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Greenery 15-0343
"탁"
메마른 소리가 사방에 퍼져나갔다. 그 소리의 파동은 강하게 시작하여 점차 점차 약해져 갔다. 어쩌면 이 공간이 소리를 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대로 소리는 공간의 어딘가에 부딪혀 하나하나 그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소리는 사라졌다. 메마른 침묵만이 다시 남았다.
손에 힘을 줌과 동시에 조각은 아주 쉽게 반으로 갈라졌다. 단 하나의 소리를 내며, 메마른 파동을 일으키며 간단하게 부서졌다. 마치 내가 힘을 주기를, 딱 그 순간만을 오래전부터 기다렸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러졌다.
반으로 쪼개졌다는 촉감이 내 손안에 고스란히 전달되기도 전에, 나는 소리로 이를 알 수 있었다. '소리는 촉감보다 빠르다' 짧은 그 순간 나는 새삼 소리가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손에 닿기도 전에 이미 조각은 부서져버렸다는 사실을 내 귀를 통해 나는 알았다. 별다른 감흥도 없이, 별다른 느낌도 없이 그저 메마른 소리가 들려왔다. 더 정확히는 내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귀가 아닌 눈으로 내 손을 보았다. 조각은 역시나 정확히 반으로, 정확히 쪼개어져 있었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부쉈다고 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조각의 한 부분에 살짝 금만 가거나 하는 그런 애매모호함이 없기를 나는 바랬던 것 같다. 왜냐하면 확실하게 끝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여기에 남겨진 것이니까.
조각은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이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어떤 일로 인해 반으로 쪼개어져 버린 그저 그런 물건으로 보였다. 조각의 입장에서는 '이제 정상으로 돌아온 것인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조각에는 일그러짐은 없었다. 원래 직선이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어느 순간에 휘어져버렸다는 일도 이제는 모두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손에서 힘을 풀며 나는 조각을 바닥에 버렸다. 두 개의 조각은 내 손을 떠나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조각은 소리 없이, 나뭇잎이 바람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던 것처럼 살포시 바닥에 내려앉았다.
나는 두 개로 쪼개진 조각이 내 발 옆에 떨어져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을 한 후에 두 손을 털고 입구를 향해 뒤로 돌았다. 굳이 손을 털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았던 두 손을 털고 싶었다. 일의 시작이 있다면, 일의 끝도 있을 테니 나 스스로 그 끝을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A가 부탁한 일을 끝냈다. 그거면 됐다.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면서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모든 곳을 감싸고 있던 선명한 녹색이 옅어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느낌적으로, 또는 실체적으로.
뒤를 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확인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그대로 두고 싶었다. '선명한 녹색이 옅여지고 공간이 사라지고 모든 것은 제 순서를 찾아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을 기어코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눈물에, 아무런 의미도 담겨있지 않았다. 하지만 눈물은 따듯하고 때로는 뜨겁기도 했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그리고 그 눈물이 지닌 온도는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만큼의 것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을 나가면 더 이상 A는, 그녀는 없을 거라고. 그리고 모든 것은 원래대로 그 순서를 찾아가고 있을 거라고, 일그러짐은 이제 없다고. 그래서 눈물이 새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의미를 담아, 그 정도만큼의 온도를 담아 눈물을 흘렀을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왔을 때, 선명한 녹색은 그곳에 없었다. 그저 뜨거운 태양이 지면을 데우고 있었다. 한낮의 여름이었다. 바람도, 구름도 한 점 없는 그런 여름날의 온도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나는 알고 있었다. 이제 A는 여기에 없다고. 단지 그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결과는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