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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슈에뜨 La Chouette Mar 19. 2024

겨울잠 자다가 보쌈당했구료!

잠든 두릅을 옮겨 심었다

밴쿠버에 훌쩍 봄이 찾아왔다. 날씨가 추운 동안 나는 마치 겨울잠을 자는 사람처럼 마당을 등한시했다. 추위를 많이 탄다는 핑계였지만, 사실은 게으름이 나를 점령했다. 방 안에서 할 일이 많았고, 나는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겨울 이야기를 쓰지도 못한 채 봄을 맞았다. 


계속 이래저래 바빠서 가을에 해야 할 일까지도 겨울에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튤립 및 수선화 구근도 사놓기만 하고 못 심었으니 애가 탔다. 구근은 봄이 오기 전, 추울 때 심어야 제때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내가 협조를 안 하니 결국은 내가 방에서 일하는 동안 남편이 혼자 나가서 심었다.


하지만 이 두릅은 내가 모르쇠할 수 없는 일이었다. 3년 전 구입해 온 두릅을 이번 겨울에는 꼭 옮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처음 두릅을 사 왔을 때 들떴던 생각이 난다. 


이 뻘쭘하고 볼품없는 가시나무를 어디에 심을까 고민하다가, 뒷산 어귀에 심었었다. 그 뒤쪽으로는 블랙베리가 무성했기 때문에, 우리 집 마당이 끝나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심었는데, 그 이후로 우리는 그 뒤에도 화초를 심게 되었고, 결국 이 두릅은 어정쩡한 곳에 서있는 셈이 된 것이었다.


두릅은 기본 기둥에도 가시가 많지만, 잎에도 가시가 차근차근 붙어있어서, 곁으로 지나가면 뜯기기 쉽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아주 위험할 것이다. 따라서 이 위치는 반드시 바꿔줘야 했는데, 나는 행여나 이 녀석이 다칠까 봐 계속 시기를 미루는 중이었다.


탐스럽게 자라서 뒤쪽 꽃을 다 가리고, 옆으로 지나가기도 힘들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 옮기지 않으면 또 내년까지 기다려야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나무는 겨울이 끝나기 직전에 옮기는 것이 좋다. 여름에 잘못 옮기면 죽는다. 실제로 지인이 자기네 마당에 있는 녀석을 두 그루나 파줬는데, 결국 둘 다 죽고 말았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걸 옮긴다는 사실에 아주 신경이 곤두섰다.


겨울에 옮기면 좋은 이유는, 아직 자고 있기 때문이다. 왕성하게 자랄 때 건드리면 다치기 쉽지만, 잘 때는 업어가도 모르는 것이 식물이다. 그래서 대부분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옮기거나 가지치기를 한다. 


가을이 되면 잎이 지는데, 옆으로 뻗은 가지는 저렇게 통째로 떨어져 버린다.


튼실하게 잘 자리 잡은 나무를 옮기자니 걱정이 되었다. 작년에는 꽃이 한번 피어주길 기대했지만 결국 꽃구경은 못했는데, 이렇게 옮기면 꽃피는 때를 또 늦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옮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실천에 옮겼다. 


그게 벌써 한 달도 더 전이었다. 2월 초순의 화창하고 쌀쌀한 겨울 날이었다. 비 오지 않는 날을 골랐다. 이런 일들은 비 오지 않는 날 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뿌리 자른 부분이 썩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면 이렇게 앙상해진다. 뿌리가 깊고 길게 퍼져있었다.


잎이 모두 지고 앙상한 두릅이었지만, 땅 안쪽으로의 뿌리는 상당히 길게 뻗은 상황이었다. 혹시라도 뿌리를 다치지는 않을지 진짜 조심해서 파냈다. 한그루였던 나무가 두 개의 기둥을 세웠고, 멀리 작은 나무도 하나 시작되었다. 가을에는 좀 더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는데, 잎이 다 진 겨울에는 더 이상 찾을 길이 없었다. 


바로 붙은 두 그루는 분리하기 불안해서 그냥 두었고, 멀리 있던 작은 녀석만 따로 떼어냈다. 그리고 이걸 바로 땅에 심지 않고, 하룻밤을 보트 작업실 지붕 아래에 두었다. 추웠지만 영하로는 내려가지 않는 날씨여서 딱 좋았다.


크게 부러진 상처를 바로 심으면 썩을 수도 있다. 그래서 상처가 아물라고 그늘에 하루 두었다가 그다음 날 심는 것을 권장한다. 사실 우리는 흙을 파내다가 이미 날이 거의 저물었기 때문에 그때 심어야 한다면 더 난감할 뻔했다. 


작업실에서 휴식하는 두릅(왼쪽), 새 터전에 자리를 잡은 두릅(오른쪽)


다음 날, 오후 우리는 이녀석들을 뒷산 꽃밭이 끝나는 곳에 심었다. 바짝 붙어있던 두 그루는 그대로 옮겨 심었고, 멀리 있는 작은 녀석은 화분에 담았다. 혹시라도 큰 녀석들이 잘못될 때를 대비한 준비였다.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으나, 고맙게 잘 자리 잡는 것 같았다. 수시로 기웃거리며 생명력을 확인하곤 했는데, 지난주에는 싹눈이 보이더니 날씨가 확 더워진 지금 확실하게 새순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한 달 보름이 지났다.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니 곧 먹을 수 있겠다. 잘라서 먹고 나면 싹이 또 올라온다. 그렇게 좀 먹고 나면, 큰 키를 썩둑 자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키가 너무 커져서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게 자라라고 가지치기해주는 것은 필수이다. 


그러면 거기서 다시 순이 나와서 가지를 만든다. 가지는 많을수록 좋지만 길면 좋지 않다. 성장속도가 빨라서 키가 순식간에 커지기 때문이다. 잘라낸 가지는 말려서 국물 내거나 삼계탕 같은 것을 끓일 때 넣어도 좋다. 


나는 이제 다시 가지가 무성해지고 아름답게 꽃 피울 날을 꿈꿔봐야겠다.


화분에서 천천히 싹을 틔우는 꼬마 두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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