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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설게하기 Aug 24. 2020

초콜릿 카스테라

코로나 백수의 하소연 에세이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아역 배우 우주가 대게를 실컷 먹고 쇼파에 스르르 낮잠 자는 장면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그래, 맛있는 걸 먹고 자는 낮잠 참 좋지. 그런 장면들을 발견하면, 보석함 속 유리구슬을 모으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하나씩 수집하고 싶어진다.



한석규가 심은하에게 다가가 “덥죠?” 하며 하드를 건네곤 싱긋 웃으며 나무 그늘 아래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이나, 폭풍우가 치던 날 타월로 젖은 몸을 말리고 엄마가 준 따듯한 차에 커다란 꿀 한 숟가락을 휘휘 젓다가 남은 여분을 입으로 가져와 쏙 빨아먹은 후 짓는 달콤한 표정의 포뇨,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심은 나무에 물을 주고 잘 익은 토마토 하나를 따서 뿌듯한 표정으로 베어 무는 소스케, 대학 생활을 위해 도쿄로 이사 온 홋카이도 소녀 다카코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날 이삿짐을 나르고 자신의 니트 속에 가득 찬 벚꽃 잎을 터는 영화 속 장면은 그 어떤 강렬한 플롯보다 더 인상 깊게 남아있다.


나름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을 따라 해 보았다.


언급한 영화들은 주인공이 시한부 선고를 받거나 주인공이 바다 물고기이거나 화산이 폭발하길 기도하는 등 영화적 사건들이 분명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자극적인 사건 자체보다 인물의 일상을 더 풍부하고 그리고 있다. 다양한 불행함 속에서 작은 순간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견디게 하는 힘은 일상의 아주 사소한 일들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 속에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희망을 발견한다.



성취주의적 도시 사회의 삶이 버거워 목포의 대안 공동체 '괜찮아마을'로 떠난 30명의 청년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행이네요’를 찍었을 때도 나는 이점을 유의했다. 그들이 사회에서 받은 상처와 슬픔에 초점을 두기보다 살아가는 촘촘한 일상 속에서 희망과 실마리가 나올 것임을 믿고 기다렸다.

하지만 카메라를 든 지 둘째 주가 되어도 특별한 해프닝이 일어나지 않자 분량에 대한 걱정이 극심해진 나는 상처를 건드릴만한 자극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인위적으로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할까 하는 충동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몸 고생과 양심 사이를 줄타기 하며 다행히 그 충동을 눌러내었지만 동시에 자극적인 장치가 얼마나 효율적이고 단순한 방식인지 깨달았다.



 삼주 째 되는 날, 상황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상황에 적극적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쩌면 아직도 건질만한 장면이 나오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포착해내지 못한 게 아닐지 몰라...' 라는 의문을 품고 더 사소한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게 이번엔 아예 감독의 포지션을 내려놓고 한 명의 입주자가 된 마음으로 마을 청년들과 적극적으로 생활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함께 밥을 차려 먹고 수다를 떨고 같이 잠에 들거나 산책을 했다. 내 방에 불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비밀을 공유하고 저녁엔 밤하늘의 별 이나 노을을 보러 갔다. 평상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며 촬영하기 힘들다고 어리광도 부렸다. 그제서야 나부터 그 촬영장이 지옥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급기야 촬영은 덜 하고 점점 더 놀고 싶어져 어느 날은 아무나 카메라를 맡기고 누가 감독이고 누가 찍히는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가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촬영된 사소한 순간은 어느덧 10tb의 외장하드를 꽉 채웠다.



 촬영이 종료된 후, 나는 마을 청년들과의 시간이 너무나 즐거워서 목포에서 편집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 처음 편집 프로그램에 어마어마한 양의 영상 소스를 올렸을 때 ‘너무 사소했던 것까지 찍은 거 아니야?’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그 후회는 바로 현실로 이어졌다.

장편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는 과정은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영상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훨씬 더 매우 엄청난 X10000 정신적 체력적 극한을 시험하게 했다. 매일 새벽 3시에 퇴근해 거의 녹초가 돼버린 몸으로 엄청난 책임감에 짓눌려 이불 속에서 남몰래 울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책상에 놓인 초콜릿 카스테라를 먹었다. 뚱딴지 바나나우유를 먹는 날도 있었고 모니터 옆에 꽃을 두거나 편지나 쪽지 같은 것들을 벽면에 붙였다. 초콜릿 카스테라, 바나나 우유, 꽃, 편지, 쪽지 모두 목포 친구들이 책상 위에 몰래 놓고 간 선물이었다. 못된 성깔머리로 종종 마우스를 집어던지며 ‘안 해!’ 하다가도, 책상 위에 놓여진 꽃과 포스트잇에 적힌 응원 글귀를 보고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곤 영상 클립 안에 담긴 너무나 소중했던 사람들과의 그때를 되짚으며 ‘아, 우리 저 때 되게 멋있고 행복했는데…’ 하며 그 순간이 소리로 움직임으로 박제되었다는 사실에 만드는 과정은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도 역시나 영상은 너무 재미있고 멋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며 화면 속 웃는 사람들을 따라 바보같이 허허 웃고 울었다.



 그렇게 열심히 편집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농담을 주고받거나 그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자조 섞인 말들을 털어놓을 때도 있었다.



 “내가 너네 진짜 잘 담아야 되는데, 실망시키면 어떡하냐.”

 “우리가 같이 살면서 당신 어떤 사람인지 봤잖아. 영상이 어떻게 나와도 좋아.”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은 초짜 감독에겐 믿을 수 없이 사치스러웠던 말이었다. 이런 운은 어쩜 평생 한 번밖에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담아낸다는 거 아마 세계적인 거장도 쉽게 경험할 수 없을 거야.  

그때부터 어깨에 힘을 빼고 멋진 다큐멘터리가 아닌 우리가 평생 돌려볼 추억을 저장한다는 마음으로 영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추억 영상이 내 첫 영화제 데뷔작이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나 같이 나약한 인간이 장편 다큐멘터리를 완성해 낼 수 있다는 걸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멋진 동행자와 함께라면,

나는 늘 혼자 갈 수 있는 한계치보다 훨씬 더 멀리 걸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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