리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우리 집은 다른 원룸에 비해 비교적 넓은 헌 집이었다. 침대에서 3명, 바닥에서 4명이 뒤엉켜 자면서 우리는 무슨 이런 일이 있느냐며 깔깔댔고, 깔깔대다가도 옆집에 들릴라 가끔씩 검지를 입에 갖다 댔다. 그 날 밤 조용한 수다는 계속되었고, 아침엔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을 먹으면서 충만함을 느꼈다. 그 뒤로도, 농민연대활동에서 돌아온 날 내 방에서 후배들과 먹었던 도시 맛의 엽기떡볶이, 아래층 사는 언니에게 해줬던 만두스파게티 등 나의 방이지만, 남과 함께 했던 우리의 방은 선명하다. 아, 돌아가고 싶다.
이렇게 좁은 방에 익숙해진, 아니 좁은 방을 오히려 그리워하는 나는 현실에 안주하는 청년일까.
정부의 청년 및 행복 주택 공급을 보며 많은 이들이 ‘그럼 청년들은 저 조그마한 방에서 월세 내고 살면서 만족하라는 거냐.’ 라며 비판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여 이해했다. 모든 청년이 합리적인, 좋은 곳에서 거주해야만 한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더 좋은 방에서 살기 위해 매년 이곳저곳 집을 찾아다녔고, 이사하기 반년 전부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곳저곳 집구경을 하는 게 습관으로, 이젠 하나의 취미로까지 자리 잡았다. 근데, 왠지 모르게, 그렇게 왈가왈부하는 난리 통에도, 내 관심은 그곳으로 향하지 않는다. 집에 관한 관심이 너무나도 시끄럽다. 대신 스무 살 이후 거쳐온 네 군데의 좁은 방을 생각하며 미련하게 추억한다. 그 지난 진한 추억들이 그립다. 이곳저곳 다른 곳에 떨어져 살게 된, 반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워진, 어른이 되어가는 얼굴들을 내 좁은 방 안에서 맞고 싶다. 시끄러운 밖의 사람들 소리가 마냥 시끄럽게 들리지 않는다. 고요한 나의 방엔 오늘도 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