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새 학년 적응 기간을 보내던 우리 둘째가 지난주부터 받아쓰기를 시작했다. 주말 숙제로 받아쓰기 급수표를 두 번 따라 쓰는 과제가 나왔다.
그런데 집에 오니 책가방에 급수표가 없다. 학교에 또 두고 온 모양이다. 며칠 전에도 수학 익힘책을 두고 와서 당황했던 적이 있는데, 또다시 중요한 준비물을 놓고 온 자신이 믿기지 않는지 책가방을 탈탈 털어 확인하고 또 확인하다가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어”라며 좌절하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주방 정리를 하다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 아들을 보고 당황한 나. 우선 아이를 달래고 이유를 들었다.
“급수표가 없어? 또 깜빡했구나. 안 가져올 수도 있지. 울지만 말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숙제를 할 수 없게 됐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야. 숙제를 하지 않고 가거나, 급수표를 구해서 숙제를 하고 가는 방법. 어떻게 하고 싶어?”
아이는 숙제는 꼭 하고 싶지만 급수표를 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친구한테 연락해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러자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끄러워서 절대 못 한다고 한다.
나는 말없이 아이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응? 그럼 지금 엄마한테 해결해 달라는 거야? 그럴 순 없어. 비니가 부끄러우면, 엄마도 부끄럽지. 물건을 두고 오는 건 실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친구에게 연락할 용기가 없어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숙제를 안 하고 가는 게 부끄러운 거지. 우선 비니가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해 보고, 정 안 되면 엄마가 도와줄 수 있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고 엄마에게 미루는 건 부끄러운 것보다 창피한 일이야.”
평소 같았으면 내가 친구 엄마에게 연락해서 해결해 줬을 텐데, 오늘만큼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낯을 많이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은 아이인 걸 알지만, ‘언제든 엄마가 해결해 주겠지’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을 울고, 자신과 싸우던 아이는 결국 전화를 하지 않는 대신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두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반응이 없었고, 결국 나는 친구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과 통화할 수 있도록 부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친구 모두 급수표가 없었다. (비니네 반만 주말 숙제였다고 한다.)
우리는 좌절했다. 어쩔 수 없이 숙제는 학교 가서 하기로 하고 책가방을 싸려는데, 책상 위에 떡하니 놓여 있는 급수표.
하… 대체 왜 한참을 아이와 씨름한 걸까? 힘이 쭉 빠졌다.
반면 아이는 보물이라도 찾은 듯 기뻐하며 숙제를 시작했다. 후… 나만 속이 탔지, 나만 애가 닳았지.
숙제를 마친 뒤, 아이와 다시 이야기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할지.
급수표를 비롯한 학교 준비물은 꼭 제자리에 두고, 한 번 더 확인하기로.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급수표를 복사해 두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내 품에 안기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생각했다.
‘이게 뭐라고, 또 그렇게 아이와 실랑이를 벌였을까. 학교 숙제 물론 중요하고, 아이의 독립과 자립도 중요하지만, 그냥 한 번 더 내가 도와줬어도 됐을 텐데. 좀 더 너그럽게 기다려 주고 보듬어 줄걸.’
품 안의 자식. 더 사랑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