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제대로 읽고 쓰고 이해하기
1. 글자 해독력과 낱말 이해력의 간극
우리나라에는 실제적으로 문맹이 거의 없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세종대왕이 너무나 멋지게 만들어놓은 한글이다. 영특한 자는 이틀이면 깨치고 아둔한 자라도 열흘이면 충분하다고 했으니, 지구상에서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면서 한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정한 문제는 한글만 안다고 한국어를 아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글은 문해력과 거의 상관이 없다. 엄밀히 말해 문자 해독력은 글자의 음가를 정확히 읽어내는 것이다. 가령 뜻을 전혀 몰라도 ‘잠수’라는 글자를 [jam-soo]로 읽고 발음할 수 있다. 그러나 읽는다는 것은 뜻을 아는 것이 아니다. 글자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음가를 발음하는 능력이 아니고 낱말에 대한 이해력, 즉 어휘력이다. ‘잠수’라는 말이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임을 아는 것이 낱말 이해력이다. 기본적으로 어휘를 많이 알면 읽고 쓸 수 있는 낱말이 늘어나서 언어 사용이 더 쉬워진다. 우리가 흔히 영어 공부는 단어가 대부분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같은 맥락이다. 원어민처럼 유창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해도 표현하고자 하는 뜻의 단어를 제시할 수 있으면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된다. 내가 뜻하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휘는 문해력의 기본이다.
2. 문해력을 지배하는 맥락
그런데 문해력은 어휘력이 전부가 아니다. 어휘는 또 실제 언어 사용 상황에서 거의 대부분 맥락에 올라탄다. 그러니까 문해력은 결국 일차적으로 어휘력, 그 다음으로는 문맥 이해력이 필수적이다. 이 두 개가 자유롭게 되면 상황에 맞게 어휘를 읽고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학생은 문맥적 이해가 아직 어렵다. 그래서 단어적 이해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이것만 해도 어휘력이 늘어서 문해력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어휘의 뜻을 모른다. 정말 이것조차 모를까 하는 말도 모른다. 애국, 거래, 공정, 임대 등 일상적인 말의 뜻을 모른다. 정말 몰라서 문장에서 단어를 보면 뜻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분위기와 교육의 영향으로 더 어려운 말은 잘 안다. 차별, 폭력, 평등, 치사하다, 고발, 신고, 고소, 보복, 범죄, 훼손, 항의, 성희롱 같은 말은 너무나 정확히 알고 늘 사용한다. 학교폭력, 체벌 등이 심각한 문제가 되면서 허구한 날 그런 교육을 하니 그쪽 계통의 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탓이다. 주변의 언론 매체와 사회적 분위기가 그런 말을 자주 쓰니까 노출이 잦으면 당연히 이해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말들을 제외하면 학생들의 어휘는 지극히 한정적이다. 정말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사용하는 말, 친구와 늘 쓰는 말, 학교에서 배운 어휘 등이 어휘 사용 범위의 전부이다. 여기에 필수적으로 독서가 들어가서 책에서 많이 접하는 말이 사용 가능한 어휘가 되어야 하는데 독서를 많이 하지 않아서 어휘가 별로 늘 기회가 없다. 예를 들어 독서 같은 간접 경험이 아니면 ‘사뭇’, ‘흠씬’, ‘짐짓’, ‘벽난로’, ‘달포’, ‘귀동냥’ 같은 말을 접할 기회가 흔치 않다. 이런 말은 독서를 통해서만 알게 되는 말에 가깝다. 국어 시간에는 독서하다가 모르는 말이 나오면 국어사전을 찾아보라고 하지만 그것은 수업에 한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상에서 독서 중에 국어사전을 뒤적이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러니까 모르는 말은 모르는 대로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독서를 많이 해서 접하는 어휘가 늘고 어휘의 반복 접촉 빈도가 늘면 어휘력이 늘게 되는데, 문제는 어휘가 늘 정도로 독서를 하는 학생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책 대신 학생들 눈과 손을 점령하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3. 스마트폰이라는 달콤한 함정
