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중 Feb 11. 2021

일탈이 아니라 범죄입니다.

대구 택배 테러 사건을 지켜보며

최근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택배 테러가 발생해 세상이 시끄럽다. 공교롭게도 내가 사는 지역이고 근무 학교와도 지척이다. 모르긴 해도 그런 일을 일으킬 아이들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그보다는 작지만 비슷한 일도 왕왕 있었다. 아이들이 아파트 놀이터 벽면에 락카로 낙서를 해서(그것도 내용이 하필이면 성적인 것이어서) 경찰이 출동하고 학부모가 역시 ‘변상하겠다’고 해서 페인트칠을 새로 한 사건이다. 언론에 알려질 만큼 크지 않지만 사실상 성격은 비슷하다. 공공 기물을 함부로 훼손하고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서 다수에게 피해를 입힌 일이다. 일의 경중 차이가 있다 뿐이지 본질은 같은 사건인 것이다.



세상의 공분과 함께 나는 교사로서 이번 일에 학교가 크게 엮이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스 댓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견해를 따르면 이런 아이는 십중팔구 가정교육의 문제이다. 모르긴 해도 분명히 부모가 자녀를 방치하다시피 관심을 적게 가지고 제대로 돌보지 않거나 돌보지 못한 가정일 확률이 높다. 소위 임대아파트도 아니고 중산층 가정들이 주로 사는 아파트 단지이기에 불우하거나 저소득일 가능성도 크지 않다. 고만고만한 가정의 아이들인데 아마도 부모님의 보살핌, 사랑, 관심 이런 것과 좀 거리가 멀고 자녀들이 어디서 누구를 만나 뭘 하고 지내건 크게 관심을 두거나 사랑으로 돌보지 않은 가정일 가능성이 크다. 


이건 사실 경험칙이다. 아이들은 때때로 사고를 친다. 문제없이 올곧게 자라기만 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사고는 충분히 그럴 만한 것들이다. 친구와 싸워서 친구를 다치게 했다든지, 좀 위험한 장난으로 다친다든지, 장난을 치다가 타인의 재산에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실수로 큰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아예 대상에서 제외한다. 그런 일은 너무 많아서 사고로 칠 수도 없다. 그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켜서 학교에서 지도하고 가정에서 지도하면 십중팔구 다음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정에서 문제를 인지하기를 거부하고 '우리 애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반응이 나오면 그 아이는 십중팔구 더 큰 다음 사고를 향해 돌진한다. 


이번에 택배 테러의 주동 학생도 들어본 결과 이미 유명인사였다. 일반적인 사고를 뛰어넘는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심지어 '여학생'이었다는 것이다.(양성평등합시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문제가 발생해도 늘 그때뿐이라는 자세로 대한다고 한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결과가 이번 택배 테러이다. 사실 학교는 아무 힘이 없다. 체벌은커녕 반성문도 하나 제대로 못쓰게 하는 곳에서 교사가 도대체 무얼 얼마나 하기를 바라나. 그냥 교화와 훈화, 인문학적인 이상향 만으로 아이들이 천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놀랍다. 그러면 경찰이 세상에 왜 있어? 가 정답이다.




교실 사회는 참으로 순수한 곳이다. 거꾸로 말하면 미꾸라지 하나가 물 흐리기 너무나 좋은 곳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사고를 혼자 치지 않는다. 마음 맞는 애를 꼬드겨 함께 나쁜 짓을 한다. 왜냐하면 본인이 이게 나쁜 짓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상식으로 초등 3~5학년, 나이가 열 살이 넘은 애가 남의 집 앞 택배를 뜯어서 아무 데나 터뜨리면 이게 잘못이 아니고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까? 아니다. 나쁜 짓이고 걸리면 어찌 되는지 다 안다. 단지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는 짧은 판단이 그런 만용을 불러올 뿐이다. 그러면 나쁜 짓인데 이걸 왜 혼자 안 하나? 여럿이 해야 죄책감이나 두려움, 걱정, 겁이 줄어든다. 그래서 여럿이 하는 것이다. 군중심리 속에서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줄이려고. 그러면 뭐라도 된 줄 아니까. 



그래서 이런 문제의 일차적 해결책은 무리를 떼어 놓는 것이다. 무리가 안 되면 그만큼 막 나가는 짓은 못한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친구 무리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학교에서도 물론 신경을 쓰지만 관찰에도 한계가 있고, 지도에는 더더욱 한계가 있다. 민감한 부분이라 학부모들이 가만있지 않는다. 누구랑 놀지 말아라, 누구랑 놀아라 핵심은 그건데 그런 말을 어느 학교가 할 수 있을까? 오직 부모만 간섭할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더한 일도 더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할 것이다. 씁쓸하고 답답하지만 지금의 제도 하에서는 딱히 효과적인 방지법도 대처법도 없다. 학부모들의 자녀 방임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학교는 지도에 한계가 있고 법도 손 못 대는 그런 아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니 결과는 뻔하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선량한 대다수의 아이들과 시민들이 그런 아이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애꿎은 사람이 당하는 것은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법도 못 지켜준다니...



결론적으로 부모는 자녀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국 출필곡 반필면 같은 케케묵은 말 한마디가 범죄를 막는다. 일탈, 비행, 학교폭력 결국 전부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차 하는 순간에 범죄가 되는 것이다. 각자 자기 가정을 최선을 다해 잘 돌보는 것이 최선이다. 학교는 부차적인 곳임을 잊지 말자.



이전 13화 자랑스러운 엄마의 나라, 자랑스러운 아빠의 학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