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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Apr 24. 2022

한적한, 오후의 그린.

30 Greenery 15-0343

이곳에

정확히는 하나의 일그러짐만이 남겨진 이 세상에


 이상 A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불과  시간 전까지만 해도 모르는 사람이었을 그녀였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렵기보다는 이렇게 모든 것이 종료된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그녀가 없다는 사실이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사실이 꽤나 깊숙이 나에게 전해졌다.  


'부서진 조각을 가지고 왔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랬으면, '뭔가 달라졌을까?'라는 의미 없는 결과를 내포한 채 모든 생각은 무의미함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한 번 더 살펴보고 체념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돌아갈 곳은 이제 집 밖에는 없을 테니까, 어디까지나 나에게는 그곳밖에는 없었다. A와 함께 이곳으로 걸어왔던, 불과 몇 시간도 안된 과거를 가끔 떠올리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불어오는 바람도, 태양도 전부 그대로였다. 내가 걷는 길도 그대로, 풍경도 그대로 모든 것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바뀐 게 있다면, 유일하게 변한 게 있다면 조각은 부서지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였다. 그 사실은 나 밖에 모르는 것이기도 했다. A도 모른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아주 익숙하게 모든 음표가 순서를 정리하여 하나하나 아름다운 선율로 나에게 들어왔다.


나는 이 음악을 그리고 이 음표를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한다'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알고 있었다. 사라져 버린, 혹은 일그러짐과 함께 없어져버린 기억이 모두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는 '사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창문 너머로 태양이 지고 있었다. 머리를, 길을 뜨겁게 달구던 오후의 태양은 그 속도와 방향을 달리하여 지표면의 아래로 사라지려 하고 있다. 한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나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주황색으로 물든 도시가 보였다. 아까,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짧았던 그림자들이 이제는 그 길이를 끝없이 넓히며 다시 한번 주황색을 물들이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제 모든 것은 그림자로 바뀌어 있겠지. 태양이 내려가며 만든 주황색은 그 자리를 잃고 그림자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겠지.


뺨을 조용히 타고 흐르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A도, 일그러짐도 그리고 클래식 음악도 그 이유는 되지 못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림자도 결국 내일이 되면 그 자리를 내어준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순서를. 모든 것은 정해진, 각자 가진 그 시간을 들여 다시 자리를 찾아온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다.


나의 일그러짐으로 인해 물러난 그녀의, A의 일그러짐에게도 온전한 자리를 찾게 해주는 것, 그게 내가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할 일이었다. 시간과 시간이 가지는 공백을 넘어, 주황색이 그림자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다시 그 순서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시간은 분명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어떤 속도와 방향을 가졌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이 하나만을 생각하며, 나는 눈물을 닦았다.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내 얼굴의 중간쯤 어딘가에서 닦여 없어졌다. 중력을 따라, 턱 끝을 지나 땅바닥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무료했던 성실함을 지나 나는 학교를 졸업했다. 최대한 적당하게, 적절하게 성실함과 타협을 하며 무료함을 달랬다.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친구도 여럿 만났고 나름 의미 있는 졸업을 했다. 물론, 클래식 음악도 성실함과 무료함의 어딘가 중간에서 늘 함께 했다.


지금은 대학을 다니며 건축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에 입학을 한지가 바로 어제 같은데 어느덧 졸업을 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면 그 일은 벌써 8년 전의 기억이었다. 정확히 몇 개월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8년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건축과 관련한 전공을 할 것이라고는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나에게 아주 잘 맞는 일이 될 거라는 상상을 가끔 한다. 단순히 이론을 배우고 설계를 하는 수준밖에는 안 되겠지만, 언젠가는 이 상상의 결과물인 설계도를 딱딱하고 무거운 콘크리트와 같이 하나의 실체를 가진 것으로 바꾸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상상을 현실로 바꾼다는 것은.


그리고 나는 아직도 동네에 살고 있고 가끔 그 공터에 가기도 했다. 그녀를, A를 찾아보려고 가는 것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거기는 공터일 테니까. 그저 뭔가 가고 싶을 때가 있으면 찾아갔다. 그럴듯한 뭔가가 없을지라도 나는 항상 그 공터에 찾아갔다.


물론 이제는 시간이 흘러서, 공터도 그 목적을 갖게 되었다. 미술관이 들어선다는 내용의 기사와 함께 공터에 펜스가 생기고 건설 장비나 사람들 등 이것저것 분주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터에 편하게 찾아가지는 못하게 되었다. 먼 곳에서 바라보거나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보거나 하던 일도 점차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다분히, 기억은 그렇게 나에게서도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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