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는 폴란드 국경을 혼자 넘어가는 한 소년의 영상을 보았다. 연두색과 파란색이 모자이크처럼 배열된 패딩을 입은 소년은 장화를 신고 터덜터덜 걸었다. 한 손에는 초콜릿이 다른 손에는 투명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비닐봉지에는 인형처럼 보이는 물건이 들어있었는데 소년이 본인도 모르게 발로 자꾸 차서 비닐봉지가 허공에서 꼬였고 헛돌았다. 암만 봐도 소년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소년은 울고 있었다. 섧거나 흐느껴 우는 게 아니라 엉엉 울고 있었다. 공포와 두려움이 지나고 국경을 넘는 지금에야 슬픔이 허기처럼 한순간에 몰려온 듯했다. 소년이 왜 울고 있는지 왜 혼자 국경을 넘는 것인지 알려진 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걸 잃어버린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는 듯했다. 국경을 넘었지만 정처를 잃어버린 걸음걸이가 소년이 지금껏 걸어온 길을 알려주는 듯했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부터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망자는 어린이 48명을 포함해 모두 691명이라고 한다. 전쟁은 늙은이들이 일으키고, 젊은이들끼리 싸우게 하며, 어린이들을 죽인다. 살아남는다 해도 부모나 가족, 친구를 잃은 어린이들의 상처는 평생 고칠 수 없다. 몇 해 전 난민촌에서 만난 남수단 어린이들의 눈빛을 나 역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내전으로 눈앞에서 부모를 잃고 성폭력을 당하고 기아에 허덕이다가 난민촌에 왔던 그 아이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아이들은 살아남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전쟁은 필연적으로 아동에 대한 전쟁이다.
어제는 시리아 내전이 일어난 지 11년이 된 날이었다. 국제사회는 이해관계 속에 시리아 내전을 방치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강력한 권력의 독재자가 전쟁을 지휘하고,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하는데도 국제사회가 선뜻 나설 수 없는 지금 상황이 시리아 내전의 데자뷔처럼 느껴진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전쟁으로 희생을 치렀다. 부디 전쟁으로 어린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짓을 이제 그만해야 한다.
영상 속 혼자 걸어가는 소년을 조용히 안아주고 싶었다. 울어도 되니 실컷 울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