문해력을 갉아먹는 주범은 사실상 스마트폰이라는 종합 매체이다. 스마트폰에서 만나는 초고속 인터넷 세상은 어휘가 완성되고 언어 사용 능력이 어느 정도 도달된 성인에게는 문해력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문제는 아직 어휘력도 부족하고 문맥 이해력도 부족하며 독서도 많이 하지 않는 어린 학생들의 빈곤한 어휘의 탑이 스마트폰 언어가 몰아치면 다 무너진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학생들이 가장 자주 접하는 유튜브 영상에서 언어나 문자로 노출되는 어휘의 상당 부분은 신조어나 줄임말, 과장된 재미를 위한 표현이다. 가령 ‘개멋있어’, ‘개노답’, ‘꿀잼’, ‘이거 실화냐?’ 같은 이제는 식상할 수준까지 된 신조어들이 원래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멋있어’, ‘그러면 안 된다’, ‘정말 재미있다’, ‘이게 사실이야?’ 대신 들어가 있어 기본적으로 원뜻을 알기도 전에 변형된 뜻부터 먼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성인이야 원래의 뜻을 알고 신조어가 나오게 된 상황을 알아서 단순히 재미로 쓸 수 있지만, 학생들은 이런 신조어의 뜻을 실제로 정상적인 어휘로 바꾸지 못하며 뜻은 알지만 다른 표현으로 만들 수도 없다. 실제적인 언어의 장벽이다. ‘당근이지’가 더 익숙한 사람은 그게 ‘당연하지’에서 온 것을 알지만 어느 순간부터 ‘당근이다’를 ‘당연하다’의 뜻으로 쓰게 되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원래는 그게 ‘당연하다’였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속도가 생명인 인터넷은 언어를 경제적으로 사용해야 그것이 이윤과 직결되기에 마구잡이로 줄여대고 학생들은 거기서 원래 말의 뿌리도 모르면서 경제적으로 오로지 줄이기에만 목적을 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변형어를 저항이라고는 ‘1도 없이’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전통적으로 원래의 정상적인 말을 쓰는 책이나 교과서, 수업은 오히려 이해가 어렵고 줄이지 않아 지루한 것이 되는 주객전도가 만들어진다. ‘당연하다’가 ‘당근이다’인지 모르는 괴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면 문해력이 쌓일 틈도 없이 무너지는 것이 먼저다. 이것은 방송을 비롯한 매체가 주도한 사회 분위기가 한몫 단단히 했다. 어느샌가 ‘한 턱 낸다’가 ‘한 번 쏘다’가 되어 이제는 그것이 더 자연스럽고, ‘들이대다’의 뜻이 변형되고, ‘1도 없다’가 더 자연스러우며 ‘개피곤’이라는 말이 공영방송의 자막에도 여과 없이 나온다. 당장 인터넷 신조어의 뜻을 알아야 언어 사용이 될 상황이니 정상적인 다른 어휘보다 눈앞의 신조어와 줄임말이 더 급하게 되었고 당연히 그것이 먼저 습득이 된다. 흔히 말하는 정상적으로 읽고 쓰는 문해력이 들어올 틈이 없다. ‘정말 재미있었다. 기억에 남는다.’ 대신에 ‘꿀잼’, ‘대유잼’이라고 쓰게 되니 문장이 단어 하나로 바뀌는 경제성에 묻혀 어휘가 늘 수가 없다. 인터넷 공간에서 경제적 원리로 만들어진 무리하고 억지스러운 언어가 그 편리성의 함정으로 오히려 일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어휘의 이해, 문맥의 이해는 당장 몰라도 되는 별 필요 없는 고리타분한 지식이 되고, 지금 당장은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내돈내산’, ‘대환장파티’, ‘자강두천’, ‘넘사벽’, ‘흠좀무’, ‘자낳괴’ 같은 오만가지 신조어가 더 급한 상황이 되었다. 이런 것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언론 매체에서도 무분별하게 쓰이는 말이 되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정상적인 어휘는 자연스레 잊히고 뒤로 밀리는 것이다.
