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한라산에 눈이 내렸다. 이렇게 갑자기 겨울이 왔다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아침등굣길에 애들 옷은 어떻게 입혀야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올랐다.
‘우와, 그럼 이제 우리 집 귤시즌이 시작되겠구나!!!’
남의 집 귤들 익어가는 거 지켜보며 “우리 귤은 언제 익어요? 언제쯤 딸 수 있어요?”하고 어머님께 여쭤보니 “12월은 되어야지. 한라산 눈 오고 나야”라고 하셨다.
오~ 그럼 이제 귤시즌을 준비해야겠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옷장정리를 시작했다.
그동안 여름이야? 가을이야? …어? 겨울인가? 싶을 정도로 아침저녁으로 뒤바뀌는 날씨로, 계절을 가늠할 수 없는 애매한 간절기 날씨체험을 하느라 사계절 옷이 한꺼번에 나와있어 옷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이번주까지만, 다음 주에는 꼭!!! 하며 옷정리를 미뤘는데 결국 한라산에 눈이 내리고 나서야 허겁지겁 옷정리를 한다.
필요할 때 사면 늘 사이즈가 없기에 중간중간 체크하며 옷도 구매하고 정리해 뒀는데, 막상 또 계절이 다다르니, 입을 옷이 없다.
사이즈가 작은 건 우선 다 버리려고 꺼내놓고, 맞는 옷들 중에 괜찮은 것들을 추려내다 보니 남은 게 몇 벌 없어 결국 또 애매한 사이즈 옷은 한 번만 더 입혀야지. 이건 조금 지저분하긴 하지만, 잘 두었다가 겨울에 귤밭 갈 때 입혀야겠다. 헌신발도 신발장 한편에 잘 챙겨두자. 귤밭 갈 때 신어야 하니까. 낄낄낄.
제주도민들의 특이점 중 하나가 버릴 옷 남겨두면서 “귤밭 갈 때 입어야지”하는 거라는데, 내가 그러고 있네. 누가 보면 귤밭 3천 평은 가진 줄^^
시부모님께서 귤밭을 운영하고 계셔서 일손을 돕고는 있지만, 애들보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온전히 귤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뭐만 하면 “귤밭 갈 때”라는 라벨을 붙여놓는다.
헌 옷과 신발은 귤밭 갈 때 입고 신어야 하니까 버리지 말고, 헌 프라이팬도 냄비도 주방 한편에 모셔놓는다. 귤 따면서 밭 한쪽에 귤나무로 불을 떼 고기도 구워 먹고 라면도 끓여 먹어야지. 고구마도 구워 먹어야 하니까, 고구마도 박스 째 불러둬야 하고, 아이들이 지루하다며 집에 가자고 징징거리지 않게 중간중간 까먹을 초콜릿이랑 사탕도 준비하고 귤밭용 놀이도구도 살포시 정리해 두어야지.
어머니 좋아하시는 간식이 뭐였더라,
붕어빵, 찐빵, 라면, 떡, 어묵탕, 요런 거 말고 좀 신박한 먹거리는 없나?
어머, 나 지금 J(계획형 인간) 같아!!! 라며 스스로를 칭찬하며 12월 귤시즌을 기다려본다.
이렇게 귤시즌이 설레는 며느리라니^^
귤밭부자 도민들이 들으면 기가 막힐 노릇이겠지만, 귤농사가 생업이 아니라 가질 수 있는 기쁨과 설렘이겠지.
결혼 전에는 “절대 귤밭 많은 집으로는 시집가지 않을 거야!!!”라며 다짐했던 나였는데(겨우내 귤밭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며 귤밭부자 아들을 질색했던 철없던 시절) 이젠 귤밭이 한 3만 평쯤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아주 잠시 해보다가, 그럼 아마 내 남은 일생을 모두 귤밭에 올인해야 거 같으니 그 마음은 살포시 내려놓는다.
난 그저 소소하게 귤시즌을 즐길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한다. 진짜로^^
어쨌든, 드디어 한라산에 눈이 왔고. 우리의 귤시즌이 다가왔다.
한동안 제주 귤밭며느리의 소임을 다하고자 조금 바빠질 예정이지만. 이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라 생각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며, 귤시즌을 마주하기로 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