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아내를 생각하지 못했다

버섯우렁 된장찌개

by 주토토

포카가 안절부절해하며 마꼬와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는 사이, 지난번에 끓인 소고기 미역국이 바닥을 보였다. 포카와 마꼬의 안전에 온 신경을 쓰느라 먹을 건 늘 뒷전이었다. 본가와 처가에서 받은 반찬들로 끼니를 때우다가, 그것도 도저히 물려서 더는 먹고 싶지 않았다. 식재료를 사다 놓은 게 없어서 주방엔 짜장라면 밖에 없었다.


임신 중인 아내에게 자주 해주었던 거라서 아내도 좋아하며 식탁에 앉았다. 그런데 마꼬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며 식사는 무기한 연장되었고, 30분이 지나 짜장라면은 짜장우동이 되고 말았다. 아내는 심신이 지쳤는지 먹는 둥 마는 둥했다. 결국 몇 젓가락 먹지 못하고 식사를 마친 아내는 밤새 속이 더부룩하다며 괴로워했다. 모유수유를 해야 해서 소화제도 먹을 수 없었다.


나도 잠이 안 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포카와 마꼬를 신경쓰느라 미처 아내를 돌보지 못했다. 아내가 몸을 회복하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아내에겐 속이 편하고 보신이 될만한 산후조리 음식이 절실했다. 막 출산을 마친 산모는 갓 태어난 아이만큼 돌봄이 필요한 존재니까. 사골탕이나 족탕 같은 음식은 못 해주더라도, 산욕기까지 인스턴트 음식은 절대 먹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다짐만 하면 뭐하랴. 내가 할 줄 아는 요리가 없는데. 식단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도무지 막막했다. 일단 유튜브를 검색했다. 평소 요리할 때 참고했던 백종원 님의 ‘요리 비책’ 채널의 영상을 하나하나 독파해나갔다. 이를 시작으로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작동하며 갖가지 레시피 영상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자신의 황금 레시피를 아낌없이 보여주는 유튜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이불속에서 새벽 2시까지 영상을 봤다. 하지만 미역국 말고 무엇이 산후조리 음식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음 날, 무슨 음식을 해야 할지 여전히 결정하지 못한 채 재래시장에 장을 보러 갔다. 그래도 한 가지 기준은 세운 상태였다. 병원과 조리원, 합해서 3주 동안 아내는 슴슴하고 높은 퀄리티의 식사만 했다. 음식의 질은 맞추지 못해도 간은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맵거나 짜지 않고, 달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절밥 같은 식사를 차려줄 계획이었다.그런 마음으로 목적 없이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소쿠리에 싱싱하게 담겨있는 느타리버섯과 새송이 버섯을 발견했다. 그 순간, 머릿솟에서 버섯 된장찌개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된장찌개만큼 가정식 집밥으로 연착륙하기 좋은 음식은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된장찌개는 가장 기본적인 한식인데, 나는 지금까지 맛있게 찌개를 끓여본 적이 없었다. 이번엔 실패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영상을 무한 반복시켰다. 나 같은 생초보는 글과 사진으로 보는 블로그보다,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유튜브 영상이 잘 맞았다. 유튜버가 하라는 대로 토시 하나 놓치지 않고 그대로 조리했다. 이번엔 맛있을 수도 있겠다고 느꼈던 것은 냄새 때문이었다. 잘게 썰은 버섯을 들기름을 두른 냄비에 볶고, 된장까지 함께 볶자 버섯과 된장의 풍미가 증폭하여 그야말로 구수하고 향긋한 버섯장이 완성되었다. 이제 간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섯장에 멸치육수를 부었다. 일반 물을 써도 되지만 쌀뜨물이 더 좋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선 멸치육수가 제일 좋다.

유튜브에서 본 레시피에 나는 우렁이를 추가했다. 우렁이는 칼로리는 적고 칼슘은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산모에게 꼭 필요한 식재료이다. 밀가루로 두 차례 치대가며 깨끗이 씻은 우렁이를 넣고 애호박, 풋고추, 다진 마늘, 파, 두부도 넣었다. 국간장 한 큰술로 간을 한 후엔 바글바글 끓였다.

유튜브로 요리를 배워서 제대로 했는지 자신이 없었다. 걱정되어 아내를 식탁에 앉혀놓고, 내가 먼저 밥과 함께 찌개를 먹어보았다. 구수한 된장과 알맞게 익은 채소가 밥알과 함께 씹히는데, 괜찮았다. 확실히 된장을 볶음으로써 된장 특유의 텁텁함이 없어지고, 그 향이 버섯과 어우러져 구수한 맛이 배가된 것 같았다.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며 아내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너무 티가 났던 걸까. 아내는 국물을 먹음과 동시에 맛있다고 했다. 어쩌면 먹기도 전에 맛있다는 말이 먼저 나왔는지도 모른다.


출산 전, 아내가 요리를 해주면 나는 장난친다며 먹기도 전에 맛있다고 했다. 아내는 웃으며 엉터리라고 했지만, 아내의 음식은 먹어보지 않아도 맛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음식을 차리는 사람이 되어 보니, 음식을 먹는 사람의 반응이 너무 궁금한 게 아닌가. 내가 궁금해서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자, 아내는 재촉하지 말라는 듯 국물을 다시 한 숟가락 떠먹고 단어를 골라서 말했다.


"지금까지 끓였던 된장찌개 중에서 가장 된장찌개에 가까워."


그것은 아마도 아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에 가까웠다. 그 말이 진심이라는 걸 증명하듯 아내의 밥그릇이 싹 비워졌다.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며 나는 유튜브로 요리 영상을 또 찾아보았다. 내일은 뭘 먹을까. 내가 원래 이렇게 요리를 잘했나. 몰랐는데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기고만장해진 나는 혼자 신나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내의 산후조리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산욕기는 출산일로부터 6주. 거의 절반인 22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저처럼 하면 곤란해져요!
-멸치 육수를 낼 때는 멸치의 내장을 제거하고 끓여주시는 게 좋아요. 내장이 쓰거든요. 제거하지 않고 끓였더니만 육수에 쓴 맛이 나서 곤란한 적이 많았어요.


-집된장을 쓰는 경우, 된장이 조금 쓰거나 텁텁하면 설탕을 조금 넣어주세요. 설탕이 맛을 잡아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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