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스테이크
양푼 비빔밥으로 본가와 처가의 반찬들을 모두 리셋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허허벌판에 선 기분이었다. 냉장고가 텅 비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던 터라, 삼칠일(생후 21일)이 넘었음에도 양가에선 우리 집에 방문하길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빌 언덕이 없었다. 마치 보급품이 끊긴 취사병처럼 막막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 고난을 넘어 아내를 위한 식탁을 마련해야 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먹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봤다. 하지만 출산 이후 식욕이 뚝 떨어진 아내는 매번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다고 답했다. 임신 기간 동안 화려한 먹덧을 선보였던 아내였기에 그 변화가 실로 놀라웠다.
임신 중기의 아내는 먹덧이 절정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계시를 받았다면서 ‘오늘은 오므라이스!’, ‘오늘은 마라탕!’, ‘오늘은 연어회!’를 외치며 도장깨기를 하듯 각종 식당을 종횡무진했다. 가수 이랑의 노래 ‘먹고 싶다’를 흥얼거리며 맛집 유랑을 하는 아내가 세상 부러웠다. 하지만 그것이 입덧과 마찬가지로 먹지 못하면 속이 메쓰꺼워서 했던 필사의 몸부림이었단 걸 나는 뒤늦게 알았다.
먹는 것도 일이다. 고된 일이다. 출산으로 소화기능이 떨어져서일까. 아니면 너무 피곤해서 먹는 게 뒷전이 된 것일까. 잠 묻은 얼굴로 강의실에 출석 체크하듯 식탁에 앉아 있는 아내가 짠할 뿐이었다. 그런데 뭐 먹고 싶냐는 물음에 웬일로 아내가 요리 이름을 정확히 주문했다.
“양배추 스테이크를 먹고 싶어.”
요리 자체가 생경했던 나는 당연히 구운 양배추를 곁들인 소고기 스테이크를 떠올렸다. 아내의 설명은 달랐다. 트위터에서 본 채식 요리인데 별다른 레시피가 있는 건 아니고 스테이크처럼 양배추를 그냥 구우면 된다는 것이다. “그게 맛있어?” “맛있대.” 평소 양배추에 대해 별 매력을 못 느끼던 나는 의뭉스러운 얼굴이었던 반면, 아내는 확신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그래, 맛이 있든 없든 아내가 뭔가를 먹고 싶다고 한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혹시 몰라서 양배추가 산모에게 미치는 효능과 부작용을 검색해봤다. 비타민 U가 풍부하여 위염과 위궤양에 좋다고 알려진 양배추는 엽산과 철분도 많아서 임신 중에도 종종 먹었다. 또한 출산으로 소화기능이 떨어진 산모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양배추에 함유된 식이섬유가 장 내 유해물질과 노폐물 배출을 도와 속을 편하게 해 준다. 다만 너무 많이 먹으면 (산모든 일반인이든) 오히려 복부팽만, 소화불량이 있을 수 있다고 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조리방법은 스테이크와 똑같은 방식으로 했다. 스테이크처럼 평평하게 잘라서 깨끗이 씻은 후, 키친 타올로 물기 제거를 꼼꼼히 했다. 올리브 오일을 바른 후, 소금, 후추를 골고루 뿌려 시즈닝을 한 다음 30분 지나 굽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예열을 신경 썼는데,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을 중불로 5분 정도 충분히 예열했다.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구우면 수분이 나와서 양배추 볶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높은 온도에서 양쪽 겉면을 구워준 다음 느끼함을 잡기 위해 편 마늘(한 알)을 넣었다. 마늘도 노릇하게 구워지면 양배추가 타지 않고 안까지 익도록 팬 뚜껑을 닫고 불 세기를 조금씩 줄여줬다. 겉과 속이 충분히 익으면 버터 한 덩이를 녹여 한 번 더 굽고 파마산 치즈를 듬뿍 뿌렸다. 마지막으로 스테이크처럼 10분 정도 레스팅까지 해주면 끝.
스테이크를 썰듯 나이프까지 준비해서 멋을 내긴 했지만 실은 별 기대가 없었다. 기껏해야 양배추일 뿐이지, 뭐. 그랬는데 한 입 먹는 순간, 스테이크 안에 품고 있는 양배추 즙이 터져 나오며 그 마음이 싹 사라졌다. 부들부들하면서도 식감이 살아있는 양배추는 씹으면 씹을수록 달콤했다. 올리브 오일과 버터, 치즈, 소금이 어우러진 양배추의 맛은 샐러드나 양배추 쌈으로 먹었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깊고 풍부한 맛이었다. 아내는 역시 트위터의 레시피는 배신하지 않는다며 몹시 흡족해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얼마 후에 남은 양배추로 또 해 먹었다. 역시나 양배추는 우릴 배신하지 않았다. 이번엔 미디엄 레어가 아닌 웰던으로 익혔는데 푹 익히는 게 훨씬 맛있었다. 소금과 치즈의 감칠맛이 양배추 속까지 스며들어 풍미가 제대로였다. 스테이크의 모양은 신경 쓰지 말고 푹 구우시라. 양배추는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테니.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저는 스테이크처럼 모양을 유지해주기 위해 단단한 심지가 있는 부분을 포함하여 양배추를 잘라줬는데요. 그러니까 다른 잎 부분은 다 익었는데 심지는 속까지 푹 익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다음부턴 심지는 빼는 걸로.
-양배추끼리 붙어있는 게 아니다 보니 굽다 보면 모양이 풀리는데 김풍 님이 올리브티비 <배고픈데 귀찮아>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밀가루를 묻혀주거나 치즈를 얹어서 모양을 잡아주는 것도 방법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