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20살 나는 같은 과 친구와 야요이 쿠사마의 전시를 보기 위해 아트 선재에 갔다.
정신없이 찍힌 점은 어지러웠고 밖에 나와서도 눈앞에 점이 동동 떠다니는 듯 보였다.
이건 conceptial art 컨셉션 아트라는 것인가? 난해한 설치미술 앞에서 우리는 한참 시간을 보냈다.
뭔지 잘은 모르겠고 전시장의 텍스트를 다 읽고 이해하려 노력해봤지만 마음으로나 머리로 이해되거나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왜 이해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야요이 쿠사마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 공간에서 내가 다양한 크기의 오브제와 수많은 점에 압사당하는 시각적 경험은 남았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이렇게 시각화할 수 도 있구나, 그리고 뭔가 한국에서 당시 내가 보아온 예술작품에서 보던 그 우울하고 습습한 질척이는 그것이 없었다. 쿨했다. 잘 모르겠는 세련된 다른 세계였다.(당시 나의 기준이다. 지금은 물론 바뀌었다)
같이 갔던 친구는 "저런 거 누가 못해"라고 했다.
아마도 반복적인 동그라미의 사용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반복적인 오브제, 단순한 색깔 등을 보고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우와 할만한 새로운 발명을 하는 것이나 엄청난 기술력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만 창작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게 시시해지고 어차피 그런 것은 천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나와는 점점 더 먼 것이 된다.
저런 걸 누가 못해라는 생각은, 결국 저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정의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제시하는 게 창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