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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용준 Oct 07. 2022

<마지막 황제>(1987) 리뷰#1

신변잡기

기억하기로는 아마도 ‘국민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TV에서 <마지막 황제>의 한국어 더빙판이 방영되었다. 이는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역사물’이었다.


당시는 한·중 수교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도 중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었는데, 어느 제약회사에서는 자사의 자양강장제를 중국 황제가 마신다는 광고를 내놓기까지 했다. 오늘날의 반중 정서와는 정반대로, 전통 사회의 패권국이자 폐쇄적인 권위주의 국가, 그리고 문호가 막 개방되기 시작한 중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 현대사의 그 어느 국면보다도 높았을 것이다.


또 기억하기로는 기자였던 아버지가 중국의 역사와 문물에 관심이 깊었으므로, 인터넷 같은 게 없던 시절에도 집에서 진시황릉과 만리장성, 자금성과 천단기년전 등의 사진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이것들은 어린 나에게도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고, 항상 따라 그리고 싶었지다. 번번히 실패하여 손재주 좋은 어머니께 자꾸 그려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러던 중 <마지막 황제>가 상영되었다. 그때까지의 내 삶에서 건축물 등 공간으로만 존재했던 중국은,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시공간 속에서 존재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명화 OST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즐겨 듣곤 하셨는데, 그 중에는 이 영화의 메인 테마이자 오프닝 곡으로, 류이치 사카모토가 작곡한 <The Last Emperor Main Title Theme>도 있었다. 사실 이 음악을 들은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영화를 본 것이 먼저인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이 영화와 그 OST를 통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역사교육과에서 수학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역사교사로 살고 있다. 게다가 아직까지도 나의 주요 관심사는 역사와 영화인데, 그러한 취향은 아마도 이 영화에서 비롯되었으리라 확신한다. 그럴 때마다, <마지막 황제>가 내 유년 시절에 미친 영향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를 생각하게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내 삶을 결정지은 영화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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