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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중 Sep 22. 2021

자랑스러운 엄마의 나라, 자랑스러운 아빠의 학교

다문화, 다른 거 아니고 특별한 거

  담임을 맡으면 개학 전에 항상 학생들의 이름을 익힌다. 그러기 위해서 학기 초에 제출하는 가정환경조사서를 유심히 살핀다. 거기서 우리 반에 한 명이 다문화 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베트남 분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뭐 특별한 일도 아니고 다문화 학생들이 적지 않은 시대이다. 그러나 아직은 여전히 긴장된다. 대부분 다문화 학생은 가정에서 외국인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 사실 우리말을 어려워하고 성적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경험상으론 늘 거의 그랬다.


  그런데 등교하고 맞은 우리 반 다문화 학생은 예상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너무 똑똑하고 똑 부러지고 활발하고 성실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다문화라고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는, 다문화 이미지가 연상하는 부족함과 어설픔 그런 것이 조금도 없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심지어 외모도 동남아 혼혈 특유의 까무잡잡함 그런 것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고, 하얗고 깨끗한 얼굴에 누가 봐도 완전한 한국인이었다. 단지 눈동자가 조금 갈색빛을 띠고는 있었지만 한국인도 갈색 눈동자 많이 봤으니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냥 우리 반 24번 이현지였다.

  단 하나, 키가 좀 작은 편이었다. 남녀를 통틀어 우리 반에서 제일 작았다. 혹시 처음에는 영양이 부족하거나 집에서 한국 음식을 잘 못 먹는 상황인가 싶어 조심히 관찰하고 잘 살펴봤는데 급식도 잘 먹고 건강상에 문제는 없었다.

“우리 아빠도 키 작아요.”

  그렇게 그 의문도 풀렸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현지는 공부도 잘했다. 수행평가도 척척 해내고 어려운 수학 문제 하나 틀리지 않았다. 수업 시간마다 손을 들 만큼 의욕적이고 발표도 잘했다. 속으로 의문이 생겼다.

‘어머니께서 베트남분이 아니신가? 이름은 분명히 베트남 이름인데, 베트남에 사는 한국인이었나? 아니면 한국말을 무척 빨리 배우셨나?’

  부끄럽게도 나는 여전히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어 일단 다문화 학생은 적어도 한국인 가정의 학생보다는 우리말을 잘 못하고 따라서 공부도 그렇게 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선입견이 현지 하나로 깨어졌다.

“안~녕~하세~요~ 스생님, 현~쥐가~ 말은 잘 듣~나요? 너~무~ 까브러어가지고...”


코로나로 인해 대면이 불가능한 상황에 전화상담으로 현지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발음만 들어봐도 영락없는 외국인이었다.

“네 어머니, 현지가 뭐든 참 잘합니다. 성실하고 바른 아입니다. 칭찬 많이 해주세요.”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한국 아이들보다 더 잘하는, 조금도 다문화 티를 내지 않는 현지에 대고 칭찬 말고 다른 말이 필요가 없었다. 말을 하면서 그냥 나 자신의 잘못된 생각이 부끄러웠을 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원격수업과 거리두기의 등교로 학교의 교육과정은 만신창이가 되고, 오늘이 학교에 오는 날인지 원격수업 날인지 학생들도 갈팡질팡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처럼 큰 불행을 아무런 예고 없이 맞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죄 없는 아이들이 괜히 즐거운 학교생활만 빼앗긴 것 같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새옹지마라고 이 상황은 길고 긴 인생에 다시없을 위기이자 기회였다. 갑자기 나타난 이름 모를 전염병 때문에 사상초유의 개학 연기에 이어 온라인 개학으로 이토록 오랫동안 집에 머무는 이런 학교생활이 언제 또 올 것인가? 아마 모르긴 해도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나는 결심이 섰다.

“우리 반은 책쓰기를 할 겁니다. 책쓰기가 대단한 것이 아닐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특별한 일이 될 거예요. 지금 코로나로 답답하고 짜증 나는 마음을 시를 쓰면서 위로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는 거예요. 우리는 작가가 될 겁니다. 억지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함께 하다 보면 분명히 재미있을 거예요.”

