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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매 Mar 13. 2024

너한테 실망했어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 문상훈 저

저는 유독 이 말을 싫어했습니다.


"실망했다"는 말이요.


예전에 습관처럼 실망했단 자주 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말을 들으면 마치 들어선 안 되는 말을 들은 것처럼 놀랐어요. 그 사람이 실망해선 안 되는 수많은 이유를 납득시켜야 했어요. 예전의 기대치만큼 원상 복구해야 하는 듯한 책임감을 느꼈나 봐요. 사실 누군가가 내게 실망하든 실망하지 않았든 나란 사람은 그대로인데.


예전에 회사에서 작은 실수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전 그 분야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다가 처음 실수를 한 거죠. 그때 아무도 제게 직접 뭐라고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기분이 너무 안 좋은 겁니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들이 제게 실망할 것 같았어요. 나라는 사람에게 기대치가 높았을 텐데 그걸 무너뜨렸을 거란 생각이 든 겁니다. 그 감정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는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실 이제 머리로는 타인의 실망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단 걸 알아요.

단지 그걸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건 어렵더라고요. 왜 실망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지요.

그런데 최근 읽은 책에서 마침 이 주제를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실망은 그 사람에 대한 업 앤 다운 게임에 불과하다.
 나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업 다운으로 영점을 향하는 것뿐인데, 나는 상대가 외치는 다운이 무서워 내 숫자를 바꿔갔다. 나를 너무 좋게만 보는 것은 나쁘게만 보는 것만큼 안 좋다는 것을 몰랐다. 나를 한없이 좋게만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의 나보다 좋게 보는 것은 내버려 두고 나쁘게 보는 것을 바로잡기에만 급급했다. 서로에게 현명하게 실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중에서


실망은 그저 업 앤 다운 게임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게다가 그 숫자는 내가 정할 수 없습니다.

그 평가를 하는 주체는 내가 아닌 '상대'입니다. 내가 100점을 받고 싶어서 한 행동에 상대가 10점을 줬다고 해서 그를 설득할 필요는 없는 거죠. 그 점수 자체가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좀 낮은 점수를 받으면 어떤가요?


이어지는 문장은 실망을 두려워하는 이에게 더 날카롭게 말합니다.


"어떤 분야에서 실력 있는 사람의 조건 중 하나는 내 실력이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요. 오히려 상대방을 실망시켰을 자신을 객관적으로 내보일 있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과대평가라는 외투를 벗고 나면, 가리고 있던 나의 일부를 보여줄 있는 기회일지 모릅니다.


이는 비단 타인의 실망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도 실망하잖아요.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에 대한 기댓값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의 좌절감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오히려 더 정확한 값을 위한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자책감이 들 때, 스스로에게 실망했다며 마냥 좌절하기보다는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됩니다.

어쩌면 내가 나를 실제보다 높게 평가했을지 모른다고.

나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다음번에 더 잘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쉽지 않은 일임을 알기에, 오늘도 글을 쓰며 다짐합니다.


'실망'이란 말에 놀라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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