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선물
먹고 싶은 거 마음 대로 먹고 주문하며 자라온 사람이 많을까, 아닌 사람이 많을까. 나는 후자다. 전자의 경험을 가지고 자라났다면 축복 받은 것이다. 너무 부럽다.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거의 없다. 아예 없다고 해야 맞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몇 번 중국집에서 주문할 때 짜장면과 짬뽕 중 내가 원하는 걸 선택했으니 전혀 없는 건 아닌 것 같다.
왜 그런 경험을 했는지 구구절절 쓰기에는 너무 많아 간단하게 줄이자면, 항상 동생이 우선이었다. 한정된 예산으로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한다면 언제나 동생 우선. 따뜻하고 크고 실하고 부드럽고 시원하고 멀쩡하고 고루 익고 때깔 곱고 상하지 않고 방금 만들었고 양 많고 오동통하고 속이 알차고 제일 맛있는 부위인 것은 언제나 동생이나 아빠에게로 넘어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늘의 명을 받았는지 착한 딸 병에 걸린 나는,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마지막 즈음 엄마가 내게 권해준 걸 엄마의 허접한 그것과 바꿔 먹고는 했다. 나 이런 거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엄마가 괜찮은 그나마 멀쩡한 음식을 드시는 걸 볼 때면 행복하면서도 괜시리 서운하기도 했다.
엄마가 생선 대가리나 찬밥을 좋아해서 먹는 게 아니야. 가족들 맛있는 부분 먹으라고 엄마가 이런 걸 먹는거야, 했던 엄마가 그래 네가 좋아하면 먹어야지하며 망설임없이 바꾸실 때 나도 모르게 아주 잠깐 슬퍼졌다.
나도 찬밥이랑 생선 대가리 맛있어서 먹는 거 아닌데. 엄마가 맛있게 먹는 모습이 좋아서 바꾸는 건데. 물론 엄마가 눈치를 주신 건 아니다. 그냥 내 마음이 그랬던 것이니 서운한 것도 내 책임이지 뭐. 이런 말을 속으로 삼키며 내게 주어진 식사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치킨을 한 마리 주문하면 다리는 당연히 동생의 몫이 되었다. 나도 부드럽고 촉촉한 살을 먹고 싶어 눈치를 보고 있으면 동생은 맡겨놓은 자신의 걸 가져가듯 가장 처음 닭다리를 들었다. 당당한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먹을까 고민하며 스르륵 손이 다리로 가면 갑자기 뇌에 착한 딸 병이 도져서 냉큼 집어 엄마나 아빠에게 드렸다. 엄마와 아빠는 나 먹으라며 주시려고 했지만 중병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내게 스스로 허락된 부드러운 부위는 날개. 날개가 되었다.
나는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당연하지 않은 생활이 여러 방면으로 반복되고 커가면서 보편적인 상은 아니구나 싶었다. 아 치킨과 관련된 서러운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는데 그건 마음이 괜찮아 지면 다음에 또 풀어봐야겠다. 먹을 걸로 차별하는 거.. 그거.. 진짜 슬프다.
이런 기억을 묵혀둔 어느 날씨 좋은 날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여러 부위가 있겠지만 닭다리를 먹고 싶어졌다. 나의 서러운 유년 시절 기억을 지금의 내가, 치킨 정도는 사 먹을 수 있는 내가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닭다리를 남 눈치 안보고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었다.
치킨을 주문하면 혼자 다 먹지 못할 것 같아서 일행을 구하려고 했는데 마땅히 당장 함께 갈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타지에 있고 가족들과 친구들은 바로 옆에 없었다. 고민 끝에 혼자 가기로 했다.
나 혼자 다 먹고 좋지 뭐!
그렇게 동네 치킨 가게에서 닭다리로만 이루어진! 치킨 박스를 포장해 길을 나섰다. 집에서 먹을까 싶었는데 혼자 청승맞게 먹을 것 같아 소풍 가는 기분으로 공원으로 향했다.
하늘은 맑았고 더웠고 공원은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만 있어 고요했다. 돗자리없이 즉흥적으로 나왔던 터라 손에 든 박스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로운 치킨 냄새를 맡으며 자리를 물색했다. 돌계단에 앉으니 엉덩이가 탈 것 같아 적절한 곳을 향해 걷다가 벤치를 발견해 자리를 잡았다.
남 눈치 안 보고 당당하게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닭다리. 내가 좋아하는 후라이드. 갓 튀겨 뜨끈하고 크고 실하고 부드럽고 멀쩡하고 고루 익고 때깔 곱고 상하지 않고 방금 만들었고 양 많고 오동통하고 속이 알차고 제일 맛있는 부위를 들어 한입 베어물었다.
얇고 바삭바삭하고 따뜻한 껍질과 좀 더 뜨끈하고 부드럽고 약간 짭짤하고 고소한 식감이 혀에 닿았다. 맛있었다. 이런 맛이구나. 그래 이 맛이지.
먹는데 날아 다니는 벌레랑 비둘기가 근처를 서성거리며 내 메뉴를 노렸지만 뺏기지 않고 잘 지켜내며 조급하지 않게 음미하며 먹었다.
다음에 또 나 혼자 먹고 싶은 날이면 1. 닭다리로만 이루어진 메뉴를 주문해 2. 날씨 좋은 날 소풍을 떠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