  우리 학교 이름을 따서 중의적 의미를 가진 ‘작가의 서재’라는 동아리 이름을 지었다.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책을 만들 거라고 작가가 될 거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결국 그 꿈은 이루어졌다.

“콜럼버스의 달걀 알죠? 사실 알고보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뭐든지 처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거예요. 우리도 처음 맞는 이 코로나로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었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상황에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 봅시다.”


  교학상장으로 함께 시를 쓰면서 어쩌다 보니 유튜버까지 되어 직접 영상을 찍어 보여주고 코로나 상황에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 우리의 생각 등을 시로 쓰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낭중지추가 꼭 있는 법, 현지가 멋진 작품으로 친구들의 길을 열었다.


여름 방학에 베트남에 간다고 했다./외할머니를 보러 간다고/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게 되었다.//간다고 할 때는 몰랐는데/못 가게 되니까/진짜 가고 싶다.//외할머니 너무 보고 싶다. (베트남, 이현지)


  너무나 큰 감동과 고마움이었지만 또한 너무나 의외였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보통 다문화 아이들은 자기가 다문화 가정인 것을 숨기고 싶어 한다. 엄마나 아빠가 친구들처럼 한국인이 아니고 외국인인 것을 부끄러워해서 최대한 그것을 숨기고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지는 그런 아이들과 다르게 너무도 당당히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것을 작품을 통해 모두에게 드러냈다. 참으로 기특하고 대견하며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또 한 번 부끄러웠다.

“현지가 참 좋은 작품을 썼군요. 우리도 그럴 때가 있죠, 그냥 하라고 하면 별로 하기 싫은데 못 하게 하면 괜히 더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현지가 그런 마음을 잘 나타내서 우리가 쉽게 공감할 수가 있는 겁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를 나타내는 것과 공감을 하게 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것을 현지는 정확히 지켜서 멋진 작품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베트남 진짜 좋아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베트남에는 맛있는 과일도 많고 오토바이도 많다고 했어요. 이번에 처음 가는 건데......”

  말을 잇지 못하는 현지를 보며 가슴이 저며왔다. 하루빨리 이 나쁜 코로나가 사라져서 현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외할머니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학생들이 부지런히 시를 쓰면서 책을 만들고 있을 때 교육청 공문을 하나 받았다. 다문화 학생 교육감 표창 추천이었다. 말과 행동이 바르고 귀감이 되는 다문화 학생을 추천하면 표창을 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현지를 떠올렸다. 받으면 얼마나 기뻐할까?

‘이렇게 다문화스럽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데다 별다른 스토리도 없는 학생을 추천해도 될까?’

  나는 다문화 표창쯤 되면 정말 TV에 나오는 인간극장처럼 엄청난 휴먼 드라마 같은 사연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현지의 사연이 표창까지 받을 정도가 되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교장선생님은 이런 나의 고민을 한 번에 씻어주셨다.

“현지 학생이 평소에 보이는 행동이 중요하지요. 김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현지는 충분히 표창을 받을 만한 학생으로 보입니다. 그런 학생을 찾아낸 선생님의 노력 또한 대단합니다. 염려 말고 추천하세요.”

  나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용기백배하여 과감하게 추천장을 써 내려갔다.

‘품성이 반듯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책임감이 강하고 모범적임. 성실하고 활발하며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학생임. 생각한 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여 감동을 주는 능력이 뛰어남. 창의적인 표현력과 생동감 넘치는 어휘력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음.’

  내가 알고 느끼는 현지의 장점과 특성, 있는 그대로를 솔직히 썼다. 책을 열심히 읽으며 나와 함께 시쓰기의 재미에 빠져 멋진 작품을 써내는 현지가 그저 대견하다는 마음이었다. 만일 표창장은 아쉽게 못 받더라도 책은 꼭 만들어줘야지. 그리고 은근한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그런 생각도 잊힐 무렵 교장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김 선생님, 현지가 교육감 표창을 받게 되었네요. 잘됐어요. 교장실에서 시상하도록 합시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마치 내가 표창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등교하는 날이 아니어서 집에 있는 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지야, 내일 아침에 상 받으니까 단정하게 입고 오너라. 알았지?”

