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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 아름다운 Jun 04. 2019

한 번에 쓱

일필휘지 기운생동

 "저런 건 나도 그리겠다.", " 내 조카가 그려도 그것보단 잘 그리겠는데"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을 때면

그 사람을 잡고

"그래? 그럼 한번 그려보세요"라고 하고 싶다. (하지 않을 거다.막상 앞에선 못한다;)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것과 그리는 것은 많이 다르다.

대충 그렸는데 잘 그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는 이미 장인이다.

세상에 쉽고 간단해 보이는 일 중에 내가 해서 쉬운 일은 없다.


피카소가 한 선으로 파랑새를 그리거나 안자이 미즈마루가 대충 그린 그림은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많은 이들이 쓰윽 쓱쓱 휘리릭 그렇게 한 번에 느낌 있는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나 역시 그렇다. 대충 한 번에 그려냈을 것만 같은 그림과 붓질을 보면 속이 다 시원하고 가벼운 마음이 든다.

피카소의  한 선 드로잉


고등학교 미술시간 동양화를 배웠다. (그때는 한국화라고 구분해 부르지 않았다)단발머리의 발음이 약간 부정확했던 선생님은 선이 쓰윽 잘 그어질 때까지 난을 치라고 했다. 난을 어떻게 그리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난의 선이 쭈욱 잘 뽑힐 때까지 선을 긋고 긋고 또 긋다 보면 자연스러운 난이 쳐진다고 했다.  물론 정말 괜찮은 선이 나올 때까지 그릴 수는 없었다. 중간고사 직전 까지만 긋고 그중 제일 나은걸 냈던 것으로 기억이다.

그게 내가 이해한 동양화였다. (지금까지도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좋은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훈련하듯 난을 치는 것 난을 그린다 하지 않고 난을 친다는 행위 자체가 동양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을 치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선을 그어야만 그것이 내 몸과 호흡하듯

머리와 눈, 손이 순간의 살아있는 선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일필휘지 [ 一筆揮之 ]  한숨에 글씨나 그림을 줄기차게 쓰거나 그림

기운생동 [ 氣韻生動 ] 동양화에서, 육법의 하나. 천지 만물이 지니는 생생한 느낌이 표현되는 일이다.

기품이 넘쳐 있음. 뛰어난 예술품에 대하여 이르는 말.


한국화를 표현하는 말로 한번 듣고 바로 와 닿아 한자의 뜻도 모르지만 잊혀지지 않은 말이다.


수도 없이, 순간을 찾기 위해 선을 긋다 보면 어느 날 진짜 대충 막 그린 것 같은 멋진 그림을 나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대충 그린 건지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것인지 그 차이는 본인이 제일 잘 안다.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안자이 미즈마루

의 책에서 빌려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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