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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May 07. 2022

한적한, 오후의 그린.

31 Greenery 15-0343

오늘은 공터에 찾아가고 싶은 날이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공터에 가보고 싶었다. 이제는 목적을 가졌기 때문에, 공터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런가?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어디까지나 공터는  그대로 공허함이 남아이었야 하는데,  이상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무거운 콘크리트로, 그리고 딱딱한 콘크리트를 통해 무언가로 탄생을  테니까. 공터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녁에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오랜만에 걷는 도로의 길을 지나, 공터 옆에 줄줄이 나열된 펜스를 지나 나는 공터로 발걸음을 돌렸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전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그곳에는 한 명도 없었다. 입구에 걸어뒀던 자물쇠는 너무나도 쉽게 열렸고 묵직하게만 보였던 문도 너무나 가볍게 열렸다.


허술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기는 이제는 공터라고 할 수는 없었다. 뜨거운 태양을, 한 여름날의 온도를 그대로 받아내던 흙은 일부만 남은 채 사라졌고 그늘을 주던 나무는 어디론가 뽑혀 나갔다. 그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나무는 내 기억 속에만 존재를 했다.


'그 큰 나무를 대체 어떻게 옮겼을까?'


때로는 조금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상당히 많은 일이 일어난다. 없던 미술관이 생기지를 않나, 항상 있을 것만 같았던 나무가 사라지지를 않나. 내가 보고 있지 않는 사이에 누군가는 무언가를 한다. 그게 이 세상이 돌아가는 하나의 원리일지도 모른다. 뽑혀버린 나무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의문만을 남긴 채 세상은 그렇게 다시 본래의 루틴을 찾아 돌아간다.   


조금은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그 긴 시간은 대체 어디로 흘러갔을까?'


내가 관심을 주지 않던 8년이라는 시간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이다. 세상의 루틴에 따라 그 시간 또한 분명히 어디론가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갔을 텐데,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의 시간도 그 정도의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흘러갔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온전하게, 정말 온전하게 그 시간이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그렇기를 바랐다. 나의 8년과 그녀의 8년이 같았기를.


'이곳에 미술관이 들어선다니, 참 신기하네.'


그 어느 건물보다도 멋진 외관을 가지며 동시에 실내에는 다양한 미술작품으로 가득 찰 공간이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신기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이 방문을 하며 건물은 그 목적을 다해나갈 것이다. 시간이 흘러, 수십 년이 흘러도 건물은 미술관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며 흔적을 남겨갈 것이다. 그 흔적에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미술관은 더욱더 괜찮은 공간이 될 것이다. 지금은 그저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 가깝겠지만, 나중은 다를 것이다. 거기에는 공간을 뛰어넘는 목적이 있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공터가 미술관이 된다는 사실이 내심 반갑기도 했다.


무엇보다 흙이며 나무까지 다 내어주었는데, 하수처리장이나 전력시설 같은 곳이 된다면 너무 그렇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에 반가움이 들었다. (물론, 하수처리장이나 전력시설 또한 너무나 중요한 공간이지만 어디까지나 나는 공터가 누군가의 관심을 가득하게 받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세상에는 참 많은 공간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의미가 담긴 곳이자 그 변화가 일어난 곳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공간은 그대로 멈춰있지 않다고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선선하고 익숙한 냄새가 나는 그런 바람이 아주 멀리서 불어왔다. 나뭇잎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히 아주 멀리서 불어온 바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내가 예전에 느꼈던 그 바람이라고.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말을 했다.


"선명한 녹색이, 이번에는 나를 찾아오기를."


다시 눈을 뜨고 바라본 그 세상은 선명한 녹색으로 가득 찬 그런 공간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생각을 넘어 소망을 했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를 찾아갈 순서가 왔음을 그리고 그 하나의, 또는 유일한 증표로써 선명한 녹색이 나에게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는 그 녹색을 따라 그녀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아득히 멀었던 시간과 공간을 가볍게 뛰어넘어 나는 그녀의 작고 따듯한 그 손을 잡아주고 싶다. 무엇보다 온도가 담긴 확실한 실감을 느끼며, 다시 한번 그녀를 보고 싶다고.


나는 알고 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석양의 주황색은 자취를 감추고 다시 한번 그 자리를 내어줄 것을.

선명한 녹색을 따라,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는 것을.

그건, 아무래도 여간 멋진 일이 아니라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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