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에서의 신발은 그렇게 예민한 사항이 아니다
외국 영화에 보면, 신발을 떡하니 신고서 침대에 걸쳐 눕는 장면이 잘 나온다. 그걸 보는 우리 한국인들은 흔히 영화 내용보다 그 신발에 경악한다. "미쳤어! 저거 실화야?"
실화인 곳도 있을 것이다. 지역이나 가정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는데, 미국에서 내가 살았던 지역에서는 어쨌든 집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였다. 침대까지 따라가 보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서양사람들도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것을 선호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예전 미국에 살 때 친하게 지냈던 딸 친구네 집에 가보면, 그 엄마는 집안을 깨끗하게 하고, 집안에서 신발을 안 신곤 했다. 우리는 다 같이 양말 바람으로 놀았는데, 그 집 아빠가 퇴근해서는 신발을 신고 들어왔다.
그것을 본 우리 딸이 (당시 4살) 몹시 당황스럽게 쳐다보며 뭐라고 말하려 시도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얼른 신발을 벗기를 애절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던 딸아이는, 잘하지 못하는 영어로 뭔가 단어를 나열하려고 했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고...
양복을 차려입은 멋쟁이 그 집 남편은, 신발을 벗음으로써 패션을 망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경우, 신발은 패션의 완성이다.
비록 그녀는 집안에서 신발을 신지 않지만, 남편은 버젓이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장면이 미국에서는 생소하지 않다. 또한 마당에 맨발로 나가는 일도 흔하기 때문에,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신발과 맨발의 차이는 우리나라처럼 극명하지 않다.
내 경험에 따르면, 캐나다는 집안에서 신발을 안 신는 경우가 더 많다. 남의 집에 가도 자연스레 신발을 벗거나, 벗느냐고 물어보는 일은 아주 흔하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서, 괜찮으니 신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어머, 저 오늘 마루 청소 안 했어요. 그냥 신발 신으세요."
그렇게 되면, 신발을 안 신은 집주인과 신발을 신은 손님이 한 공간에 공존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내 집안에서 신발을 안 신더라도, 우리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신발을 다 통제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식기 세척기를 고치러 온 그레그는 말끔한 신사처럼 등장하는데, 깨끗한 구둣발로 그냥 들어온다. 그러다보니 현관 밖에 흔히 도어 매트(door mat)가 있다. 뭔가를 배달 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은 신발을 안 신는 집이고, 현관 앞에 신발이 놓여있어서 안 신는다는 것을 뻔히 알 수 있지만, 그들이 신발을 벗기 싫다는 것을 우리가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 가정에서는 외부 손님들을 위해서 슬리퍼를 준비해 놓는 경우도 있는데, 외국인 손님들은 그 슬리퍼가 달갑지 않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
우리가 사귀던 시절, 남편은 나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오면 한국의 좋은 곳을 많이 구경시켜 주고 싶었지만, 나는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때문인지 덜컥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나는 감기약에 부작용이 많아서, 차라리 침치료를 받으려고 한의원을 방문했다.
같이 한의원에 도착해서는, 나는 의례 그렇듯 신발을 벗고 슬리퍼에 발을 끼우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남편은 황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슬리퍼를 신지 않은 채 들어와서 대기 의자에 앉았다. 바닥이 그리 깨끗한 것 같지 않아서 슬리퍼를 신으라고 해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혹시 그의 큰 발에 맞는 슬리퍼가 없었던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먼저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를 받고 나와서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남들이 신던 슬리퍼에 어떻게 자기 발을 넣느냐며 질겁을 하였다. 사실 나는 거기까지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정말 다시 생각해 보니, 나도 처음에는 좀 꺼렸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남들이 발을 끼웠던 곳에 내 발을 끼우는 것이 달갑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러면 이런 경우에 캐나다에서는 원래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신발을 벗어야하는 곳에 갈 때면 자신의 슬리퍼를 가지고 간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여름철에 샌들을 신고 다니다가 남의 집에 들어갈 때, 맨발이 민망하여 덧신이나 양말을 꺼내서 신곤 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 것이다. 아니면, 슬리퍼로 갈아 신는 대신 신발 위에 덧신을 씌우기도 한다고 했다. 요새는 흔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다들 덧신을 가지고 다녔다고 했다.
하긴 나도 캐나다인 친구 집으로 바느질 모임 갈 때, 나는 신발을 벗고 양말 바람이었지만, 자신의 슬리퍼를 가져온 친구들이 있었다.
마사지 숍이나 스파 같은 곳에서 공동 사용하는 슬리퍼가 나온다면, 대부분 일회용이거나, 아니면 빨아서 준비한 슬리퍼를 제공하고, 사용 후에 수거함에 넣어 다시 빨래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즉, 남이 방금 전에 신었던 슬리퍼에 내 발을 끼우는 것은 참으로 싫다는 사실이었고,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한편 실내의 신발 이야기로 돌아오면, 그래서 우리 집은 실내에서 신발을 신지 않지만, 집 앞을 잠깐 나갈 때는 그냥 맨발로 나가는 일이 흔하다. 손님이 왔다가 갈 때, 현관 앞에 나서서 배웅을 할 때에 굳이 신발을 신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맨발로 뛰어 나갔다.'라는 표현을 생각한다면, 정말 특별하고 급한 경우가 아니면 발생하지 않는 일인데, 여기서는 간단히 앞마당에 뭔가 한 가지 일만 하러 잠깐 나간다면 기꺼이 맨발이 된다.
또 반대로, 외출하려고 신발을 신었는데, 깜빡 잊고 핸드폰을 안 가지고 나왔다면, 신발 신은 그대로 위층으로 올라가서 핸드폰을 가지고 나온다.
한국식으로 하자면, 거실에 다시 잠깐 들어가야 하는데 신발 끈을 다시 풀었다 묶기 싫은 경우, 기어서 들어갔던 기억이 있지만, 신발 신은 채 들어간 일은 없는데, 나도 어느샌가 급하면 그대로 뛰어 올라갔다 오는 것을 보면 이곳 생활에 상당히 적응이 되었나 보다. (오히려 남편이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재밌다고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서는 신발 신고 거실에 한 발 딛는 순간, 그 무례함과 더러움의 기분은 상상초월일 것이다. 아마도 그 결정적인 이유는, 공해 때문이거나 한국 신발에 흙이나 불순물이 더 많이 묻는 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카펫 바닥에 흙이 직접 보이지 않으니 경각심이 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들이 집안에 신고 들어가지 않는 신발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장화이다. 우리는 가드닝을 할 때 주로 장화를 신는데, 흙이 많이 묻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꼭 벗고 들어간다. 그래서 여기서는 부츠 트레이(boots tray)라고 하는 장화용 신발 받침을 따로 판다. 보통 현관문보다는, 뒷마당에서 들어오는 입구에 두고, 마당에서 묻어오는 흙 묻은 신발을 두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아마 그들의 개념에서는, 장화가 우리의 일반 신발만큼 인 것 같다. 절대 신은 채 그냥 들어오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