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정세랑 작가 소설을 쭉 읽어가고 있다. <시선으로부터,>와 함께 가장 인상깊게 읽은 소설이 바로 <피프티 피플> 이다.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50명의 사람들에 대한 사연을 현실감 있게 펼칠 수 있을까 싶다.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개인적 고민과 사회적 갈등이 고루고루 녹아들어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가족의 사연도 있고, 성소수자의 이야기도 있다. 씽크홀 추락사고 이야기도 나오고 대형 화물차 과적 문제도 있다. 모두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세상의 여러 사연들이다. 이웃인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독립된 이야기들이 이어지는데 등장인물들이 서로 연결된 경우도 꽤 많다. 며느리를 둔 시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고, 이어서 며느리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이다.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도 많다. 병원이 배경인 이야기들이 많다보니 많다보니 누군가는 다치고, 누군가는 죽는다. 무거운 이야기도 꽤 많다.
인상깊은 이야기 몇 편을 적어본다. 장유라편에서 남편 헌영은 빗길에 25톤 화물차에 치여 식물인간이 된다.유라는 남편의 물건을 팔고, 아이를 부모님께 보내 일을 시작한다. 남편의 물건을 파는 것을 본 아이는 자신에게도 아빠의 물건을 하나 달라고 한다. 시계를 건네주고 아이는 이를 보물상자에 넣는다. 어느날 시청앞에서 화물연대가 시위를 하는 것을 본다. 과적으로 인한 제동거리가 짧아지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을 보고 샌드위치를 사서 다시 시위현장으로 돌아가 건네준다. 한 가정에 일어난 불행한 사고는 사회적 원인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며느리 배윤나와 시어머니 최애선 이야기도 있다. 어릴 적 발작을 앓었던 윤나. 씽크홀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나고 시인인 찬주선배로부터 선물을 받고 전화를 했다가 만나러 오라는 말에 학교를 찾아간다. 문창과 교수인 찬주 선배를 찾아간 날, 문창과 통페합 시위를 목격한다. 예전에 수업시간에 가르친 적이 있었던 남학생 규익은 커터칼로 손목을 긋는다. 윤나는 규익에게 너는 달라, 너는 필요해 라는 말을 한다.
병원에서 죽는 환자를 이동하는 하계범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생각지도 못한 직업이다. 전용 이동침대와 고인을 덮을 부직포 덮개를 챙겨 호출이 온 층으로 올라가야하는데 너무 빨리 가도 안되고 너무 늦게 가도 좋지 않다. 너무 빨리 가면 유족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시간을 방해하는 게 되고, 너무 늦게 가도 유족들의 충격이 심해지기 때문에 몇분의 차이지만 사려 깊게 하려고 노력한다. 2인 교대로 일해야하는데 수십년을 혼자서 병원에서 먹고 지내며 언제 올지 모르는 호출을 대기하며 살아간다.
저자는 모두가 주인공인, 그래서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 삶도 이렇게 퍼즐을 맞춰나가며 살아나가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