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림에 재능이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재능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아니 그건 왜 묻는 거지?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라면 나는
“왜? 재능 있으면 국가대표라도 하려고?”라고 말했겠지만
대외적인 나는 보통 “글쎄요”라고 대답하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말끝을 흐린다.
그리고 사라지고 싶은 침묵을 잠시 버틴다. 그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대답은 진지한 진짜 내 의견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서 입이 닫혔다.
내가 영업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 네 가능성이 엄청나요. 저와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나올 거 같아요. 엄청나게 발전할 수 있는 재능이 잠재된
사람이니 더 작업을 해 보세요”,”제 눈엔 뭔가 보여요 타고난 재능이랄까” (이렇게 말주변 없이 말하면 아무도 안 믿겠지만 ) 라며 사교육 시장으로 안내 했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으로 스스로를 확인하려고 했던 시간은 길었지만
스스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
나는 이게 하고 싶고 이거 아니면 할 줄 아는 게 없어 한번 시작한 일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여기까지 와버렸다.
책상 위에 앞에 수많은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각종 데드라인과 갑자기 생각난 아이디어, 좋은 말, 모르던 한자, 가고 싶었던 곳, 먹고 싶은 것,
그중 하나는 ‘나는 지금 쉬운 일을 하고 있다.ʼ라는 말이다.
나 자신도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재능이라는 것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는 시간보다, 어려움 속에서 헤매고 막막함을 견디며 계속할 뿐이었다.
아직도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매번 새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든다. 새로운 어려움을 마주하는 게 반복된다. 왜 나는 늘지 않지? 하는 자학의 시간이 더 길기도 하다.
그림은 2009년의 그림이다. 나는 2007년 미술대학을 졸업했는데, 그림을 보면 놀랍도록 못 그린 날것의 그림을 가지고도 그 당시엔 그림에 자신이 있었다. 왜 나한테 일을 주지 않는 거지? 왜 졸업만 하면 멋진 커리어가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은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바스러졌지만, 지금 보면 저 그림을 가지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던 그 당시에도 자신감이 있었던 것인지 신기하다. 그 자신감인지 자만심이었는지 헷갈리는 그것을 지금 사고 싶을 정도이다.. 그렇게 계속 지속해서 10년을 그렸더니 저 때보다는 많이 늘었구나 싶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그런 힘을 가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림 그릴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아서 한 장도 그릴 수 없는 사람이나 그림 하나를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재능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어렵지만 계속할 수 있는 게 보통의 재능 없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재능 아닐까. 마음에 들 때까지 다시 하고 계속해서 고민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
그리고 진짜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타인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제일 잘 알 것이다. 본인이 하는 것마다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며 계속해서 다음 작업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 있고 사람들의 반응은 이미 모른 척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이들을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