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새우 시금치 된장국
아내와 내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느낀 건 신혼여행 때였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시작해 남부를 지나 로마를 종착지로 한 17박 19일 여행 내내 나는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맛있는 파스타와 피자, 스테이크를 원 없이 먹어 행복했지만 나는 실로 국물이 필요했다.
원체 소화 기관이 약한 편이라 음식을 조심해서 먹는 편인데, 차가운 성질의 밀가루 음식만 먹다 보니 컨디션이 점점 나빠졌다. 반면 아내는 아침부터 밤까지 걷고 또 걸으며 철인 3종 경기 같은 여행 스케줄을 소화했다. 어렵게 온 여행지이니 최대한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었다. 밥을 먹을 때 빼고는 앉는 법이 없었다. 카페에 들어가도 에스프레소를 가볍게 마신 후, 또 다음 행선지를 향해 걸었다. 나도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아내를 만나고 나서는 어디 가서 걷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
연애를 3년 반 하면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이 정도로 체력이 좋은 줄은 몰랐다. 결국 아내를 따라 강행군을 지속하던 나는 탈이 나고 말았다. 때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라서 감기까지 겹쳐 된통 고생했다. 실로 국물이 절실했다. 차가운 비가 오던 날, 피렌체에 있는 중국집에서 짬뽕을 먹으며 속을 달랬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나를 아내는 안쓰러워했지만, 이해하진 못하는 것 같았다. 평소 운동을 안 해도 체내 근육량이 많고 건강한 편인 아내는 평생 감기를 모르고 살았다. 하물며 소화불량이 웬 말이냐. 돌도 삼킬 기세로 걸어 다니는 아내와 달리 나는 소화제를 씹어 삼켰다.
한창때 얼마나 대단했는지 기억하고 있기에 아내가 임신 중에 소화불량을 겪었을 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아내는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소화불량을 처음 겪어본 아내는 세상에 이런 고통이 있는 줄 몰랐다고 내게 고백했다. 직접 경험해보니, 그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불편한 것인지 아내는 그제야 나의 고초를 이해해주었다. 그래서 기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아내에게도 이제 속을 달래줄 만한 따끈한 국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력이 쇠해진 산모에겐 되도록 따듯한 음식을 주어야 한다. 반찬을 냉장고에서 30분 정도 미리 꺼내서 주었고, 샐러드나 무침을 할 때면 차가운 기운을 최대한 뺐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라서 몸을 덮일 수 있는 국물을 주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아내는 평소 국을 즐겨먹지 않았다. 국에 있는 건더기를 겨우 먹는 정도랄까. 그나마 좋아하는 몇 가지 국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건새우를 넣은 시금치 된장국이다.
산후조리에 좋은 재료로 유명한 시금치는 내게도 반가운 채소다. 아내는 늘 시금치에 열광적이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음식점에선 시금치가 들어간 파스타를, 인도 음식점에선 당연히 시금치 커리를 골랐다. 시금치나물 외에는 몰랐던 나도 시금치를 자주 먹게 되었고, 이제는 장을 보러 가면 시금치를 첫 번째로 구매한다.
채소 중 비타민 A가 가장 많은 시금치는 비타민 B, C 함유량도 높아 지친 산모의 몸을 회복하는데 효과가 좋다. 엽산과 칼슘이 많아서 임신 기간 중에도 즐겨 먹었고, 철분도 풍부해 산후조리에 제격이다. 시금치는 영양도 좋지만 푸른 잎채소 중에서 유독 깊은 맛을 갖고 있다. 잘 데쳐진 시금치는 부드러우면서도 짭짤하고 달콤하기까지 하다. 잎만 먹어서는 그 느낌을 알지 못한다.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그건 시금치를 먹어보지 못한 것과 다름없다. 부드러운 잎과 달콤한 뿌리까지 함께 먹어야 시금치의 맛을 전부 느낄 수 있다.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기 위해 우선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준비했다. 소금을 넣은 뜨거운 물에 시금치를 30초 정도 데쳤다가 찬 물로 씻어서 물기를 뺐다. 다음은 건새우 손질. 혹시 모를 비린내를 잡기 위해 작은 팬에 건새우를 아주 살짝 볶아줬다. 그다음에 육수에 건새우를 넣고 새우의 단맛이 우러나올 수 있게 끓였다. 일반 된장국에는 된장만 사용하지만 여기엔 고추장을 조금 넣어서 붉은색을 살렸다. 건새우가 붉으니 색이 자연스럽고, 달달한 맛도 함께 올라간다. 국물의 향을 내기 위해 국간장을 한 큰 술 넣어주고 간을 보니 딱 맞아서 따로 소금을 넣진 않았다. 다진 마늘과 풋고추, 파를 넣고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우면서 한 소끔 끓여내면 완성이다.
종종 해줬던 음식이라서 아내는 익숙하게 된장국을 떠먹었다. 부드러운 시금치와 새우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된장국과 어우러져 자꾸만 끌리게 된다. 아내는 국물은 남겼지만 건더기를 싹 비웠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건강한 사람이 아프면 지독히도 앓게 된다던데, 혹시나 내가 잘 돌봐주지 못해 아내가 아프게 될까 봐 걱정이 많았다. 시금치 된장국은 늘 맛있다는 아내를 보며 나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저는 지금껏 멋 모르고 시금치를 바로 요리에 사용했어요. 그런데 시금치에는 식물성 독즙인 수산이 있어요. 많이 먹으면 신장결석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는데, 하루에 500g 이상 먹지 않으면(엄청 많이 먹는 양이에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신경 쓰이는 분들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드세요. 시금치 안에 있는 수산이 싹 빠져나오니까요.
-시금치 된장국에는 두부를 넣는 게 아니래요. 시금치와 두부는 궁합이 좋지 않다고 해요. 이 둘이 만나면 불용성의 수산칼슘이 생성돼 칼슘섭취를 방해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