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아래쪽 어금니를 씌웠던 금니에 균열이 생겨서 치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치아의 뿌리가 별로 남지 않아 발치 후 임플란트 시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 초등학교 5학년 오른쪽 아래 어금니를 완전히 뽑은 이후에는 괜찮았었는데 왠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다른 한편 오십 년 이상 내 몸속에 같이 있던 치아와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신경치료 가능성을 여쭤보니 일단 시도는 해보겠지만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하신다. 신경치료 과정에서 엄청난 통증을 겪으면서 오기가 났다.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살려서 쓰고 싶다. 오늘 마지막 신경치료를 했다. 통증이 밀려올 때는 차라리 몸의 힘을 빼고 처분에 맡겨야 하는데 몸은 정반대로 용을 쓰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게 힘겹다. 통증이 신체 에너지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하다. 스트레스가 신체 활력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통증도 신체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계단을 오르면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기면 훨씬 좋을 텐데, 생각만 그렇게 할 뿐 실제로 치과 치료대에 눕는 순간부터 몸은 경직되고 곧이어 나에게 다가올 치기공 치료 기계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긴장이 복합적으로 얽히게 된다. 상처 받은 팔을 치료하면서 바둑을 두었다는 관운장과 몸에 박힌 탄환을 꺼내는 동안 단단하게 버텼다는 이순신 장군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이까짓 통증 하나도 이렇게 참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면서 계단을 오른다. 통증으로 무뎌진 에너지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끌어올린다. 그리고 서서히 낮아졌던 에너지가 회복되고 있음을 느낀다.
무릎은 20대 후반부터 서서히 기능이 약화되어갔다. 10년간 마라톤 운동이 무릎에 조금씩이라도 무리를 주는 과정이었다면, MTB는 조금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년간 산을 오르다가 무릎을 다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괜찮겠지 했었는데 아무래도 무릎이 시원치 않아 그만두었다. 결정적으로 무릎이 안 좋아진 계기는 2009년 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에 모래가 뒤섞인 흙을 디디면서 무릎이 꺾이는 사고를 만났을 때다. 물을 빼내고 물리치료를 두 달간 받고 나서 괜찮은 것 같아 그 뒤로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괜찮아도 치료를 완전히 안심할 때까지 했어야 했다. 2011년 봄 어느 날 걷는데 다친 오른쪽 무릎에서 통증이 감지된다. 이 통증은 걸을 때마다 점점 심해진다. 아주 심란했다. 평생 이렇게 통증을 느끼며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MRI 진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병명을 진단했다. 파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완전히 끊어지는 파열과 늘어난 파열이 있는데 후자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해야 한다고 하셨다. 수술 후의 완치 가능성을 여쭤보니 50% 정도라고 하시고 그나마 3개월 이상의 재활 과정을 거쳐야 하며, 운이 나쁘면 재활 과정에서 원위치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미디어를 통해 운동선수들이 무릎 수술하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그런데 전방 십자인대 파열 수술을 받은 사례들은 많았지만 후방 십자인대 파열에 대한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복귀한 사례가 있는지 궁금했다. 어쨌거나 나 스스로 수술은 답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즈음 약리학교실에 계시던 교수님 한분과 우연히 전철역에서 마주쳤다. 병은 알리라고 했다고 그 자리에서 무릎 아프다는 얘기를 드렸더니 아주 간단한 운동요법을 알려주셨다. 교수님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한쪽씩 쭉 펴고 최대한 버티다가 다시 내리고 하기를 하루 10번 이상씩만 하면 무릎 통증이 완화될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말씀하신 내용을 실천해보았더니 1주일 이후부터는 정말로 무릎 통증이 완화되었다. 물론 걸을 때 미세하게 통증은 감지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희망이 보였다. 이 운동을 응용해서 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다리 들어 올리기를 했다. 처음에는 100회 200회 정도 하다가 나중에는 매일 500회 이상 했다. 다리에 힘도 느껴지고 무릎의 통증도 점점 완화되어 갔다.
그런데 이 다리 들어 올리기가 허리에는 썩 좋지 않았다. 다리 들어 올리기를 3년 지속했는데, 그 뒤로 스피닝 자전거로 변경했다. 서서 타면서 땀을 흘리는 매력과 무릎에 힘이 느껴지는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운동이다. 시 2년 동안 운동을 지속적으로 했다. 1년에 4500km를 탔다. 2년쯤 하다 보니 지루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는 것도 지루해졌다. 그즈음 계단 오르기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픈 무릎과 아프지 않은 무릎 둘 다 부하가 걸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심조심 올랐다. 그러다가 몸도 익숙해지고 무릎에도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꾸준히 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현재 통증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계단 오르기를 하고 나면 평상시 걸을 때 단단한 느낌이 들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무릎에 관해서는 앞으로도 운동을 하며 꾸준히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조심할 생각이다.