  뭐냐고 묻는 현지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냥 내일 오면 알게 된다고 얼버무렸다. 그리고 현지는 대구광역시교육감의 빨간 도장이 선명한 표창장을 받았다.

“아이고 선생님, 제가 너무 고맙고 죄송해 가지고... 현지가 너무나 귀한 상을 받아왔네요. 생각도 못해본 건데... 선생님, 너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저녁 걸려온 현지 아버지의 전화는 너무 과분한 감사인사라 부끄러웠지만 현지가 받은 표창을 저렇게 기뻐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은 너무나 좋았다. 이렇게 좋은 일은 당연히 시로 쓰고 싶은 것이다. 현지는 시 쓰기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정말 뿌듯했다.//교장실에서/우리 교장 선생님에게 받아서/더 뿌듯했다. (뿌듯해, 이현지)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교육감이 어떤 분인지 아직 어린 현지가 알 리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중에야 그게 정말 대단한 상인 것을 알겠지만 지금은 그냥 표창장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처음 가보는 교장실에 눈이 휘둥그레해진데다 전교생이 다 보는 가운데 자상하신 교장선생님께 상장을 받고 함께 칭찬에다 간식도 받았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고 자랑스러웠겠는가. 이것이 진정한 아이의 마음임을 느낄 수 있었다.

  현지 덕분에 우리 반 아이들은 시쓰기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다. 쉽고 재미있는 현지의 시를 보며 ‘나도 저렇게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리는 매일매일 작품을 쓰고 부지런히 모았다. 그 결과 2020년 대구시교육청 책쓰기 출판도서 공모전에 응모하여 당당히 선정되었다. 『스파이 가족』이라는 제목을 달고 ‘작가의 서재’ 우리 아이들의 시가 전국 모든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 정식 책으로 독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정체 모를 전염병으로 인한 개학 연기, 2~3부제 등교, 원격수업이라는 황당하고 낯선 현실에서 마스크 너머의 희망을 전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은 것이다. 우리의 책은 각종 언론에 소개되었고 달성교육장님도 직접 축하 전화를 주셨다. 책은 실제로 판매되어 수익금은 교육청을 통해 장학재단에 기부를 하게 되었다. 현지를 비롯한 우리 반 아이들은 정식으로 작가가 되었고, ‘작가의 서재’는 올해도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현지가 있다. 올해는 현지의 담임이 아니어서 희망하는 아이들만 모아 동아리를 구성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지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시쓰기가 너무 재미있어요. 시를 쓰면 날아갈 것 같아요.”

  가족을 떠올려서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시간, 현지의 작품은 정말 날아갈 듯이 경쾌했다.


추석이 되면 친척들이 온다./나는 신나게 놀아서 좋은데 엄마는 한숨을 쉰다./엄마, 뭐가 걱정이야?/너는 돈을 받지만 엄마는 돈을 줘야 되거든. 애들도 많은데.../하다가/어머, 내가 무슨 소리야? 됐고 공부나 해!//괜히 나한테 성질이야! (엄마의 걱정, 이현지)


정성을 들여 요리를 했다./엄마가 맛을 보더니/“맛없어.”//흥!/엄마는 얼마나 잘하길래?/엄마 것을 먹어봤더니/ ...... //맛있구나! (할 말이 없네, 이현지)


우리 집에는 돼지가 산다./뭐든 많이 먹고 내가 남긴 것도 먹는다./더럽다./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다.//아빠만 아니면... (돼지, 이현지)


  올해도 현지와 함께 나의 동아리는 날개를 펼칠 것이다. 이번에도 과감하게 출판에 도전장을 낼 것이다. 이렇게 글쓰기를 잘하게 된 꼬마작가 현지가 있어서 언제나 든든하다. 그리고 작은 것 하나 가르쳤을 뿐인데 이렇게 잘 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래도 내가 아주 못난 교사는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타파하고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좋은 교훈을 준 현지가 올해는 꼭 베트남에 가서 외할머니를 만날 수 있기를, 그래서 내년에는 외할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을 시로 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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