4. 신조어의 무리한 확장이 문제
영어에서도 이런 현상은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다. ‘plz(please)’, ‘r u ok?(Are you ok?)’, ‘ASAP(as soon as possible)’, ‘SUV(sports utility vehicle)’ 등 수많은 축약어가 있다. 물론 이런 어휘가 부작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편하고 속도가 생명인 세상에서 필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맹률도 높고 배우기도 어려운 영어와 달리 한국어는 한글의 배열 규칙이 단순하여 이런 축약어 없이도 얼마든지 어휘를 늘릴 수 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제대로 된 언어를 접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줄임말과 신조어의 홍수 속에서 이제는 원래 언어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꿀잼’을 정확한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늘 보는 유튜브에서 자막으로 깔리는 말은 대부분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줄임말이며, 일상 대화도 신조어가 아니면 안 되고 같이 하는 게임에서는 그들만의 은어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주어나 목적어가 자주 생략되는 특성을 가진 한국어의 맥락 구조는 해석에 어려움을 주게 되니 문해력이 늘 수가 없다. 가령 ‘한 잔 하자’라고 하면 어디에도 무엇을 한 잔 마시자는 것인지 나와 있지 않지만 관용 표현으로 대부분의 목적어는 술이다. 한국어에서는 물 한 잔을 같이 하자고 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말은 사용을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맥락적 이해인데 이 자체도 배우기 어렵다. 그래도 꾸준히 배워나가야 한다. 그게 문해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맥락을 무시한 신조 어휘들이 판을 치면 자연히 맥락 이해를 활용할 이유도 방법도 없어진다. 문해력에 치명적이다.
신조어로 대표되는 인터넷 언어에는 신조어 말고도 큰 특징이 있다. 바로 단순성이다. ‘꿀잼’, ‘노잼’처럼 상황을 단순화해서 직설적으로 자극적으로 이해가 쉽게 표현하기에 어휘도 단순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짜증(짱)난다’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짜증’이라는 말 외에도 그런 기분을 표현하는 어휘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짜증 나는 상황의 원인과 상태는 수백 가지라 얼마든지 다른 말로 바꿀 수 있어도 학생들은 오직 짜증만 쓴다. 이 무서운 단순성은 어휘를 쪼그라들게 해 문해력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 ‘헐’, ‘대박’ 등도 같은 것이다. 좋든 나쁘든 어떤 상황에나 이런 말로 간단히 정리를 해버리니 다른 어휘를 사용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상황을 생각하여 판단하고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할 어휘를 찾는 노력이 필요 없으니 어휘가 늘 수가 없다.
5. 독서가 해법, 바른말 사용을 포기하지 말아야
당연한 말이지만 문해력의 해법은 독서뿐이다. 독서를 통해 정상적인 원래 어휘의 기초를 다져 놓아야 신조어가 밀고 들어와도 어휘력이 흔들리지 않는다. 어휘력이 풍부한 사람에게는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신조어도 단지 어휘의 확장일 뿐이다. 원래 가지고 있던 어휘가 훼손되지 않고 어휘를 더 늘리는 것은 어휘 재산만 늘어나는 것이라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학생들의 어휘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신조어가 밀고 들어와서 얼마 있지도 않은 어휘의 기초가 다 무너지는 것이 문제이다.
정리하면 단순한 어휘의 반복, 인터넷 속도 경제 원리로 인한 무리한 조어 남발, 독서의 부족, 정상적인 언어의 노출 빈도 축소 분위기가 현재의 심각한 문해력 저하를 낳았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원인은 대부분 아는데 해결을 위한 노력이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일선 학교에서는 인문독서를 강조하면서 사실상 고리타분한 ‘구운몽’, ‘백범일지’ 같은 책을 필독서로 추천하는 실정이다. 좋은 책인 것은 알지만 어린 학생이 지금 굳이 읽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정말 유튜브와 게임을 이길 ‘꿀잼’인 책으로 아이들을 독서의 세계로 유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때에 원론만 고집하는 독서 교육은 정말 답답하다. 학교와 가정의 독서 교육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어린 학생들에게 바른 어휘 교육과 더불어 사회 분위기도 정상적이고 성숙한 언어 사용으로 변해가야 할 것이다. ‘개피곤’이 언어유희랍시고 방송 자막에 버젓이 나오는데 무슨 바른 언어교육을 논할 것인가. ‘개피곤’을 보고 와서 교사에게 ‘개짜증’이라고 하는 학생에게 어떻게 바른 어휘를 가르치겠는가. 언어는 노출 빈도에 의해 습득이 결정된다. 바른 언어에 많이 노출되어야 바른 언어를 쓸 수가 있다. 기후 위기처럼 문해 위기이다. 심각성을 깨닫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