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와 마꼬의 첫 만남

미역국

by 주토토

산후조리원에 있을 당시, 아내는 반려견 포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울 지경이었다. 그런 아내를 위해 한번은 포카를 데리고 병원 앞까지(집에서 25분 거리) 산책을 간 적 있다. 거의 보름 만이었다. 병원 밖에 서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포카는 믿기 어렵다는 듯 반신반의하며 다가갔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저 사람이 '언니'라는 확신이 서자, 포카는 흥분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왔냐는 듯 포카는 아내를 발로 밀치고 몸으로 미는 것도 모자라 점프하여 아내의 얼굴을 핥았다. 원망을 토해내던 울음소리는 환희와 기쁨의 울음으로 바뀌었다. 아내와 포카는 보고 싶었다면서 한참을 서로 끌어안았다.


병원 앞은 재래시장이 있어서 인파로 가득했으나, 그때만큼은 온 세상에 아내와 포카밖에 없는 듯 보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둘의 만남을 흥미로워하며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서 사랑과 축복을 읽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20분 즈음이 지나고 헤어질 시간이 되자, 포카는 안 된다며 울었다. 바닥에 몸을 붙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울음소리는 우리 부부가 포카와 5년 동안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울음이었다. 아내도 나도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았다. 포카를 어르고 달래서 겨우 집으로 데려왔다. 이제 며칠 밤만 지내면 언니가 돌아올 거라며 다독이는데, 왜 그리 슬프던지.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포카의 심정은 어떨지, 거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


아내와 마꼬가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 나는 포카를 잠시 유치원에 맡겼다. 집에 있는데 갑자기 아이가 나타나면 포카가 놀라서 짖을 것 같았다. 그러면 아이도 울 테고, 첫 만남부터 파국이 될 게 뻔했다. 일단 마꼬를 집에 데려와 안정시킨 다음, 포카를 유치원에서 데려와 조심스럽게 인사시킬 계획이었다.


올해로 50년 된 반백살의 집은 늘 웃풍 때문에 쌀쌀한 편이었다. 행여 마꼬가 감기 걸릴까 봐, 나는 집의 문과 창문을 몽땅 닫고 보일러를 최대로 키워놓았었다. 근데 너무 과했다, 과했어. 아이가 지내기 적당한 온도는 20-26도 사이인데, 흡사 가마솥처럼 집이 달궈져서 온도가 32도가 넘어 있었다. 나는 문과 창문을 다시 열어 집 안 온도를 내리는데 갖은 힘을 다 써야 했다. 겨우 온도를 25도로 맞추고 가습기를 틀어 습도를 60으로 맞췄다. 영유아용 침대에 마꼬를 겨우 눕혔다.


그 사이, 나는 포카를 유치원에서 데려왔다. 아내는 마당에서 잔뜩 기대하며 포카를 기다렸는데, 웬일인지 포카가 지난번만큼 격한 인사를 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 포카는 자꾸만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마침 잠에서 깬 마꼬가 울음을 터뜨렸고, 눈이 땡끄래진 포카는 우리에게 이 소리를 들었냐면서, 집 안에 이상한 게 있다며 울기 시작했다.


첫 단추가 중요했다. 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듯 멀찍이서 두 아이를 인사시켰다. 아내는 속싸개와 겉싸개를 한 마꼬를 끌어안고, 나는 포카의 목줄을 짧게 잡았다. 1.5m의 철제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천천히 거리를 좁혀 나갔다. 마꼬에겐 너에게 털 누나가 있다고 설명해주고, 포카에겐 너한테 인간 동생이 생겼다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마꼬를 처음 본 포카의 눈은 지진이 난 것처럼 격하게 흔들렸다. 간식을 주고 쓰다듬으면서 네 동생이라고 말해줘도 아무 소용없었다. 마꼬가 조금만 움직여도 포카는 경계를 풀지 않고 이렇게 우는 듯했다.


‘오빠, 나는 저런 동생 둔 적 없어!’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 부부도 아이에게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하물며 강아지가 핏덩이 같은 인간 아이를 받아들이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아내는 아이를, 나는 포카를 어르고 달래며 허둥지둥하다 보니 금세 저녁시간이었다.


평소처럼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려고 앱을 켰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코로나 19 때문에 주저됐다. 그제야 집 청소와 소독에만 신경 썼지, 식사 준비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2주 동안 조리원에서 맛 좋고 영양가 높은 음식만 먹은 아내에게 아무 거나 줄 수 없었다. 아내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느라 바빴다. 부엌에 들어갈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코로나 19는 얼떨결에 나를 부엌으로 인도했다.


길게 고민할 것 없이 냉장고 위 칸에 모셔놓았던(사실은 거의 방치해두었던) 기장 미역을 꺼냈다. 왠지 첫 끼니는 미역국을 끓여줘야 할 것 같았다. 전기밥솥에 밥을 안치는 동안 미역을 깨끗이 씻고 찬 물에 불려놓았다. 그런데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미역국을 끓여본 적이 없었다. 아내가 차려준 미역국을 먹어본 적은 있어도 아내에게 한 번도 차려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라고 말았다. 급하게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 재료들을 준비했다. 다행히 냉동실에 국거리용 소고기가 있어서 전자레인지로 해동시켰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소고기를 볶았다. 고기가 갈색으로 변하면서 냄비에 누르게 되자 물기를 뺀 불린 미역을 넣었다. 비린내를 날려주고 식감을 부드럽게 해 줄 겸 미역을 한 숨 빠질 정도로 볶은 후, 물을 넉넉히 부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국간장, 소금, 다진 마늘로 간을 했다. 그렇게 중불에서 20분 정도 끓이고 나니 그럴듯한 미역국이 완성되었다.

때맞춰 마꼬가 잠이 들어 나와 아내는 식탁에 앉아 작당을 꾸미는 사람들처럼 조용히 미역국을 떠먹었다. 맛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뭔가 국물이 탁했다. 왜 그런지 나중에 알아보니, 전자레인지로 해동한 소고기의 핏물을 제거하지 않았던 것이다. 살코기에서 핏물이 국물로 스며들어 국물이 탁하게 변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맛있다며 고맙다면서 미역국을 한 그릇 다 먹었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났는데 처음 미역국을 끓여주다니. 잠을 깊이 자지 못해 파리한 아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서둘러 그릇을 치웠다. 감상에 빠질 시간이 없었다. 아내는 마꼬의 짐을 정리해야 했고, 나는 포카 산책을 나가야 했다. 경험해 본 바, 육아는 사랑으로 하는 게 아니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할 때, 핏물 제거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뼈가 있는 고기는 물에 담가 핏물을 빼야 하고, 살코기는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고기 내부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오면서 음식 맛을 해치거든요. 특히 국물에 고기를 넣을 때는 고기의 수분이 그대로 스며 국물이 탁해질 수 있어요.


-참기름과 들기름은 발연점이 낮아서 강불로 가열하면 타버리기 십상이에요. 저는 그것도 모르고 기름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을 몇 번이나 본 적 있죠. 부디 중약불에서 미역을 볶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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