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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진 Nov 12. 2023

나의 결혼식에게.

나의 결혼식에게.


나는 늘 마음 한켠에 품어온 로망이 있다. 결혼식. 흔히들 여자를 위한 날이라고 하지만 생각해 보면 결혼식만큼 여자를 구속하는 것도 없다.

중심을 잡기도 어려운 하이힐, 바닥을 훑고 다니는 긴 베일,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꽉 조인 드레스. 무엇보다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까지.

여자는 하염없이 장식된 수많은 꽃들 사이로 앉아 기다린다. 나를 보러 와 주는 고마운 사람들.


맞다. 오늘은 드디어 나의 결혼식이다.

내가 꿈꾸고 소망하던 그날.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의 신부 서진영입니다. 우선 저희 결혼식을 빛내주기 위해 참석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음. 이렇게 인사를 드리자니 많이 쑥스럽네요.

오늘 저희 결혼식은 어떠셨나요?

사진 촬영도 없고, 부케를 던지지도 않고, 사실 오늘의 결혼식을 계획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결혼식이라는 게 저희뿐만 아니라 양가 부모님 그리고 친지 분들까지 모시고 하는 자리니만큼 조금의 틀을 깨는 것이 혹여라도 결례가 되지 않을까 많이 고심하고 또 고심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마음을 백번 천 번 헤아려주신 양가 부모님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결혼식에서 왜 신랑 신부는 성혼서약서를 낭독할 때 혹은 주례사의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의 질문에 네.라고 수줍게 대답하는 거 외에 신랑 신부의 이야기를 일이 없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예쁜 옷, 화려한 메이크업에 잘 짜인 각본으로 잠깐 걸어서 왕복하면 결혼이 성사되는. 그게 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약 결혼식이란 걸 한다면, 신랑 신부가 말을 하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말은 호기롭게 했지만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저는 오늘 참 행복합니다.

아니, 유강 씨를 만난 그 순간부터 참 행복합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렇게 설렐 수가 있구나를 매일매일 일깨워 주는 사람입니다. 아 그래도 부모님께 소개하는 건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더라고요. 난 괜찮지만 부모님은 어떨까. 그런 생각도 들고. 아 저희 부모님은 유강 씨를 굉장히 좋아하셨습니다. 친구가 그랬는데 지금 우리 나이면 누구든 데려오면 옳다구나, 구세주구나 한다고요.


아무튼 저는 제 결혼식에서 바라던 건 꼭 하나, 두 발로 서 있고 싶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유롭게. 한 분 한 분 눈맞춤할 수 있게.


오늘 그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들여다 봐준 유강 씨 너무 고맙습니다.

마흔에 다다른 지금에서야 진정으로 독립을 하여 제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연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부 서진영

신랑 진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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