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방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찾아가는 곳이 있나요? 저는 주로 오프라인 서점을 찾습니다. 광고대행사 막내 AE 시절, 경쟁 PT 준비에 들어가면 국장님이 팀원들을 서점에 데리고 가셨어요. 삭막한 사무실을 벗어나 서점에서 책을 구경할 때 느껴지는 묘한 해방감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일인데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생각이 꽉 막히면 서점을 찾는 습관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갖고 있을 만한 책을 보러 갈 때도 있지만, 그냥 정처 없이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베스트셀러나 신간을 구경하러 갈 때가 더 많습니다. 평대에 놓인 책 표지만 훑어봐도 멈춰버린 생각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거든요.
그런 저의 니즈에 딱 맞는 서점이 책발전소입니다. 대형서점에 책이 더 많아서 아이디어 찾기도 더 좋을 것 같지만 저는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오히려 생각이 흐릿해지더라고요. 책발전소에는 한눈에 둘러보기 좋은 양의 책들이 분야별로 큐레이션 되어 있습니다. 소수 정예만 뽑아서 모아 놓은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막상 책을 구경하다 보면 대형서점보다 더 오래 머무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책 표지에 두른 띠지에 손글씨로 빼곡히 적힌 큐레이터의 서평 때문입니다.
이 띠지에 적힌 추천사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구경에 빠져들게 됩니다. 보물 찾기처럼 김소영 대표님과 오상진 님이 직접 읽고 추천하는 책을 발견하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물론 책 제목과 출판사의 마케팅 문구만 봐도 책 내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띠지는 서점을 찾은 손님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느낌이에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이 있죠. 띠지의 메시지가 마음에 더 크게 와닿는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하나하나 뿐만 아니라 특정 장르나 테마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문구들도 인상적입니다.
무미건조하게 일 때문에 브랜드/마케팅 서적 코너를 찾은 사람이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 싶은 이들에게'라는 문구를 보고 잊었던 초심과 일의 의미를 되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주로 실용서만 보던 사람이 책장에서 '울퉁불퉁한 삶을 다정하게 보듬는 소설'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소설 읽기의 의미와 재미를 알게 될지도 모르죠.
큐레이션 서점에서 좋은 책을 선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장치야말로 새로운 발견을 돕는 진정한 큐레이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사람의 습관을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알을 깨고 나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삶이 더 의미 있어지죠. 새로운 책을 읽는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책발전소의 문구는 우리가 책을 통해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게 용기를 북돋습니다.
책발전소가 의미로 가득 찬 밀도 높은 언어만 쓰는 건 아니에요. 위트가 묻어나는 귀여운 언어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구들은 대형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립서점만의 친근하고 느슨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은 서점의 문턱을 낮춰, 가볍게 자주 들르고 싶은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어 줍니다.
책발전소는 브랜드 비전을 어떤 타깃에게 어떤 언어로 전달하고 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비전: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책방
타깃: 나보다 조금 더 알아본 사람의 시선으로 큐레이션 한 책에서 새로운 발견을 원하는 사람들
언어: 책의 의미를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는 친근하고 다정한 언어
(롱블랙 <사업가 김소영 : 책발전소와 브론테, 자신을 넘어선 브랜드를 만들다> 노트를 참고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힘들 때도 서점을 찾습니다. 때로는 작정하고 읽는 책 보다 우연히 펼친 책의 한 페이지에서 더 큰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주고 보듬어주는 문장을 만나면 운명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올해 초 책발전소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연말연시 선물용으로 키워드만 보고 고르는 시크릿 북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며 괴로워하던 저는 #실패에 관하여 #용기 키워드가 적힌 책을 구매했습니다. 포장지에 감춰져 있던 정지음 작가님의 책 <오색찬란 실패담>에서도 많은 위로를 받았지만, 과거에 갇혀 허우적대던 제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건 책발전소의 시크릿 북 설명글이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기 좋은 책
일 년을 책 한 권이라 치면, 연말은 유독 해진 페이지를 펼쳐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후회와 망설임이 묻은 페이지에 자꾸만 눈길이 가거든요.
새해가 다가오고 있어요.
이제 그만 그 페이지에서 빠져나와 다른 책을 시작해 볼까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올해가 아직 세 달은 더 남아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서점에 더 많이 가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나를 만드는 책을 자꾸 발견하고 싶어지는 책발전소가 가까이에 있어서 다행입니다. 지금의 여러분을 만든 책은 어디에서 발견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