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고 태어난 환경과 자란 환경이 다르다. 건강과 관련해서도 각자 살아온 길만큼 각기 다른 원칙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건강과 관련된 메시지를 다루는 책과 정보들은 차고 넘친다. 내게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뜻한 바를 이루고 있는 분의 메시지를 직접 접한다는 것은 살면서 받을 수 있는 축복 중 하나다. 그 메시지는 살아있으므로 강력하다. 신뢰가 감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어쩌면 나도 계단을 오르면서 그런 메시지를 만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2013년 나는 운 좋게도 그런 메시지를 들을 기회를 전라남도 강진에 위치한 초당림에서 찾았다. 김덕봉 수석님은 10년 가까이 모시는 인연 동안 내게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은연중 드러나자 '그 사람의 단점 말고 장점을 보라'라고 말씀하셨다. 한 달이 걸려 마침내 그 누군가의 장점을 발견한 순간 내 마음속에서 미움의 감정이 서서히 안개가 걷히듯 사라졌다. 그 뒤로 수많은 누군가의 장점을 발견하면서 역시 미움은 걷혔다. 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호남지역에 대한 나의 좁은 인식의 폭을 넓혀주셨음은 물론 호남 음식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게 해 주신 김수석 님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고건 전 총리님과 오랜 인연을 쌓으셨다. 그해 여름 김수석 님을 모시고 광주를 방문하고 서로 잠시 연락이 닿으셔서 고건 전 총리님과 구례에서 점심때 뵈었다. 그리고 다음날 고건 전 총리님의 오랜 지인인 김기운 회장께서 총리님을 초당림으로 초대한 자리에 우연히 같이 가게 되었다.
김기운 회장은 당시 94세이셨다. 26세부터 제약 관련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셨다고 하신다. 초당림은 김기운 회장이 1968년부터 2017년까지 50여 년간 약 200억 원의 사비를 들여 조성한 사유림이다. 초당림은 여의도 면적의 3배에 해당하는 960ha의 면적에 편백나무, 삼나무, 백합나무, 리기테다소나무 등 심은 나무만 무려 440만 그루가 우거진 군락지로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조림지이다. 고건 전 총리님은 우리 국토 산림녹화를 처음 시작하신 분으로 두 분은 나무로 맺어진 인연이라고 하셨다.
초당림 안에 게스트 하우스는 2층으로 지어졌다. 비밀의 숲 속에 있는 숙소 같은 느낌이었다. 사방에서 밀려오는 숲의 향기는 곧 가슴을 뻥 뚫어버릴 것만 같았다. 숙소에 군데군데 재떨이가 있어서 관리하시는 분에게 여쭈어보니 회장님께서 65세까지 담배를 태우셨다고 하신다. 고대했던 저녁 식사자리에 김기운 회장님을 처음 뵈었다. 허리도 꼿꼿하시고 와인도 드신다. 나는 궁금했다. 드디어 그 궁금했던 질문을 고건 전 총리님께서 던지셨다. 그 연세에 어떻게 건강을 유지하시느냐? 특별한 비결이 있는가? 헐, 두 분이 자주 뵈었을 텐데 그런 얘기를 안 하셨다니.... 아무튼 나도 대답이 궁금했다. 늘 사소한 통증을 달고 살던 터에 뭔가 장수의 비결을 듣는다면 인생 전체를 살면서 큰 재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김기운 회장님의 대답은 아주 평범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결코 평범한 말씀은 아니었다.
'매일 20분 정도 시간을 별도로 내서 들판을 걷든, 숲 속을 걷든, 아니면 아파트 거실을 걷든 완전히 생각을 털어내고 무념무상으로 걷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 덧붙인 말씀은 결코 몸을 위해 운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몸을 위해 운동을 하게 되면 무리하게 되고 그 무리함은 반드시 몸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 자신도 그렇게 운동을 하다가 그 운동의 단점을 확인하고 하루 20분 명상산책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하셨다. 김기운 회장은 96세 되던 해 전 세계 최고령 CEO로 기네스북에까지 오르시고 2018년 99세를 일기로 타계하셨다.
김기운 회장의 메시지는 늘 되새겨 보지만, 그 메시지를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1년 동안 단 며칠이라도 그렇게 실천해보고자 했으나, 손으로 꼽을 정도다. 첫 세트를 시작하면서 그런 김기운 회장님의 메시지를 되새기게 된다. 그동안은 마라톤을 하건, MTB를 타건, 스피닝 자전거를 타건 늘 운동량에 대해 집착해왔었다.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면서 몸을 위한 운동과 자연스러운 흐름에 나를 맡기는 운동은 점점 그 간극이 큼을 알 수 있다. 그분이 평생을 두고 터득한 진리를 어떻게 단번에 알아챌 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계속 되짚어야 할 메시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 1년 반의 시간 동안 계단 오르기를 통해 내게 축적된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계단 오르기는 신체적으로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번 할 때마다 힘들다. 오늘도 당연히 종아리와 허벅지 그리고 허리 근육과 호흡 모두 힘들다. 축적된 힘은 계단 오르기를 하면서 잡다한 생각들을 털어내고 조금씩 내게 몰입할 수 있다는 것! 그래 그게 가장 분명하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들어가고 거기에 일상의 사소한 감정의 찌꺼기까지 들어오면 걷잡을 수 없다. 생각을 완전히 털어내고 무념무상일 때도 아주 드물게는 있지만 생각의 선들이 비교적 단순해짐을 점점 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생각해본다. <무념무상인 가운데 하루 20분 산책>의 메시지를 내 나름대로 해석해본다. 무념무상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계단을 오르는 것 말이다. 몸을 위한 운동과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의 운동의 경계 지점이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안개가 걷히며 그 경계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꼭 무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늘처럼 날씨도 좋고 신체 컨디션이 좋을 경우에는 약간 무리해도 된다. 아내는 일곱 세트를 마치고 귀가하고 나는 조금 더 욕심을 낸다. 무리가 안 가는 선의 경계는 어디인지 모르겠으나, 아주 오래간만에 열 세트를 마친다. 계단 창문을 하나씩 닫으면서 창밖의 풍경에 시선이 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 아파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닭장과 같은 풍경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계단을 오르면서 이 비좁은 땅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확보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 아파트가 아닐까라고 한걸음 물러서서 생각해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계단 오르기 때문이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우연히 찍어둔 신발 사진을 보았다. 고건 전 총리님 신발이 너무 소탈해서 여쭈어 보았었다. 사모님이 시장에서 사주신 신발이라고 하셨다. 7년이 지났지만 그 소탈한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일전에 완독 했던 그분의 책 <국정은 소통이더라>를 다시 꺼내 들었다. <행정의 9할은 대화와 소통이다. 소통의 세 가지 덕목은 경청, 역지사지와 공감, 대안을 구상하고 정책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메시지는 지금 내게도 깊은 울림을 주면서 당시의 신발 사진과 묘한 대조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210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