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되는 관점을 제안하는 문구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에도 문구는 필요해서 사는 물건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던 때였지만 문방구에서 노트 디자인을 고를 때면 꽤나 신중해졌고, 색색깔의 필기도구를 사모으는 일은 용돈으로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였습니다.
필통을 가득 채운 펜은 지루한 노트 필기를 조금이나마 설레게 해주는 도구이자, 친구들과 주고받는 편지나 교환일기를 꾸밀 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죠. 문구를 통해 우리는 매일 창작 활동을 했고, 작은 크리에이티브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대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였던 하라 켄야는 일상을 채우는 도구의 중요성을 ‘욕망과 크리에이티브를 진화시키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도구가 진화하면 사람의 욕망과
크리에이티브도 진화한다.
- 하라 켄야 -
감도 높은 큐레이션으로 어른을 위한 문구점을 만든 김재원 대표님은 포인트오브뷰를 구상할 당시 하라 켄야의 말에 꽂혀 있었다고 합니다. 연필이 없어서 사는 시대는 아니니, '감각을 자극하는 도구'를 보여주는 문구점을 만들면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요.
저는 김재원 대표님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하라 켄야의 말과 포인트오브뷰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좋은 문구에 집착하는 이유가 한 번에 설득되는 문장이었거든요.
포인트오브뷰는 단순히 ‘예쁜’ 문구를 모아놓은 편집샵이 아닙니다. POINT OF VIEW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관점’이 담긴 도구를 모아놓은 문구점입니다.
'관점'이라는 말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사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구 편집샵의 ‘관점'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포인트오브뷰 매장에 가면 아름다운 디스플레이에 시선을 빼앗기고, 상품을 자세히 보다가 발견하게 되는 큐레이션 카드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큐레이션 카드에는 큐레이터의 관점과 고민이 담긴 추천글이나 영감을 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저는 주사위를 소개하는 카드를 읽고 POINT OF VIEW라는 브랜드 네이밍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어요.
주사위를 놀이의 도구로만 보면 주사위가 아름다울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인류가 어떤 결정을 하늘의 우연에 맡길 때 사용했던 도구로 주사위를 보게 되면, 책상 위에 올려둘 만한 아름다운 오브제로서의 가치가 생깁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물건에 가치가 없어지기도, 생기기도 하는 것이죠.
실용적인 가치를 잃어버린 지 오래인 모래시계는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요?
시간의 언덕
Hourglass
심플한 모양의 유리 모래시계입니다. 한 번 뒤집었을 때 5분 안팎의 시간이 흐릅니다. 모래시계는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겨주고 고요하게 흐르는 시간을 경험하게 하기도 합니다. 굴곡과 대칭이 이룬 세계의 위아래가 뒤바뀔 때 작은 모래알들이 쌓이며 만드는 시간의 언덕을 관찰해 보세요.
시간이 지닌 가치 중 생산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구글 타임 타이머 같은 상품을 구매할 겁니다. 하지만 멈춤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바쁜 하루를 잠깐 멈추고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거나 생각을 비우는 시간을 갖기 위해 이 모래시계를 구매할 것 같습니다.
포인트오브뷰의 큐레이션 카드는 시간의 가치를 일깨움으로써 모래시계라는 도구의 가치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해 줍니다.
포인트오브뷰는 창작자의 관점으로 도구를 바라보는 브랜드입니다. '전 세계 창작자들에게 사랑받는 연필'이라는 설명으로, 디지털 도구로만 메모하던 저의 창작 욕구를 자극해 블랙윙 연필을 구매하게 만들죠.
그런데 포인트오브뷰가 말하는 '창작자'가 꼭 창작이 직업인 사람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전문 큐레이터가 적은 큐레이션 카드를 상품 옆에 비치해 두지만, 평범한 사람의 관점에서 적은 큐레이션 카드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일상의 창작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성수동 매장을 구경하다가 노트 제품에 관해 고객이 직접 작성한 큐레이션 카드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었어요. 특별한 예술가가 아니어도 창작은 누구나 할 수 있고, 포인트오브뷰의 도구가 그 시작을 도와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포인트오브뷰 홈페이지에서 고객이 쓴 큐레이션 카드들을 볼 수 있는데, 아래 카드를 보면 일기도 창작이라는 생각과 함께 오늘부터 다시 일기를 써보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듭니다.
포인트오브뷰가 누구에게 어떤 언어로 브랜드의 비전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저는 이렇게 정리해 봤습니다.
비전: 창작자의 관점으로 예술과 일상의 이야기에 영감을 주는 도구를 제안한다.
타깃: 도구를 선택하고, 사용하고, 모으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관점을 얻고 변화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
언어: 사물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감각적인 언어
(포인트오브뷰 홈페이지 브랜드 소개를 참고했습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위에는 포인트오브뷰의 마블 사과 오브제가 놓여 있습니다. 사과는 포인트오브뷰의 로고에도 사용되는 상징입니다. 상식과도 같았던 기존의 원근법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관점으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세잔의 사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저는 '새로운 관점의 표현'을 상징하는 이 사과를 책상에 올려두고 바라보며, 틀에 박힌 사고를 경계하고 유연한 사고를 지향하려고 노력합니다. '새로운 관점'이라는 도구가 손에 쥐어지면 '영감'이라는 무기가 생긴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분들께 포인트오브뷰에 가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사과 오브제의 큐레이션 카드에 적힌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모리스 드니의 말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
평범한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