(147층)
명절이면 고향집으로 귀성했다. 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고향집이 주는 아늑함과 평화로운 환경은 긴 휴식을 권했다. 어떤 해 설 명절에는 도착하는 날 감기와 몸살로 누워 4일 내내 앓았다. 멀쩡하던 몸이 갑자기 심한 피로와 통증을 느낀 것인데, 설명할 수 없었다.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고 내가 알 수 없는 누적된 피로 때문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피로가 쌓인 몸을 회복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휴식이다. 그 휴식 중에도 제일은 잠이다. 낮동안 서너 시간 낮잠을 잤다. 한없이 소파 밑으로 꺼져내려 가는 몸을 겨우 가누면서 문을 나선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은 아내와 나 말고는 없다. 조용한 가운데 발걸음 소리만 들린다. 계단이 만들어내는 그 정적이 좋다. 온전히 발걸음에 집중한다. 조용한 가운데 호흡은 위로 올라갈수록 가빠진다. 심장과 혈관들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내 몸을 유지하는 기본 흐름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계단 오르기의 격렬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계단 오르기는 고요한 정적 속에서 격렬함을 느낄 수 있는 운동이다. 시작은 반드시 끝을 예고하지만, 그 끝에 도달하는 과정은 힘들다. 첫 세트 21층까지는 약간 무거워진 몸을 끌고 올라갔다. 두 번째 세트를 마치니 땀이 흐른다. 몸이 서서히 깨어난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좋다.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어깨와 목을 풀어주는 시간으로 활용하기 전까지는 기다리는 것이 약간 지겨웠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는 운동에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걸 조금씩 느낀다. 몸의 균형은 지속적인 운동에 있지 않고 운동과 휴식 사이의 간극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어깨를 풀어주고 목을 풀어주면 몸 전체가 이완된다. 하체에서 밀려온 에너지들이 상체로 퍼지며 몸 전체가 받아들인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어깨에 쌓이는 피로도가 낮다. 어깨를 돌려보면 피로가 쌓인 정도를 알 수 있다. 어깨와 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허리와 마찬가지로 통증 때문이다. 어떤 때에는 목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아프다. 그리고 어깨가 심하게 아픈 날에는 밤잠을 설칠 정도다. 이러면 바로 한의원을 찾아 침을 맞으면 한동안 괜찮았다. 지금처럼 매일매일 간단한 스트레칭 체조를 하면 좋아지리라는 생각만 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한의원을 찾는 빈도가 점점 늘어났다.
바로 그때 백정흠, 이동관의 <아픈 사람의 99%는 목이 뭉쳐 있다>라는 책을 만났다. 우연히 카카오톡 대화를 주고받던 친구의 권유였다. "인체의 신비는 빙산의 일부와도 같아서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모른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설명해서는 안되며, 비이성적으로 접근해서도 안됩니다. 목이라는 치료 가능한 부분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들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목도 머리의 무게가 가하는 하중에서 기인하며, 목이 다른 증상들을 유발한다고 했다. 목 뭉침은 목뼈가 틀어지고 목 근육이 굳어져 발생하는 전신 증상이라고 한다. 목디스크, 거북목과 일자목, 두통, 오십견, 손 저림 뿐만 아니라 소화불량, 불면증, 우울증 등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이들의 메시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목디스크 수술을 했거나 어깨 수술을 한 사람들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이제는 친구들이 수술한다는 소식이 점점 들려와 마치 나의 목 주위로 무언가가 포위망을 좁히고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단 오르기와 더불어 하는 태극권 기본체조는 몸 전체의 균형을 잡고 특히 어깨와 목에 쌓인 피로를 풀어준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내 몸에 대한 관찰능력은 향상된다. 체조가 지향하는 바와 몸에 이르는 반응을 깨닫는 지점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점점 늘어난다. 몸 전체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통증은 나를 가르치고 깨닫게 해주는 스승이다. 견디기 힘든 통증으로 지새운 불면의 밤들이 이제는 내 몸을 지키는 길을 일러준다.
여덟 세트를 마치도록 이끄는 힘은 단순히 운동에 있지 않다. 몸을 위해 하는 운동이지만 그 과정에서 정적과 소소한 깨달음, 그리고 상념들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아내와 운동을 마친 뒤 저녁에 막걸리 한잔을 약속하는 것도 운동으로 이끄는 힘이다. 시간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2배속으로 느리게 진행된다.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면 시간은 느리게 진행된다. 계단에서도 나는 시간이 느리게 진행되는 경험을 한다. 낮시간은 저녁보다 좀 더 천천히 흐른다. 하나하나의 활동을 잘 관찰할 수 있다.
(168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